감독
게리 마샬 Garry Marshall

주연
줄리아 로버츠....매기 카펜터
Julia Roberts....Maggie Carpenter
리처드 기어....호머 아이젠하워 '아이크' 그레이엄
Richard Gere....Homer Eisenhower 'Ike' Graham
조운 큐삭....페기 플레밍
Joan Cusack....Peggy Flemming
헥터 엘리존도....피셔
Hector Elizondo....Fisher
리타 윌슨....엘리
Rita Wilson....Ellie
폴 둘리....월터
Paul Dooley....Walter
크리스토퍼 멜로니....코치 밥
Christopher Meloni....Coach Bob
진 셔틀러....할머니
Jean Schertler....Grandma
로리 메트카프....트라우트 부인
Laurie Metcalf....Mrs. Trout

1.

[귀여운 여인]에 그렇게 나쁜 소리를 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가끔 영화의 기둥이 되는 대책없는 신데렐라 드림이 신경을 긁긴 합니다만, 적어도 그 영화는 잘 만든 오락 영화였습니다. 캐릭터들은 살아있었고 로맨티시즘도 적당한 수준에서 그럴싸하게 구축되어 있었으며 전체적으로 꽤 재미있었지요. 이 영화의 흥행 성적에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습니다.

이 영화를 만든 세 사람이 다시 뭉쳤으니, [귀여운 여인]의 팬들이 [런어웨이 브라이드]를 기다리며 다시 침을 흘리기 시작한 것도 당연합니다. 하지만 그 결과는 어땠을까요?

2.

[런어웨이 브라이드]라는 제목은 저한테 무척이나 자연스럽습니다. 전 '신부'라는 단어를 보면 '결혼'이나 '신혼' 대신 웨딩 드레스를 입고 달아나는 신부의 이미지를 떠올린답니다. 왜 그런지는 저도 모르겠어요. 그냥 그렇답니다. 저한테 웨딩드레스는 달아나기 위한 복장입니다.

그러나 [런어웨이 브라이드]의 주인공 매기의 '도주'는 그렇게 로맨틱하지 않습니다. 그냥 습관성인 거죠. 벌써 매기는 세 번이나 결혼식장에서 달아났습니다. 도대체 왜 그런 걸까요?

흠, 그렇다면 이건 미스테리일까요? 정말 그랬다면 재미있었을 겁니다. 멀쩡하게 살아있는 주인공을 중심에 딱 두고 캐릭터의 미스테리를 풀어가는 거죠.

하긴 만들어진 영화에도 그런 구석이 좀 있습니다. 남자 주인공 아이크는 탐정이고 단서는 달걀 요리입니다. 두 사람의 로맨스는 매기의 '정체'가 밝혀지면서 시작되고 매기의 '자각'으로 완결됩니다.

하지만 이런 종류의 미스테리가 가져야 할 깊이는 없습니다. 줄리아 로버츠와 리처드 기어의 스타 파워를 살려 설탕처럼 달콤한 로맨스를 만드느라 모든 힘을 다 써버렸기 때문입니다.

이 영화를 '캐릭터 미스테리'로 만들지 않았다고 비난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부터 밝혀야겠군요. 자기가 보고 싶은 영화를 안 만들었다고 물고 늘어지는 건 여러분이 생각해도 좀 치사하죠?

하지만 이 영화가 무엇을 지향했건 이 어정쩡하고 진부한 느낌을 피할 수는 없었을 겁니다. 이 영화는 심지어 '로맨스 코미디'로서도 성공하지 못했어요. 스타 파워와 [귀여운 여인] 재현의 음모가 지나칠 정도로 두드러져서 일정 수준 이상의 완성도로 가는 길을 모두 차단해 버린 거예요.

심지어 '런어웨이 브라이드'라는 제목도 제대로 살리지 못했지요. 여러분은 매기가 끝없이 달아나는 이유가 충분히 그럴싸하다고 생각하세요? 만약 그게 제대로 된 설명이 아니라면 이 영화는 소재를 활용할 생각도 안 한 셈입니다!

그 결과 만들어진 건 끝도 없는 클리셰들로 구성된, 오래된 웨딩 케익과 같은 맛이 나는 퍽퍽한 영화입니다. 영화는 애를 쓰긴 하지만 모든 게 너무나도 작위적이고 가짜같습니다. 보다보면 짜증이 나요. 도대체 내가 왜 이걸 봐야 하나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요.

3.

리처드 기어에 대한 악감정은 없습니다. 하지만 요새 이 배우는 도대체 배우같아 보이지 않는군요. 배우라기보다는 80년대 유행 미술관에서 끄집어낸 먼지 뒤집어 쓴 유물 같아요. 이 사람 얼굴을 보고 있노라면 꼭 [웨딩 싱어 2]를 보는 기분이 들어요.

게다가 아이크는 참 멋없고 정 떨어지는 캐릭터입니다. 특히 초반에서 워낙 이미지를 구겨놔서 후반에 아무리 재롱을 떨어도 도대체 회복이 안되는군요.

줄리아 로버츠는 좀 낫습니다. 그건 그 사람이 아직 '우리 시대 배우'이며 기어처럼 이중적인 연기를 하지 않아서 받아들이기가 더 쉽기 때문입니다.

조운 큐삭이 나와 반가왔습니다. 하지만 이 사람이 자신만의 연기를 할 만한 공간은 전혀 없군요. 슬프게도 여기서 큐삭은 그냥 자리만 채워줄 뿐입니다.

누가 게리 마샬의 영화가 아니랄까봐 이번에도 헥터 엘리존도가 나옵니다. 하지만 [귀여운 여인]만큼 큰 비중은 아닙니다. 근데 가발이 참 그럴싸하더군요. (99/08/24)

DJUNA

기타등등

오래간만에 시네 코아에서 엔드 크레딧을 끝까지 보여주더군요. 마지막에 보니 이유가 있었어요. 줄리아 로버츠와 리처드 기어가 눈싸움 하는 장면이 나온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