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가이 리치 Guy Ritchie

주연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셜록 홈즈
Robert Downey Jr.....Sherlock Holmes
주드 로....존 왓슨 박사
Jude Law....Dr. John Watson
레이첼 맥아담스....아이린 아들러
Rachel McAdams....Irene Adler
마크 스트롱.....블랙우드 경
Mark Strong....Lord Blackwood
에디 마산....레스트레이드 경위
Eddie Marsan....Inspector Lestrade
켈리 라일리....메리 모스턴
Kelly Reilly....Mary Morstan

왓슨과 홈즈

이 동네에서 원칙이라고 떠도는 말들 중, 원작이 있는 영화를 리뷰하는 사람들은 원작을 잊고 그 작품을 독립적인 영화로 보고 비평해야 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틀린 말은 아니고 또 실용적이기도 합니다. 만약 모든 각색물들을 원작과 비교해야 한다면 리뷰어들의 일은 두 배가 될 테니까요.

그러나 왜 이것이 절대적인 원칙이 되어야 합니까? 우린 과연 모든 관객들에게 그런 순수성을 강요할 수 있습니까? 원작을 좋아한 팬들은 분명 영화를 통해 그들이 상상했던 영화적 가능성이 구현되는 것을 보려고 극장을 찾을 것입니다. 그들의 욕망과 기대는 무시해도 된다는 것일까요? 과연 그렇게 순수한 감상이 존재합니까?

가이 리치의 [셜록 홈즈]를 보면서 저는 계속 그 원칙에 대해 생각했습니다. 물론 리치의 영화에 나오는 사람들이 우리가 아는 홈즈, 왓슨, 아들러가 아니라고 생각하면 일은 쉽게 풀립니다. 하지만 [셜록 홈즈]라는 제목을 단 영화를 보고 극장을 찾은 관객들이 그들에게 익숙한 인물들과 어느 정도 연관이 되는 캐릭터를 기대하고 온다고 해서 그들을 탓할 수 있겠습니까?

리치의 영화가 [셜록 홈즈]라는 캐릭터에 대해 무지하다고 말하지는 않겠습니다. 적어도 영화를 보면 각본가들이 홈즈 캐릭터에 대해 일반 독자들만큼 잘 알고 있는 게 보입니다. 종종 그들은 군데군데 힌트를 흘리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도 홈즈 책은 너네들만큼 읽었어. 하지만 그냥 우리 이야기를 봐줄래?" 네, 전 그럴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래도 조건이 따라붙습니다. 그 새 캐릭터가 원작의 캐릭터와 어울리면서도 새로운 이야기에 활력을 불어넣어 줄 수 있는 재료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죠. 미안하지만 리치의 캐릭터들에서 오리지널의 재료들을 제거하면 남는 게 별로 없습니다. 막연히 몸 잘 쓰고 할리우드 개그를 능숙하게 구사하는 제리 브룩하이머 액션 영웅의 이미지만 남죠. 그렇다면 전 그냥 낭비라고 말하렵니다.

영화의 내용 이야기를 해야겠군요. 영화가 다루는 시대배경은 [네 개의 서명]과 [마지막 사건] 사이지만, 원작의 이야기와는 아귀가 전혀 맞지 않는 평행우주입니다. 그 증거로 이 영화의 셜록 홈즈는 왓슨의 결혼 며칠 전까지만 해도 메리 모스턴을 만난 적이 없죠. 홈즈는 주술 때문에 젊은 여자들을 제물로 바친 블랙우드라는 살인마를 체포하는데, 그 인물은 교수형 이후 부활해 사라집니다. 그 뒤로 그가 가입해 있던 비밀 조직의 인물들이 하나씩 살해당하고 홈즈 역시 위기를 맞습니다.

이 이야기의 분위기가 낯익다면 그건 이미 몇십 년 전에 스필버그의 회사가 [피라미드의 공포]라는 영화에서 비슷한 영역을 다루었기 때문입니다. 초자연적인 사건과 홈즈를 연결시키는 건 원작자 아서 코난 도일의 경력을 생각해보면 그리 이상하지도 않죠. 하지만 그래도 이 영화는 좀 지나치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무리 초자연적인 이야기라고 해도 명탐정이 등장했다면 그의 추리 과정이 활약의 중요한 부분으로 남아야 할 텐데 이 영화에는 그런 게 없습니다. 그냥 결말에만 엉성한 봉합을 위해 우당탕탕 등장했다가 사라질 뿐이죠. 나머지 부분은 CG를 잔뜩 쓴 할리우드 액션인데, 솔직히 전 이것만으로는 별다른 재미를 느끼지 못합니다.

남는 건 익숙한 셜록 홈즈 이야기가 어떻게 변주되는지를 보는 재미인데, 이게 심심하다는 건 앞에서 이미 이야기했습니다. 홈즈와 왓슨의 관계에서 호모에로틱한 관계를 읽는 건 재미있을 수도 있겠지만 그런 시도는 이전에도 이미 있었고 리치가 특별히 잘한 것 같지도 않습니다. 아이린 아들러 전설도 전작들에 비해 특별히 잘 만들어진 것 같지 않고 관계 묘사는 진부하기 짝이 없습니다. 무엇보다 기반이 되는 뼈대가 너무나 앙상하기 때문에 새로 만들어진 재료들이 잘 붙지가 않습니다. 그 때문에 작정하고 삽입한 패러디들도 빛을 잃고요. 결말을 보아하니 이들도 3부작 이야기를 만들 생각인 모양인데, 앞으로 나올 모리어티 교수의 캐릭터가 어떨지는 별 기대가 안 됩니다.

세상엔 수많은 셜록 홈즈 영화가 있습니다. 리치의 영화가 그 동안 나온 홈즈 영화들에 비해 특별히 못하거나 어처구니 없다고는 말하지 않겠습니다. 그 동안 정말 온갖 영화들이 다 나왔으니까요. 하지만 셜록 홈즈라는 캐릭터의 활용이라는 면에서 보았을 때 이 작품은 그렇게 높은 점수를 받을 수가 없습니다. 아무리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나 주드 로가 능글맞은 연기를 보여주어도 사정은 달라지지 않습니다. (10/01/12)

DJUNA

기타등등

1. 한스 짐머의 음악은 좋더군요.

2. 영화 속에서는 Lestrade를 레스트라드라고 발음하더군요. 이 이름을 프랑스식으로 발음하느냐, 영어식으로 발음하느냐에 따라 달라지는데, 독자들 사이에도 의견이 분분하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