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루카스 무디손 Lukas Moodysson

주연
알렉산드라 달스트룀....엘린
Alexandra Dahlström....Elin
레베카 릴례베리....앙네스
Rebecka Liljeberg....Agnes
마티아스 루스트....요한 훌트
Mathias Rust....Johan Hulth
에리카 칼손....예시카
Erica Carlson....Jessica
스테판 회르베리....마르쿠스
Stefan Hörberg....Markus
요세핀 뉘베리....빅토리아
Josefin Nyberg....Viktoria
랄프 칼손....올로프
Ralph Carlsson....Olof
마리아 헤드보리....카린
Maria Hedborg....Karin
악셀 비데그렌....오스카
Axel Widegren....Oskar

앙네스와 엘린

[쇼우 미 러브]는 지금까지 나왔던 스웨덴 영화 중 가장 화끈한 상업적 성공을 거둔 작품입니다. 스웨덴 국내에서는 [타이타닉]과 맞먹는 흥행 성적을 거두기도 했지요. 스웨덴 관객들이 얼마나 이 영화를 사랑하는지 알려면 야후 스웨덴 사이트에 들어가보기만 하면 됩니다. 이처럼 막강한 팬 사이트 군단을 거느린 스웨덴 영화가 또 있을까요?

국내의 명성에 비해, 외국에서의 성과는 그렇게까지 크지는 않았습니다. 미국에서는 게이 영화 전문 영화사인 스틀랜드가 수입해서 아트 하우스 전용으로 잠시 틀었을 뿐이었죠. 다른 나라에서는 어땠는지 잘 모르겠는데, 적어도 독일에서 이 영화가 '아트 하우스' 용 취급을 받았던 것은 분명합니다.

그런 대접은 어느 정도 부당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쇼우 미 러브]는 결코 점잔빼는 아트 하우스 영화로 만들어진 작품이 아니니까요. 이 영화의 장르는 말그대로 틴에이저 로맨스입니다. 값싸게 빨리 만들어서 애들 푼전을 긁어모으고 사라지는 영화들로 가득 찬 바로 그 장르지요. 이 영화 역시 그런 애들을 주관객층으로 잡고 있는 작품입니다.

앙네스

내용도 새롭지 않습니다. 자, 여기에 따돌림 당하는 아이가 있습니다. 그 아이는 학교 공주인 금발 머리를 짝사랑하고 있어요. 그런데 그 금발 공주가 내기에서 이기기 위해 따돌림 당하는 아이한테 키스를 하는군요. 모욕받은 아이는 자살까지 생각하고 죄책감을 느낀 금발 공주는 아이에게 사과합니다. 여기서 둘의 우정이 싹트는 것도 같았지만, 아이의 매력에 끌린 금발 공주는 자신의 위치를 유지하기 위해 아이를 외면하고 여기서 또 갈등이 시작되지요. 물론 결말은 해피엔딩입니다.

네, 이 영화에는 틴에이저 로맨스에 들어갈 모든 게 있습니다. 스토리에서 다른 점이 있다면 따돌림 당하는 아이 역시 여자 아이이기 때문에 영화가 레즈비언 로맨스로 흘러간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레즈비언 로맨스로 보더라도 스토리는 뻔합니다. '내기에서 애정으로' 클리셰가 레즈비언 로맨스에는 없는 줄 압니까?

그러나 영화는 스웨덴 레즈비언 버전 [쉬즈 올 댓]으로 흘러가지는 않습니다. 기존 클리셰를 비틀면서 포스트 모던해지려고 하지도 않고 기둥 줄거리를 순진하게 밀어붙이는 무식한 짓도 하지 않아요. 영화의 장점은 다른 데 있습니다. 스토리는 기존 공식에 사로 잡혀 있지만 적어도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은 다릅니다.

억지로 비교하라고 한다면, 이 영화는 대충 [인형의 집으로 오세요]와 [여고괴담 두 번째 이야기]의 사이에 있습니다. [인형의 집으로 오세요]처럼 무시무시한 틴에이저의 삶을 단도직입적으로 다루고 있고, [여고괴담 두 번째 이야기]처럼 동성애적 감정 속에서 갈등하는 두 소녀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으니까요. 어떤 분들은 앙네스와 엘린의 관계에서 [올 오버 미]와의 유사성을 찾아내기도 합니다만, 글쎄요. 그렇게까지 매정한 작품은 아니라고 생각되는군요. 적어도 [쇼우 미 러브]는 가슴 한 구석에 로맨티시즘을 품고 있는 영화니까요.

위의 영화들에서 그랬던 것처럼 [쇼우 미 러브]의 장점도 사실성입니다. 그걸 어떻게 아느냐고요? 글쎄요. 완전히 알 수는 없겠죠. 언어의 장벽이 있으니까요. 일단 이 영화의 국내판 자막은 아주 나쁜 편인데다가 영어에서 한 번 건너 뛴 중역입니다. 만약 제대로 된 번역을 얻었다고 하더라도 스웨덴어의 섬세한 뉘앙스까지 파악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실제로 한국 관객들은 스웨덴 관객들이 히스테리컬할 정도로 요란하게 웃어댔던 많은 장면들을 그냥 무심하게 건너 뛰었지요.

엘린과 요한

하지만 이 영화의 소재가 된 스웨덴 틴에이저들의 삶을 이해하는 건 그렇게까지 어렵지 않습니다. 어딜가든 틴에이저들의 고민들은 다들 비슷하기 마련이고, 또 세계가 좁아져서 이들의 문화 역시 비슷해져가고 있거든요. 우리나라나 미국의 틴에이저들이 그렇듯이, 이들의 방도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브로마이드나 [스크림] 포스터로 도배가 되어 있고, 아이들은 레이브 파티와 같은 미국 문화에 열광하며 입에 육두문자를 달고 다니지요. 다들 미래에 대한 불안과 작은 마을이 일으키는 폐소공포증에 시달리고 있고요.

16밀리 필름을 블로우업시킨 거친 입자의 화면은 이런 그들의 모습을 아무런 가식 없이 담습니다. 너무 거칠어서 종종 추하게 보일 정도지요. 하지만 바로 이런 모습이야말로 그런 아이들이 세상을 보는 방식입니다. 주변이 만족스러울 정도로 아름답게 보이는 복많은 사람들은 없는 법입니다.

캐릭터들 역시 전형성보다는 이런 갑갑한 삶에서 직접 뽑아올려졌습니다. 두 주인공은 공식적인 틴에이저 영화에 나오는 '기크'와 '프롬 퀸'의 전형과 비슷해 보이지만 들여다 보면 그게 아닙니다. 영화는 그들한테 보다 깊이있는 입체성을 부여합니다. 그들의 고민도 공식보다는 그들의 삶에서 나오지요.

이들은 모두 꽤 재미있는 인물들입니다. 얼핏보기에 엘린은 그저 짜증만 심한 프롬퀸처럼 보이지요? 하지만 엘린의 틴에이저식 감정 폭발에는 단순한 호르몬 분출 이상이 있습니다. 그녀는 자신의 삶, 심지어 자신의 꿈까지도 얼마나 공허하고 지루한지 똑바로 인식하고 있습니다. 그녀의 짜증은 이런 무시무시한 상황인식에서 탈출하기 위한 필사적인 노력인 것이지요. 마찬가지로 앙네스 역시 아이들이 보는 '레즈비언' 이미지와도 다르고 그렇다고 얻어맞기만 하는 피해자도 아닙니다. 사실 이 영화에서 가장 가혹한 언어 폭력은 앙네스에 의한 것입니다. 기능성 인물들도 보기만큼 기능적이기만 하지는 않아요. 엘린이 앙네스를 잊기 위해 만나는 요한과 같은 아이를 보세요. 이 영화에서 가장 많은 동정을 받는 사람은 바로 요한입니다. 공식대로라면 요한은 정말 형편없는 아이여야 했겠지요.

커밍 아웃

심지어 이 영화도 보기만큼 전형적이지 않습니다. 이 영화는 주장처럼 레즈비언 로맨스도 아닙니다. [쇼우 미 러브]가 진짜로 관심을 가지고 다루는 것도 앙네스와 엘린의 로맨스가 아니라, 그들이 그 로맨스를 통해 조금씩 자기 정체성을 쟁취해가는 과정입니다. 이런 소재를 다룬 다른 영화들과는 달리 이들은 동성애라는 소재를 상업적으로 착취하지도 않습니다. 사실 이 영화는 섹스에 대한 이야기도 아니지요. 야한 영화를 기대하고 온 사람들은 영화가 이들의 로맨스를 얼마나 순진하게 묘사하고 있는지 보고 실망할 것입니다. :-)

네, 이들은 정말 어리고 순진해 보입니다. 아마 스웨덴 촌동네 아이들이 미국 아이들보다 더 순진해서일 수도 있겠죠. 하지만 진짜 이유는 관객들이 할리우드 틴에이저 영화에 익숙해져 있기 때문일 겁니다. 사실 할리우드 틴에이저 영화에 나오는 학교는 진짜 학교가 아니라 판타지랜드이고, 10대 후반이라고 나오는 아이들도 20대 중반의 성인 배우들이잖아요. 그들과는 달리 [쇼우 미 러브]는 진짜 틴에이저들을 보여줍니다. 우리가 낯설어하는 건 당연하죠!

앙네스와 엘린을 연기한 레베카 릴례베리와 알렉산드라 달스트룀(이들은 모두 이 영화로 모국에서는 어마어마한 스타 대접을 받고 있습니다)도 기가 막히게 잘 캐스팅된 배우들입니다. 물론 릴례베리가 '왜 난 이렇게 못생겼지!'를 외쳐대기엔 지나치게 예쁘다고 주장할 수도 있겠죠. 그러나 꼭 그 대사를 말 그대로 받아들여야 합니까? 둘은 잘 어울리고 둘 사이의 긴장감과 애정은 사랑스러우며 마땅히 따라야 할 틴에이저 식 서투름과 불안함도 멋지게 표현해내고 있습니다.

[쇼우 미 러브]는 장르 공식과 사실성 사이에서 균형을 잡으면서 흥미로운 이야기를 끌어내는 데 성공하고 있습니다. 영화는 종종 필요 이상으로 거칠고 가끔 정도를 벗어날 때도 있지만, 이처럼 흥미로운 게이 성장 영화를 찾기도 쉽지 않아요. 적어도 요즘에는요. (00/04/28)

DJUNA

기타등등

이 영화의 원제는 [Fucking Åmål]입니다. Åmål은 이 영화의 무대가 되는 작은 마을의 이름입니다. 꽤 정곡을 찌르는 제목이지요. 'Fucking Åmål'라는 거친 제목은 에린과 앙네스의 갇힌 듯한 느낌을 완벽하게 표현해내고 있으니까요. 하지만 그냥 제목으로 쓰기엔 너무 거칠어서 영어판에서는 [Show Me Love]라는 보다 평범하고 안전한 제목을 취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