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루벤 마물리안 Rouben Mamoulian

주연
프레드 아스테어....스티브 캔필드
Fred Astaire....Steve Canfield
시드 섀리스....니나 요센코
Cyd Charisse....Nina Yoschenko
재니스 페이지....페기 데인튼
Janis Paige....Peggy Dainton
피터 로레....브라노프
Peter Lorre....Brankov
조지 토비아스....바실리 마르코비치
George Tobias....Vassili Markovitch
줄스 먼신....비빈스키
Jules Munshin....Bibinski
요셉 불로프....이바노프
Joseph Buloff....Ivanov
빔 소넨벨트....보로프
Wim Sonneveld....Boroff

스티브와 니나

[실크 스타킹]은 그레타 가르보가 출연한 두 편의 후기 코미디들 중 첫 편인 [니노치카]를 각색한 콜 포터의 브로드웨이 뮤지컬을 다시 영화로 옮긴 작품입니다. 파리에서 미국인 바람둥이가 소련 공산당원과 사랑에 빠진다는 내용은 같습니다. 단지 여기서는 미국인 바람둥이가 파리에서 [전쟁과 평화]를 찍으려는 영화 제작자로 설정되어 있습니다. 이들을 연결시켜주기 위해 그가 영화음악을 위해 고용하고 싶어하는 러시아인 작곡가 보로프라는 캐릭터가 추가되지요.

내용은 같지만 분위기는 다릅니다. 물론 장르도 다르죠. [니노치카]가 날카롭고 위트 넘치는 코미디라면 [실크 스타킹]은 보다 달짝지근한 뮤지컬입니다. 소련이라는 나라를 그리는 방식도 바뀌었습니다. 30년대 말에 만들어진 [니노치카]에서 소련은 우리의 주인공들을 유머없고 멋없는 촌뜨기들로 그리기 위한 핑계였습니다. 하지만 냉전시대인 50년대 중반에 만들어진 [실크 스타킹]이 그리는 소련은 보다 폭력적이고 위험하며 억압된 독재국가입니다.

장르를 바꾼 것 정도는 봐줄 수 있습니다. [실크 스타킹]은 여전히 잘 만든 MGM 뮤지컬이기 때문이죠. [악대차]에서 함께 공연했던 아스테어와 섀리스는 이 영화에서 재회해 멋진 댄스 넘버들을 선보입니다. 제가 가장 맘에 들어하는 장면은 주인공 캔필드와 니노치카가 빈 영화 스튜디오에서 추는 춤입니다.

하지만 [실크 스타킹]은 [악대차]처럼 생명력 넘치는 걸작은 아닙니다. 57년이라면 MGM 뮤지컬 영화가 서서히 종말을 고하던 때이긴 했죠. 뮤지컬의 인기는 떨어지고 있었고 프레드 아스테어(이 영화가 그의 마지막 MGM 뮤지컬입니다)와 진 켈리 같은 스타들도 MGM을 떠나던 때였으니까요. 영화가 내세우는 콜 포터의 음악도 그렇게 기억이 남거나 생기발랄하지 못합니다. 원작에서 차용한 몇몇 장면들(예를 들어 니노치카의 총살형)은 원작의 이미지가 너무 강해 흐릿한 모방이라는 느낌만 주고요.

그러나 진짜로 저에게 짜증나는 건 영화가 소재를 다루는 방식입니다. 전 러시아 볼세비키들이 할리우드 영화에 나와 놀림감이 되는 걸 보면서 불편해하는 편은 아닙니다. 하지만 이 영화의 냉전구도가 남녀간의 연애로 전환되고, 뻣뻣한 공산당원이 유들유들한 미국인 플레이보이에게 넘어가 '여성성'을 되찾는다는 내용으로 발전될 때 그 정치적 함의는 굉장히 재수없게 느껴집니다.

물론 이건 원작인 [니노치카]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하지만 [실크 스타킹]은 그런 느낌이 훨씬 더해요. 아마 시드 섀리스가 당당한 그레타 가르보보다 훨씬 만만해 보이기 때문일 수도 있겠죠. 그리고 적어도 가르보의 니노치카는 섀리스의 니노치카처럼 "남자에게 여자는 여자일 뿐, 하지만 여자에게 남자는 세상의 전부" 어쩌구 하는 노래 따위는 부르지 않았습니다. 원작이 가지고 있던 스크루볼 코미디의 날카로운 맛이 사라지자 [실크 스타킹]의 보수성은 터무니 없을 정도로 확장되었습니다.

할리우드 클래식 영화들을 보면서 지금의 PC 기준을 매번 적용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실크 스타킹]의 이야기는 세월이 흐르는 동안 그렇게까지 곱게 나이를 먹지는 못한 것 같습니다. 전 [악대차]을 보면서 이렇게 신경이 긁히는 일은 없거든요. [실크 스타킹]은 작품 전체를 감상하는 것보다 개별 뮤지컬 클립들만 따로 떼어내어 감상하는 쪽이 훨씬 더 즐거운 영화입니다. (04/09/20)

DJUNA

기타등등

아까도 말했지만 이 영화는 아스테어의 마지막 MGM 뮤지컬입니다. 이 영화와 [퍼니 페이스]를 끝으로, 아스테어는 잠시 뮤지컬과 작별을 고했지요. 68년에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라는 정신나간 젊은 감독이 [피니언의 무지개]라는 뮤지컬을 찍기 위해 그를 다시 불러오긴 했지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