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사디 베닝
Sadie Benning

상영 작품
에어로비사이드 Aerobicide
저먼 송 German Song
펑크 로커 주디 Judy Spots
밋밋한 아름다움 Flat is Beautiful

제2회 퀴어 영화제에서는 [사디 베닝 쇼]라는 제목으로 사디 베닝의 최근작 네 편을 상영했습니다. 그동안 베닝은 진짜 예술가가 되었더군요. 네 편 모두 극저예산 비디오 작품이지만 장르의 폭은 넓어졌고 베닝 역시 직업 예술가로서의 자신을 개발한 듯 했습니다. 이제 베닝의 영화들에는 각본과 진짜 배우들, 제작자와 스탭들도 있습니다. 구석진 자기 방에서 장난감 캠코더를 들고 혼자 놀았던 당시와는 달라져도 한참 달라진 거죠.

첫번째 작품인 [에어로비사이드]는 줄리 루인의 뮤직 비디오입니다. 가정용 캠코더로 준비없이 거칠게 찍은 듯한 이 작품은 미국의 음악 마케팅에 대한 신랄한 야유입니다. 재미있기는 했지만 아주 특별할 것은 없는 작품이더군요. 아마 자막을 달아주었다면 더 좋았을지도 모릅니다.

두번째 작품은 [저먼 송]으로 역시 뮤직 비디오에 가까운 작품입니다. 하지만 [저먼 송]의 쓸쓸한 흑백 화면은 [에어로비사이드]보다 훨씬 마음을 끌었고 더 시적으로 보이기도 했습니다.

세번째 작품인 [펑크 로커 주디]는 가장 '재미있었던' 작품입니다. 기법면에서 이 작품은 인형극입니다. 스톱 모션 기법이 아주 잠시 사용되기는 하지만 애니메이션이라기 보다는 그냥 종이로 만든 인형을 손으로 조종하는 보통 인형극에 가깝습니다. 베닝의 거칠고 소박하기 그지없는 테크닉은 오히려 영화에 흥미를 더해줍니다. 사실 이 애들 장난과 같은 이미지가 제가 베닝에게 기대하는 그런 이미지이기도 하고요. 역시 꽤 자전적인 듯한 이야기는 조금은 자학적인 농담과 함께 상당히 잘 먹힙니다.

마지막 작품인 [밋밋한 아름다움]은 50분이 넘어가는 '대작'입니다. 줄거리도 있고 상당히 많은 배우들이 등장하는 진짜 극영화이기도 하지요. 베닝의 상징이나 다름없는 픽셀비전 카메라 역시 다시 등장합니다.

영화는 80년대의 시카고에 사는 테일러라는 소녀의 삶을 다루고 있습니다. 이혼한 아빠는 잘나가는 미술 매니저이지만, 엄마는 혼자 애를 먹여살리느라 진땀을 빼는 직업 여성이며, 게이 남자 친구인 쿼기와 방을 나누어 쓰고 살고 있습니다. 이들은 모두 종이로 만든 거친 가면을 쓰고 등장하죠.

영화는 그 픽셀 비전의 낡은 화면을 통해 테일러의 사회적으로 고립되고, 성적인 혼돈을 겪고, 어른들에 대한 믿음을 잃어가는 과정을 베닝 특유의 그 건조하고 지저분한 화면을 통해 보여줍니다. 작품에 묻어있는 그 끔찍하게 개인적이고 일상적이며 폐소공포증적인 화면은 이 날 소개된 베닝의 작품 중 가장 베닝답고 강렬합니다.

전체적으로 네 편 모두 정도차는 있었지만 흥미로웠고 베닝의 팬에게는 반가웠을 작품입니다. 하지만 베닝의 초기작이 보여주었던 그 압도적인 힘은 없군요. 가장 강렬한 작품인 [밋밋한 아름다움] 역시 베닝이 실시간을 통해 자신의 생체험을 토해내던 전작들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 듯 합니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겠지요. (00/09/15)

DJUNA

기타등등

사디의 픽셀 비전 카메라가 고장나면 어떻게 할 생각일까요? 이제 그 기계는 더이상 만들어지지도 않는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