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알렉산더 페인 Alexander Payne

주연
폴 자마티....마일즈
Paul Giamatti....Miles
토머스 헤이든 처치....잭
Thomas Haden Church....Jack
버지니아 매드슨....마야
Virginia Madsen....Maya
산드라 오....스테파니
Sandra Oh....Stephanie
메릴루이즈 버크....마일즈의 어머니
Marylouise Burke....Miles' Mother
제시카 헥트....빅토리아
Jessica Hecht....Victoria
미시 도티....캐미
Missy Doty....Cammi
M.C. 게이니....캐미의 남편
M.C. Gainey....Cammi's Husband

스테파니, 잭, 마야, 마일즈

마일즈와 잭은 단짝 친구입니다. 얼핏 보면 그들처럼 어울리지 않는 한 쌍은 없는 데 말이에요. 마일즈는 지적이고 신경질적인 와인 애호가입니다. 반대로 잭은 단순하고 생각없는 바람둥이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십 년 동안 우정을 이어오고 있으니 감동적이라고요? 글쎄요. 저에겐 그냥 처량해 보입니다. 잭은 마일즈에게 수준 맞는 대화상대가 되어주지 못합니다. 마일즈 역시 잭이 일으키는 단순무식한 소동을 맘 편히 받아주거나 따라갈만한 위인이 못되고요. 그들이 아직도 단짝 친구인 건 그들의 우정이 상호보완적인 역할을 하기 때문이 아니라 새 친구들을 찾을만큼 부지런하지도 못하고 그럴만한 에너지도 없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삶도 처량하다면 처량합니다. 그들이 사회적 낙오자라는 말은 아니에요. 마일즈는 중학교 영어 교사입니다. 봉급은 꼬박꼬박 나오고 소설을 쓸 시간 여유도 있지요. 배우인 잭의 상황도 평균적인 SAG 멤버들의 생활수준을 고려해보면 괜찮은 편입니다. 소프 오페라의 고정 캐릭터도 한 번 연기한 적 있고 꾸준히 광고일이 들어오니 말이죠. 문제는 거의 중년에 다다른 그들의 삶이 정체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잭은 아무리 노력해봐도 소프 오페라에 출연했던 잠깐의 전성기는 되찾지 못할 겁니다. 마일즈 역시 팔릴 가능성이 없는 소설을 쓰며 영원히 중학교 교사로 늙어 죽을까봐 걱정하고 있고요.

소설을 써서 보내놓고 출판사의 응답을 기다리던 마일즈는 곧 결혼을 앞둔 잭과 여행을 떠납니다. 그들의 여행도 조금 그들의 현재 상황과 닮았습니다. 직선으로 뻗는 대신 산타 바바라의 모텔에 머물며 주변의 와인 농장들 사이를 뱅뱅 도는 것이니까요. 거기서 그들은 두 여자를 만납니다. 철학교수 남편과 얼마 전에 이혼한 웨이트리스인 마야와 와인 농장에서 일하는 스테파니죠. 마일즈와 잭은 그들과 사랑에 빠지지만 일은 역시 쉽게 풀리지 않습니다. 마일즈는 아직도 자길 떠난 전처 빅토리아를 잊지 못하고 있고 잭은... 곧 결혼할 사람이니까요.

렉스 피켓의 동명 소설을 각색한 [사이드웨이]는, 지금까지 알렉산더 페인이 만든 다른 영화들과 마찬가지로 차별없는 냉정한 유머에 바탕을 두고 있습니다. 주인공들에 동정적이고 충분히 감정이입도 하고 있지만 결코 그들에게 필요 이상의 관대함은 베풀지 않죠. 아마 페인이 이 소설을 영화화하고 싶었던 이유도 그 예술적 태도가 자신의 최근 경향과 일치했기 때문일 겁니다. 대상에 대한 냉정하고 공격적인 유머로 주인공에 대한 연민과 동정을 불러일으키게 하는 아이러니컬한 태도 말이죠.

영화가 스토리와 묘사의 도구로 삼는 건 와인입니다. 남자들은 와인 애호가들이고 여자들은 모두 와인 관계 일을 하고 있지요. 그들은 자신에게 닥친 모든 것들을 이 발효된 포도액에 투영합니다. 와인은 사랑과 섹스의 상징이기도 하고 캐릭터들의 상징이기도 하며 직설적인 슬랩스틱 코미디의 도구이기도 합니다. 종종 와인은 또다른 캐릭터처럼 주인공들의 삶에 간섭하고 그들과 대화를 나누고 그들을 난처한 지경에 빠트리고 사라집니다.

[사이드웨이]라는 영화도 조금 와인을 닮았습니다. 스토리보다 관객들이 느끼는 현재의 감정과 감각에 더 치중하는 영화지요. [사이드웨이]는 분명한 기승전결에 의해 유지되는 영화는 아닙니다. 영화가 끝날 무렵에도 주인공들의 고민은 그대로 남고 해결책도 제시되지 않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건 단선적인 스토리가 아니라 제시되는 여러 에피소드를 통한 캐릭터의 묘사입니다. 이들에게 해답이 제시되느냐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건 그 순간 캐릭터들이 관객들에게 얼마나 호소할 수 있느냐입니다.

잭 니콜슨, 리스 위더스푼과 같은 스타들의 명성에 의지하고 있던 페인의 전작들과는 달리 [사이드웨이]는 주류 할리우드 스타들을 전혀 캐스팅하지 않고 있습니다. 한 명은 오래 전에 반짝했다 한 물간 스타이고, 두 명은 할리우드 주변부에서만 빙빙 돌던 평범한 경력의 배우들이고, 다른 한 명은 모국인 캐나다에서는 인정을 받았지만 할리우드에서는 늘 조연으로 만족해야 했던 한국계 배우지요. 처음부터 외인부대의 느낌을 강하게 풍기는 이 캐스팅은 의도적이었을 겁니다. 이런 이야기에서 너무 화려한 배우들이 등장하면 진실성이 떨어지니까요. 하여간 이들의 선택은 거의 완벽했습니다. 배우들이 만들어내는 앙상블은 정말 훌륭합니다. 모든 배우들에게 '재발견'이라는 딱지를 달아주고 싶을 정도로요. (05/02/10)

DJUNA

기타등등

오크 통에 담아 발효시키는 캘리포니아 와인에 대한 마일즈의 불평을 들으면서 [몬도비노]를 떠올리지 않는 건 불가능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