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가와세 나오미 Naomi Kawase

하코

[그림자]는 제가 이번 상영회에서 본 가와세 나오미의 영화들 중 가장 정체불명인 작품입니다. 이야기가 복잡하거나 내용이 어려워서가 아니라 사전정보가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이지요. 습득할 능력도 부족하고요.

이런 상황입니다. 어느 나이 든 남자가 DV로 하코라는 30대 초반의 여성을 찍으며 인터뷰를 합니다. 그런 그들을 또 다른 카메라맨이 역시 DV로 찍고 있어요. 가끔 카메라에 젊은 여자의 모습이 보이는데, 그건 가와세 나오미 자신인 것 같습니다.

내용은? 하코에게 별거 아닌 것 같은 사소한 질문을 던지던 남자는 어조의 변화도 없이 폭탄 선언을 합니다. 얼마 전에 죽은 하코의 아버지는 친부가 아니고 자기가 진짜 아버지라는 것입니다. 카메라 앞에서 갑자기 폭탄을 맞은 하코는 제정신이 아닙니다. 자신의 감정을 추스리기도 바쁜데, 저 아빠라는 남자와 주변에 카메라와 기타 장비를 들고 자신을 째려보는 낯선 사람들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도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게 정말 뭡니까? 남자는 누구고 하코는 또 누구죠? 가와세 나오미는 어떻게 이 사실을 알았던 거죠? 그리고 그 남자는 가와세 나오미와 어떻게 연락을 했던 거죠? 그리고 왜 그 남자의 이야기는 가와세 나오미의 테마와 그렇게 절묘하게 겹쳐지는 거죠? 이게 사실이기는 한가요?

검색이 시작됩니다. IMDb에는 이 영화의 정보가 없어요. 가와세 나오미의 많은 단편들이 누락되었죠. 꼭 필요할 때는 도움을 안 준단 말입니다.

그래도 전 비엔날레 사이트에서 이 자료를 찾았습니다. 여기에서는 배우란에 Yamazaki Yutaka (Hako)라고 적혀 있지요. 그럼 허구인가? 하지만 유타카 야마자키는 가와세 나오미와 자주 일한 촬영감독이잖아요. 하코를 연기한 배우일 리가 없지요. 그러고 보니 카메라엔 Yamazaki Yutaka, Nakano Hideyo라고 기록되어 있군요. 그럼 유타카 야마자키는 카메라를 든 아버지이고 히데오 나카노는 그들을 찍는 제2의 카메라맨인가요?그런 것 같습니다. 하지만 여기까지는 영화의 사실성과 허구에 대해 아무 것도 이야기해주지 않습니다.

그러다 전 야마가타 국제 다큐멘터리 영화제의 사이트에서 이것을 찾았지요. "Kawase Naomi, whose work has consistently featured an absent father figure, meets “him” through the body of an actress. A critique on the personal film genre, as the staged situation reveals real emotions and subjectivity." 에헴... 그렇다면 이 영화는 일종의 모큐멘터리였던 걸까요?

그런 것 같습니다. 하지만 아직도 확신은 못 하겠군요. 이 영화에 대한 온라인 자료들 중 이 사실을 구체적으로 언급하는 것들은 거의 없거든요. 아, 머리 아픕니다!

만약 이 영화가 진짜 다큐멘터리라면 굉장히 잔인하고 야비합니다. 남의 인생에 멋대로 끼어들어 훼방놓는 거죠. 그것도 당사자가 완전히 무방비 상태에 놓여있을 때 말이죠. 그렇다고 당사자에게 이 상황을 추스를 기회를 주는 것도 아닙니다. 하코는 어쩔 수 없이 주변의 눈치를 보아가며 적당히 분위기를 맞출 수밖에 없어요. 이건 카메라와 다큐멘터리 연출자의 폭력이죠.

하지만 이게 배우를 동원한 모큐멘터리이고 관객이 가와세 나오미의 과거를 알고 있다면 영화는 꽤 매력적입니다. 여전히 드라마는 다큐멘터리의 폭력성을 그대로 갖추고 있어요. 하지만 가짜라는 걸 알고 보면 그건 어느 정도 넘겨버릴 수 있죠. 대신 관객들은 하코의 심리묘사에 더 순수하게 집중할 수 있을 겁니다. 허구의 연출을 통해 소망을 성취하려는 감독의 의도 역시 감동적으로 보일 수 있고요. 이렇게 보면 후반부에 실수인 것처럼 슬쩍 보이는 가와세 나오미의 모습에도 보다 깊은 의미가 담겨 있을 겁니다. (08/05/01)

DJUNA

기타등등

상영회에서 이 영화는 가와세 나오미의 초기작인 [따뜻한 포옹]이나 [달팽이] 뒤에 상영되었죠. 왜 그랬는지 모르겠어요. [따뜻한 포옹]과 [달팽이]를 묶어서 함께 상영하는 게 오히려 더 논리적이죠. [그림자]는 같은 베타 디지 포맷이고 40여분밖에 안 되는 [출산] 뒤에 상영하면 되는 거고. 그랬다면 같은 영화를 두 번 보는 일도 없었을 거고 16밀리에서 디지 베타로 바꾸는 동안 관객들이 기다리는 일도 없었을 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