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톰 데이
Tom Dey

주연
성룡....촌 왕
Jackie Chan....Chon Wang
오웬 윌슨....로이 오배넌
Owen Wilson....Roy O'Bannon
루시 리우....페이페이 공주
Lucy Liu....Princess Pei Pei
브랜든 메릴....인디언 아내
Brandon Merrill....Indian Wife
로저 유안....로 퐁
Roger Yuan....Lo Fong
잰더 버클리....네이던 반 클립 보안관
Xander Berkeley....Marshall Nathan Van Cleef

19세기 말 중국인들의 미국 이민사를 생각해보면, 중국인들을 주인공으로 한 서부극이 나와도 이상할 건 없습니다. 워낙 많은 사람들이 바다를 건너 갔고 또 그 사람들이 겪은 일들도 참으로 파란만장했으니까요.

그리고 실제로 이런 영화들은 꽤 만들어졌습니다. 중국 쪽에서는 [황비홍 서역웅사]와 같은 작품들이 있었고, 미국 쪽에서는 비슷한 설정을 바탕으로 한 히트한 텔레비전 시리즈 [쿵후]가 있었습니다. 다들 중국 무술 영화와 서부극이라는 두 장르가 유쾌하게 결합된 작품들이었지요.

왜 이런 것들이 아직까지 장르화될 정도로 커지지 않았을까요? 소재가 두 나라에 걸쳐 있기 때문일 겁니다. 중국 영화계에서 찍으려면 미국으로 가야 하니 귀찮고, 미국 영화계에서는 중국 배우를 가지고 장사하기가 힘들지요([쿵후]는 성공한 작품이지만 사실 주인공 케인은 미국인이잖아요?)

아마 최근 불어닥친 할리우드의 중국 열풍이 없었다면 [샹하이 눈]과 같은 영화는 만들어질 수 없었을 겁니다. 물론 성룡이라는 빅 네임도 잊어서는 안되겠지요. 가능성만 존재했던 장르가 때를 만나자 할리우드에서 다시 튀어나온 것이지요.

[샹하이 눈]의 이야기는 19세기 말 자금성에서 시작합니다. 바보같은 왕자랑 결혼하기 싫은 페이페이 공주는 미국인 가정교사와 함께 미국으로 달아납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자금성에서 쫓겨난 반역자 루 퐁의 음모였어요. 루 퐁은 공주의 몸값으로 엄청난 양의 황금을 요구하고 황실 근위대가 공주를 데려오기 위해 미국으로 파견됩니다. 물론 그 중에는 몰래 공주를 짝사랑하고 있던 촌 왕도 포함되어 있죠. 촌 왕은 미국에서 어설픈 은행 강도 로이 오배넌과 얼떨결에 짝이 되어 공주를 구출하기 위해 뜁니다.

[상하이 눈]은 어떻게 보면 서부극 테마 파크에 떨어진 중국 영화 배우의 모험담처럼 보입니다. 성룡이 연기한 촌 왕은 서부극에서 반드시 나와야 할 것 같은 그런 사람들을 만나고 그만큼이나 전형적인 모험에 말려듭니다. 은행 강도와 한판붙고, 인디언 소년을 구해준 뒤 얼떨결에 부족 처녀와 결혼하고, 악덕 보안관과 한 판 대결을 벌이고... 모두 그 자체로 독립된 액션이 아니라 장르 클리셰들에서 뽑혀올려온 것들이지요.

물론 이런 영화에 나와야 할 것 같은 장르 농담도 많습니다. 쉽게 존 웨인으로 전환되는 촌 왕이라는 주인공 이름부터 그렇죠. 악덕 보안관 반 클립도 리 반 클립이 떠오르지 않나요? 술집의 패싸움과 같은 서부극을 대표하는 클리셰도 예의바르게 삽입되고, 꼭 강아지처럼 구는 촌 왕의 말 파이도(!)도 서부극적인 농담이지요. [내일을 향해 쏴라]나 60년대 마카로니 웨스턴들처럼 패러디된 작품들도 있습니다. [샹하이 눈]이라는 제목 자체가 [하이 눈]의 패러디고요.

여기엔 동화풍의 터치도 있습니다. 자유를 찾아 달아난 공주와 그녀를 구출하러 온 근위대원이라는 설정은 서부극보다 동화책에 어울립니다. [개구리 왕자] 이야기를 스토리의 기둥으로 삼으려 한 시도도 보입니다. 만약 페이페이 공주 이야기가 조금 더 컸다면 정말 그렇게 될 수도 있었던 영화였지요.

심각한 부분도 있습니다. 당시 미국에서 고생하던 수많은 중국인들에 대한 이야기도 삽입되니까요. 페이페이 공주의 '정치적 자각'도 복잡하지는 않지만 꽤 심각합니다.

그러나 이런 부분은 가볍게 다루어진 편입니다. 공주가 주인공이 아니니까요. 영화가 하려는 것은 성룡을 엉뚱한 세계에 던져넣고 그 사람 특유의 현란한 액션과 코미디를 선보이려는 것입니다. 당연히 문화 충돌로 빚어지는 가벼운 코미디와 성룡식 액션 이외의 것은 뒤로 사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남은 것은 버디 영화의 구조입니다. 성룡의 부족한 영어를 커버하기 위해 할리우드가 도입한 수법이죠. [러시 아워]의 크리스 터커의 뒤를 이어 이번엔 시나리오 작가 겸 배우인 오웬 윌슨이 대사 부분을 커버하기 위해 등장했습니다. 터커처럼 에너지가 넘치지는 않지만 잘해요. 자연스럽고 자기 역을 충분히 살리면서도 성룡과 적절한 앙상블을 유지하고 있고요.

성룡은 언제나처럼 그 사람 특유의 액션을 선보이고 있습니다. 전성기처럼 화려하거나 모험적이지는 않지만 서부극의 지형지물을 이용한 새로운 액션이 등장하기도 합니다.

이것으로 만족할 수 있을까요? 글쎄요. 전 더 나아질 수도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시나리오를 만드는 건 쉽지 않았을 거예요. 영어가 딸리는 외국인 액션 배우를 주인공으로 영어 영화의 각본을 쓰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닐테니까요. 하지만 그런 언어 장벽을 무시했더라면 더 재미있는 영화가 나왔을 수도 있겠지요.

그런 가능성을 모조리 지워버린다고 해도 아주 만족할 수 있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특히 각본은 후반부에 처지는 경향이 있고 각 에피소드들도 아주 잘 연결되어 있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그런 건 전성기의 성룡 영화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샹하이 눈]이 특별히 덜 준 건 없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결점은 많지만 옛 영화의 푸근함이 잔뜩 느껴지는 구식의 선량한 영화입니다. (00/08/29)

DJUNA

기타등등

루시 리우는 현대복이 더 잘 어울리는 것 같더군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