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원신연

주연
김윤진....유지연
박희순....김성열
김미숙....한숙희
이정헌....최검사
양진우....강인원
이라혜....은영
장항선....사무장

지연

[세븐 데이즈]는 스테로이드를 복용한 추리물입니다. 아시다시피 추리물은 정적인 장르죠. 범인이 누군지를 밝혀내는 작업은 대부분 탐정의 머릿속에서 이루어지니까요. 이것으로 만족해도 좋겠지만, 서스펜스를 기대하는 독자들이나 관객들을 위해 이 장르는 늘 자극적인 무언가를 추가하는 버릇이 있습니다. 크리스티의 소설에서 연쇄살인이 그처럼 많이 등장하는 것도 그 때문이죠. 코널 울리치가 툭하면 데드라인을 설정해 등장인물들의 발을 빠르게 하는 것도 그 때문이고요.

[세븐 데이즈]가 근육강화를 위해 도입한 건 유괴입니다. K라는 정체불명의 인물이 승률 99퍼센트인 유능한 변호사 유지연의 딸 은영을 납치해서 지연을 협박하죠. 2심 판결을 기다리고 있는 강간살해용의자 정철진을 변호해 무죄로 석방시키라는 것입니다.

영화는 당연히 빠릅니다. 그럴 수밖에 없잖아요. 지연도 다급하고, K도 다급하고, 정철진도 다급해요. 모두들 달리고 차를 몰면서 고함을 질러대고 주먹질을 해댈 수밖에 없지요. 지연은 자기가 하는 일에 출구가 있는지도 모르고 그게 옳은 일인지도 확신할 수 없지만 역시 달리는 것 이외엔 선택의 여지가 없어요. 영화 도입부에서 학교 운동회의 달리기를 준비하는 지연의 모습은 그런 일주일의 질주를 예언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원신연이 이 속도를 위해 도입한 스타일은 그렇게까지 이상적으로 보이지는 않습니다. 그는 영화 내내 카메라를 흔들고 빠른 편집으로 중간중간 불필요한 장면들을 과격하게 잘라내고 욕을 퍼부으며 영화가 끝날 때까지 정신없는 흥분 상태로 유지하려 합니다. 문제는 이게 내용과 잘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홍보책자에서는 '미드' 스타일이라는 걸 과시하고 싶어하는데, 그게 좋은 게 아니에요. [24]나 [C.S.I.]와 같은 시리즈가 그렇게 눈에 뜨이는 스타일을 유지하는 건 몇 년을 끄는 시리즈 내에서 수많은 감독들과 작가들을 거치는 동안 일관성을 잃지 않기 위해서죠. 하지만 [세븐 데이즈]에서는 미국 텔레비전 드라마의 한 에피소드처럼 굴어야 할 어떤 이유도 없습니다. 이 영화의 스타일은 그냥 기성품처럼 보이고 내용과 종종 따로 놉니다.

그리고 그 내용도 그렇게 잘 짜여진 편은 아닙니다. 아까 전 스테로이드를 복용한 추리물이라는 표현을 썼죠? 영화를 보면 그 이유를 알 수 있습니다. 지윤과 친구인 형사 성열이 달리고 구르고 싸우는 장면들을 보세요. 그 장면들은 대부분 아주 정통적인 증인심문의 도입부에 불과합니다. 그 장면을 잘라내도 이야기 전개엔 아무런 지장이 없죠. 다시 말해, 이 영화의 액션은 각본 안에서 충분히 체화되어 있지 않습니다. 대부분 액션을 위한 액션으로 존재할 뿐이에요.

추리물로도 영화는 약합니다. 범인의 정체와 동기가 도입부에서 꿰뚫어볼 수 있을 정도로 쉽다는 건 단점으로 지적하지 않겠습니다. 문제는 그 설정을 살리는 세부사항이 굉장히 허약하다는 거죠. 법정물로서 영화는 원론을 건드리는 것으로만 만족하고 있고 그 이상의 책략 따위는 생각도 하지 않습니다. 노골적으로 드러나 있는 것이나 다름없는 범인의 정체를 숨기기 위해 도입한 트릭은 그냥 안이하고요. 게다가 중간에 긴장감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등장하는 이류악당은 그냥 머릿속에 뇌가 없어요. 그 한심한 꼴을 보고 있으면 긴장하는 대신 비웃음만 나옵니다.

그나마 영화를 지탱하는 건 김윤진입니다. 김윤진의 연기는 종종 관습적으로 보이긴 하지만, 각본이 짜놓은 다소 허약한 '맹렬 커리어우먼' 이미지에 구체적인 힘과 능력을 부여한 건 순전히 이 배우의 공입니다. 피해자의 어머니로 등장하는 김미숙 역시 쉽게 잊을 수 없는 연기를 보여주고요. 문제가 있다면 연기 스타일의 불일치가 종종 보이고 대사가 뻣뻣한 문어체라, 종종 배우들이 걸려 넘어질 수밖에 없다는 거죠. 특히 김윤진과 김미숙이 두 번째로 만나는 장면은 그냥 무대극처럼 보입니다. 문어체도 잘 살리면 좋겠지만 이 영화가 문어체를 살릴 생각이 전혀 없었다는 건 중간중간에 섞여 있는 욕의 비중만 봐도 알 수 있죠.

[세븐 데이즈]는 영화가 끝날 때까지 관객들의 관심을 놓치지 않는 빠르고 민첩한 영화입니다. 하지만 그 속도를 감당할만한 영리함은 갖추고 있지 않아요. 전문가들이 등장하는 한국 서스펜스물들이 대부분 그렇듯 종종 한없이 어색해지고요. (07/10/30)

DJUNA

기타등등

1. 클라이막스 장면에 배경음악으로 사용한 가브리엘 포레의 모 음악의 선곡은 야비했어요. 다른 표현이 떠오르지 않는군요. 거기 속아넘어가는 관객들도 별로 없었겠지만.

2. 제가 사건의 진상을 그렇게 빨리 맞힌 건 거의 같은 반전을 사용한 [알프레드 히치콕 극장]의 모 에피소드를 기억하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