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럭키 맥키 Lucky McKee

주연
안젤라 베티스....아이다 티터
Angela Bettis ....Ida Teeter
에린 브라운....미스티 폴즈
Erin Brown....Misty Falls
제시 루빅....맥스
Jesse Hlubik....Max
마샤 베넷....라나 비즐리
Marcia Bennett....Lana Beasley
찬드라 버그....무당벌레
Chandra Berg....The Ladybug
마이크 맥키....말콤 울프 교수
Mike McKee....Professor Malcolm Wolf

아이다

"윌리엄 말론과 럭키 맥키가 어떻게 '마스터즈 오브 호러'냐?"라고 투덜거리는 사람들이 많죠? 하지만 [마스터즈 오브 호러]라는 제목의 의미에 그렇게까지 집착할 필요는 없지요. 아무리 감독의 이름값에 의지하는 시리즈라고 해도 가장 중요한 건 역시 작품의 질이니까요. 그리고 럭키 맥키의 [식 걸]은 이번 시즌에선 이름값을 못했던 '마스터들'인 래리 코헨이나 토브 후퍼의 작품들보다 훨씬 좋거든요.

[식 걸]은 노골적인 호러물이 아닙니다. 진짜 장르는 그냥 로맨틱 코미디예요. 사랑스럽고 조금 괴팍한 두 사람이 운명적으로 만나 사랑을 나누고 위기를 맞고 그러다 해피 엔딩에 골인한다는 거죠. 인간을 숙주로 이용하는 거대한 곤충이 이들 사이에 끼어든다는 게 차이점이라면 차이점이겠지만요.

우리의 주인공 아이다는 곤충학자입니다. 곤충을 너무나도 사랑해서 수백 마리의 곤충들과 함께 살고 있지요. 바로 그 때문에 이 사람의 데이트 전선은 엉망입니다. 영화가 시작되자마자 아이다는 한 동안 데이트하던 여자친구에게 차였죠. 절망에 빠진 아이다 앞에 나타난 건 직장인 박물관 로비에 죽치고 앉아 요정 그림을 그리는 다소 괴팍한 아가씨인 미스티. 둘은 순식간에 사랑에 빠지지만 중간에 일이 잘못되고 맙니다. 브라질에서 아이다네 아파트에 소포로 배달된 정체불명의 곤충이 우리에서 탈출해 아이다의 베개 속에 숨은 거죠. 그리고 미스티는 그 곤충에게 감염되고 맙니다.

그 곤충에게 감염되면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는 말할 필요가 없겠습니다. 전형적인 50년대 싸구려 SF적인 설정이니까요. 단지 이 영화가 베개 속의 곤충이라는 설정을, 제가 제목을 까먹은, 모 라틴아메리카 단편에서 빌렸을 가능성이 높다는 건 언급하고 넘어가야 할 것 같군요.

내용이 무엇이건, 이 영화의 가장 재미있는 부분은 아이다 티터라는 캐릭터에서 나옵니다. 럭키 맥키와 주연 배우 안젤라 베티스로부터 너무나 자연스럽게 도출되는 인물이죠. 다소 괴상한 분야에 집착하는 뻣뻣한 전문가이고 수줍고 사교성이 부족하고 바로 그렇기 때문에 상대방에게 자신의 감정을 너무나도 쉽게 노출시키는 그런 인물이에요. 옆에서 아이다의 어깨를 톡 건드려도 온갖 드라마와 코미디가 와르르 쏟아집니다. 30년대 스크루볼 코미디풍으로 이 인물을 연기하는 안젤라 베티스를 보는 건 정말 즐거워요.

아이다의 여자친구인 미스티도 그만큼이나 재미있습니다. 이 사람도 아이다만큼 정상성의 기준에서 어긋나 있지요. 요정에 집착하고 늘 세상에서 반쯤 벗어난 듯 하며 비정상적으로 빠른 속도로 지껄이는 이 화가 지망생은 아이다와 썩 좋은 콤비입니다. 물론 배우로서 실력을 발휘할 기회는 이 사람이 곤충한테 감염되어 컴컴한 광기를 노출할 때부터지만요. 미스티를 연기한 에린 브라운은 미스티 먼데이라는 예명으로 더 잘 알려진 소프트코어 포르노 전문배우인데, 그 경력에 집착할 필요는 없을 거예요. 예상 외로 잘 하거든요. 하긴 그 사람이 출연한 영화 제목들을 보니 장르 경험이 없다고는 못하겠네요. [Screaming Dead], [Vampire Vixens], [Lust in the Mummy's Tomb], [Vampire Strangler]...

로맨틱 코미디와 괴물 영화가 만나면서 [메이]로 익숙해진 럭키 맥키의 세계가 완성됩니다. 물론 [메이]보다는 훨씬 낙천적이에요. 처절하게 외롭고 고립된 메이와는 달리 아이다에게는 존중받는 직업과 자길 사랑해주는 여자친구가 있으니까요. 마지막 '해피 엔딩'도 살짝 [메이]의 분위기를 풍기긴 하지만 그 정도로 절박한 느낌은 없습니다. 뭐, 상황을 다시 보면 곤충 괴물이 개입하지 않았어도 아이다와 미스티는 함께 잘 살았을 것 같거든요. 이 영화의 곤충 괴물은 오히려 가해자에게 피해가 돌아가는 부메랑 코미디의 느낌이 더 강합니다.

의도가 무엇이건, [식 걸]은 귀엽고 아기자기한 로맨틱 코미디입니다. 그 정도만 해도 충분하죠. 전 결말의 폭력이 다소 불필요했다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마스터즈 오브 호러] 시리즈의 에피소드를 찍으면서 그 정도의 피도 튀기지 않는다면 의무를 다하지 않은 것이 아니겠어요? (06/08/30)

DJUNA

기타등등

1. 원래 이 영화는 로저 코먼이 감독할 예정이었습니다. 그가 만들었다면 주인공은 남자가 되었겠죠. 럭키 맥키가 감독직을 맡은 뒤로 주인공이 여자가 되었다고 들었거든요. DVD를 보신 분들은 확인해주시길.

2. 울프 교수로 나오는 마이크 맥키는 럭키 맥키의 아버지입니다.

3. 위에서 제가 언급한 단편은 오라시오 키로가의 [깃털 베개]입니다. 문지 스펙트럼 중 한 권으로 나온 라 틴아메리카 환상문학선 [탱고]에 수록되어 있습니다. 박중서님이 알려주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