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알프레드 히치콕 Alfred Hitchcock

주연
테레사 라이트....찰리 뉴튼
Teresa Wright....Charlie Newton
조셉 코튼....찰리 오클리
Joseph Cotten....Charlie Oakley
맥도널드 캐리....잭 그레이엄
Macdonald Carey....Jack Graham
헨리 트래버스....조셉 뉴튼
Henry Travers....Joseph Newton
패트리샤 콜린지....엠마 뉴튼
Patricia Collinge....Emma Newton
흄 크로닌....허비 호킨즈
Hume Cronyn....Herbie Hawkins
월레스 포드....프레드 손더즈
Wallace Ford....Fred Saunders
에드나 메이 워너콧....앤 뉴튼
Edna Mae Wonacott....Ann Newton
찰스 베이츠....로저 뉴튼
Charles Bates....Roger Newton

1.

주인공 샬로트 (찰리) 뉴튼은 그녀가 살고 있는 산타 로사의 따분한 삶에 숨막힐 지경입니다. 그러던 어느날 찰리와 늘 죽이 잘 맞았던 외삼촌 찰리 오클리가 마을을 찾아오지요. 찰리 삼촌의 등장으로 뉴튼 가족은 즐거워하지만, 이 친절한 남자한테는 뭔가 어두운 비밀이 있었습니다. 마침내 찰리는 삼촌이 '메리 위도우 살인자'라는 별명으로 알려진 연쇄 살인범이라는 걸 알게 되고, 삼촌은 비밀을 알아버린 찰리를 죽이려 합니다...

2.

명성에는 엉뚱한 구석이 있습니다. [의혹의 그림자]는 아마도 가장 훌륭한 히치콕 영화 중 하나겠지만, 이 영화를 아는 사람은 별로 없습니다. 이보다 훨씬 못한 영화인 [나는 비밀을 안다]나 [다이얼 M을 돌려라]가 누리는 명성을 고려해보면, 정말 부당하다고 할 수밖에 없죠.

이 영화가 이렇게 부당한 취급을 받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건 [의혹의 그림자]가 전형적인 히치콕 영화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스미스 부부]처럼 히치콕의 개성이 깡그리 사라진 영화라는 뜻은 아닙니다. [의혹의 그림자]는 훌륭한 히치콕 영화이기도 합니다. 이 영화에도 히치콕의 개성은 철철 넘쳐 흐릅니다. 매력적이고 모호한 악당, 평온한 삶을 살던 평범한 주인공을 살인과 광기로 범벅이가 된 범죄 속으로 던져 넣는 수법, 아이러니로 가득 찬 유머와 같은 것들 말이지요.

그러나 [의혹의 그림자]에는 전형적인 히치콕 영화에서 벗어난 부분이 더 많습니다. 우선 여자 주인공이 금발이 아닙니다! 쫓기는 남자는 진짜 살인자이고, 사건들은 모두가 서로의 이름을 알고 길에 바늘이 하나 떨어져도 소문이 온 동네에 쫙 퍼지는 미국의 작은 소도시에서 일어납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난 걸까요? 그건 소재를 다루는 방식 때문이었습니다. 대부분의 히치콕 영화에서는, 평범한 사람이 갑작스럽게 악몽과도 같은 폭력적인 판타지 세계 안에 휩쓸려 갑니다. 그러나 이 영화는 정반대입니다. 바로 그 악몽같은 존재가 평범하고 따분하고 사실적인 미국의 작은 마을 속에 들어오니까요. 일반적인 히치콕 영화의 거울상이라고 할 수 있지요.

그 결과 금발 미녀들은 사라졌습니다. 여자 주인공이 신비스러워야 할 필요가 없어졌으니까요. 대신 너무나도 미국적이고 소박한 이미지의 배우인 테레사 라이트가 수입되었습니다. 스튜디오에서 찍은 몇몇 실내 장면을 빼면, 모든 장면들은 산타 로사에서 직접 찍혔습니다. 그리고 이 영화의 각본을 위해 히치콕이 불러들인 각본가는 바로 [우리 마을]의 저자 손튼 와일더였습니다. 물론 산타 로사의 전형적인 미국 소도시 느낌을 살리기 위해서였지요. 그 결과 이 영화의 겉모양새는 히치콕 영화 중 가장 사실적입니다. 가장 '미국적'이기도 하고요.

이 '다름'은 무척 흥미진진합니다. 그런 사실적인 터치 때문에 일반적인 히치콕 영화보다 더 공포스럽기도 하지요. [의혹의 그림자]가 제공하는 악몽은 히치콕의 그 어떤 악몽들보다 더 강렬합니다.

그러나 [사이코]나 [북북서로 진로를 돌려라]처럼 히치콕 상표가 붙은 상품 역할은 하지 못합니다. 당연히 '히치콕' 영화를 원하는 관객들은 이 영화를 외면하게 되지요. 개별 영화보다 '히치콕 영화'를 연구하는 사람들에게도 인기가 없는 것은 마찬가지고요. 어이없게도 감독의 명성과 개성이 그의 가장 좋은 영화 중 하나를 묻어버린 셈입니다.

3.

[의혹의 그림자]의 갈등 구조 역시 다른 히치콕 영화들과 다릅니다. [열차의 이방인]을 제외한다면, 히치콕은 두 등장인물들이 애증이 뒤섞인 복잡한 상황 속에 얽히며 벌이는 결투로 영화 전체를 끌어가는 이 영화의 플롯을 재활용한 적 없습니다. 악역이 이만큼 큰 비중을 차지하는 영화도 [사이코]나 [로프] 정도밖에 없지요.

이런 설정 때문인지, [의혹의 그림자]는 그의 어떤 영화들보다도 드라마가 강합니다. 그 드라마라는 것도 순전히 개성적인 두 캐릭터의 존재만으로 만들어낸 것이지요. 역시 다른 히치콕 영화에서는 찾기 힘든 예입니다.

특히 찰리 삼촌은 재미있는 인물입니다. 그는 미치광이 연쇄살인마지만, 영화는 결코 그를 단순한 괴물로 그리지 않습니다. 누나와 조카에 대한 그의 사랑은 진짜입니다. 동기가 약간 삐딱하기는 하지만 그의 살인 동기도 나름대로의 사명감에 바탕을 두고 있고요.

그의 상대인 어린 찰리와의 관계도 상당히 미묘한 편입니다. 그들은 이름을 공유하고 있고, 비슷한 행동을 하며, 쌍둥이들처럼 서로의 생각을 읽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근친상간적인 연인처럼 굴기도 합니다. 서로가 서로를 죽이려는 상황 속에서도 상대방에 대한 애정을 버리려고 하지도 않고요.

이 복잡미묘한 설정과 캐릭터들 때문에 배우들의 비중이 무척 커졌습니다. 그리고 이 영화에서는 테레사 라이트와 조셉 코튼이라는 좋은 배우들이 매끈하게 그 일을 해내고 있지요. 조셉 코튼의, 정신적으로는 위태롭지만 매력적인 살인마와 테레사 라이트의 순진한 미국 소녀의 대결은 한마디로 불꽃이 튑니다. 너무 근사해요.

4.

히치콕이 가장 좋아하는 히치콕 영화가 [의혹의 그림자]라는 소문이 떠돈 적 있습니다. 하지만 그는 [히치콕과의 대화]에서 그 소문을 부인했지요. 그는 이렇게 말했답니다. "만약 그런 인상을 주었다면 아마도 그건 '그럴 듯함'이나 '논리성'을 따지는 친구들이 불만을 터뜨릴 수 없는 무엇인가가 이 영화에 있다고 느꼈기 때문일 겁니다."

글쎄요. [의혹의 그림자]가 그렇게까지 앞뒤가 착착 맞는 영화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왜 찰리 삼촌은 가족들이 자기와 연결시키지 못할 거라는 걸 알면서도 신문을 없애려 했을까요? 왜 그는 수사가 종결된 뒤에도 어린 찰리를 죽이려 했을까요?

[히치콕과의 대화]에 대해 한마디 더. 히치콕은 어린 찰리의 마지막 대사가 "죽을 때까지 찰리 삼촌을 사랑할 것이다"였다고 기억하고 있지만 사실과는 다릅니다. 찰리는 대충 이렇게 말했답니다. "삼촌은 세상이 끔찍한 곳이라고 생각했어요. 삼촌은 아마 영영 행복할 수 없었을 거예요. 삼촌은 사람들을 믿지 않았어요. 거의 싫어하는 것 같았지요. 삼촌은 온 세상을 싫어했어요. 삼촌은, 우리 같은 사람들은 진짜 세상이 어떤지 전혀 모른다고 말했지요." (99/12/29)

DJUNA

기타등등

히치콕은 찰리 삼촌이 탄 기차에서 카드 게임을 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