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이성구

주연
허장강
윤정희
김혜정
이예춘
이순재
윤소라
김석훈
윤양하
박근형
김 웅
손 전
추 봉
윤신옥
김정옥
김지영
이영호

1.

군관동무의 섹스신

휴전 직전, 안신부가 이끄는 일단의 가톨릭 성직자들이 국군에 의해 다시 수복된 마을로 돌아오면서 영화는 시작됩니다. 다들 다시 평화로운 일상으로 돌아왔다고 생각했는데, 유감스럽게도 성당 지하실에서는 낙오된 세 명의 인민군들이 숨어 있었고 그들은 루시아 수녀를 인질로 잡고 신부에게 협력할 것을 요구합니다. 안신부는 어떻게든 인질의 생명을 구하고 인민군들에게 투항하라고 설득하지만 일이 쉽게 풀릴 리가 없겠죠?

2.

[지하실의 칠인]은 반공영화입니다. 이 장르 자체는 큰 문제가 되지 않죠. 굳은 믿음은 좋은 예술의 근간이 될 수 있고, 반공과 같은 정치적 믿음도 예외는 아닙니다. 수많은 훌륭한 영화들이 정치 선전 영화였지요. 그리고 반공물이라고 해서 꼭 정치적인 선전으로만 흘러간다는 법은 없습니다. 언제나 하는 말이지만 장르의 폭은 정의보다 넓어요.

이 영화의 또다른 특징은 주인공들이 가톨릭 성직자들이라는 것입니다. 이들 역시 반공물만큼이나 명확한 자기만의 장르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죠. 그게 진지한 종교물이건, 스테레오 타입을 이용한 감상적인 멜로드라마건요. 성격 분명한 두 장르가 만났으니 괜찮은 시너지 효과를 기대할 수도 있는 상황인 것입니다.

하지만 영화는 정반대의 길을 갑니다. 가톨릭 신앙에 바탕을 둔 깊이있는 전쟁물이 될 수 있었던 영화가 반공물에 발목잡힌 얄팍한 선전 영화로 떨어지고 만 거죠.

영화의 가장 큰 문제는 인민군의 묘사에 있습니다. 물론 그들은 그릇된 편에 선 사람들입니다. 반공물이니 당연하죠. 그냥 전쟁영화라면 그들을 그냥 스테레오타입으로 묘사해도 큰 문제점은 없습니다. 문제는 이 영화가 가톨릭교를 바탕에 깔고 있다는 거죠. 사제복과 성당이 등장했으니 도덕적 갈등과 죄의식, 참회로 이어지는 드라마가 나와야 하는 건 서부극에 총싸움이 나오는 것처럼 당연한 일입니다. 그런데 이 인민군이라는 사람들은 그런 게 먹힐만한 구석이 없습니다. 그냥 속까지 썩은 단순무식한 악당들이에요. 박근형이 연기한 인민군이 귀순할 의사를 보여주긴 하지만 거기에도 대단한 갈등은 없습니다. "와, 저 수녀 예쁘다. 이렇게 두긴 아까우니 살려주는 게 어떨까?"가 고민의 전부인 것 같아요. 그렇다면 도대체 성당이 등장하는 이유가 뭐랍니까?

착한 쪽인 안신부도 문제가 있는 캐릭터이긴 마찬가지입니다. 도대체 고민이 없어요. 이 사람은 그냥 기계적인 믿음을 품고 기계적으로 이런 설정에 빠진 신부가 할 법한 대사들을 암기할 뿐입니다 (허장강의 연기를 흠잡는 게 아닙니다. 어떤 배우라도 여기서 탈출할 수는 없었을 거예요.) 안신부는 흔들리는 믿음을 휘어잡느라 고통스러워하지도 않고 인민군들의 영혼을 구하기 위해 적극적인 희생을 하지도 않습니다. 그냥 반공물의 테두리 안에서 착한 쪽이 할 법한 일만 해요. 맥이 빠지는 건 당연하죠. 이런 영화의 성직자라면 당연히 이데올로기를 넘어서는 연민과 관용, 구원에 대한 믿음을 보여주어야 하잖아요. 막판에 "그들은 평화를 원하지 않아요"라고 소극적으로 뇌까리는 안신부의 모습은 그냥 실망스럽습니다.

3.

이 영화에서 가장 재수없는 부분은 아마 여성묘사일 겁니다. 아니, 그냥 재수없기엔 너무 노골적이어서 오히려 귀엽기까지 하죠. 이 영화엔 세 사람의 여자들이 나옵니다. 하나는 영화 중반까지 인민군들의 리더이고 저 위의 사진에 열심히 섹스를 하고 있는 여자 군관이고 다른 하나는 영화 내내 거의 대사가 없는 루시아 수녀이며 그리고 인민군 때문에 '몸'과 맘이 망가진 마리아죠.

설명하지 않아도 구도가 딱 눈에 들어오지 않습니까. 이 영화에서 여자 군관의 진짜 죄는 인민군이라는 게 아니라 남자들 위에서 상관 행세를 하고 가끔 남자 부하들이나 인질들에게 섹스를 강요한 거예요. 물론 그러는 동안 계속 관음증의 대상이 되는 것도 그 군관이고요.

착한 쪽의 루시아 수녀는? 처음부터 끝까지 말 없이 묶여 있으면서 자신의 '착한 여자' 이미지를 수호하고 있을 뿐이에요. 그런 그 사람 모습이 제복과 본디지 페티시를 결합한 것처럼 보이는 건 제 탓이겠지만. 마리아는? 이 영화에서 무언가 구체적인 행동을 하는 유일한 착한 편인데, 이 사람의 희생은 적극적인 속죄보단 몸버린 뒤 은장도로 자결하는 조선 아낙네를 보는 것 같아서 영 보기가 안 좋습니다.

그러나 여기에 대해 계속 떠드는 것도 쓸데 없는 일이니, 그건 이 영화의 여성묘사가 적극적인 주장이 아니라 그냥 몽유병자처럼 생각없이 고정관념을 따른 결과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적극적인 비판을 받을 자격을 얻으려면 그냥 생각없이 도식을 따르는 것만으로는 부족하죠. (05/11/07)

DJUNA

기타등등

여기서 지하실의 칠인이 누구냐... 그게 좀 귀찮습니다. 맨처음엔 신부 한 명, 수사 한 명, 수녀 한 명, 인민군 셋입니다. 하지만 알고 보니 지하실의 비밀 방에 인민군 한 명이 더 숨어 있었어요. 그럼 일곱이죠? 그런데 중간에 인민군 한 명이 죽고 마리아가 들어옵니다. 여전히 일곱 명이긴 하지만 지하실의 칠인이라고 제목을 달아놓고 영화 중간에 그 멤버를 바꾸어버리면 엄청 어색하지 않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