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파스칼 보니체 Pascal Bonitzer

주연
다니엘 오퇴이유....브뤼노
Daniel Auteuil....Bruno
크리스틴 스코트 토머스....베아트리스
Kristin Scott Thomas....Béatrice
파스칼 뷔시에르....마틸드
Pascale Bussières....Mathilde
뤼디빈느 사니에....나탈리
Ludivine Sagnier....Nathalie
장 얀....제라르
Jean Yanne....Gérard
카트린느 무세....안느
Catherine Mouchet....Anne
엠마뉘엘 드보....가엘
Emmanuelle Devos....Gaëlle

브뤼노와 베아트리스

파스칼 보니체의 [작은 상처들]은 길잃은 중년 남자의 이야기입니다. 보니체는 이 영화의 아이디어를 [신곡] 도입부에서 얻었다더군요. "인생 여로 반 고개에서 나는 바로 가는 길을 잃고 있다가 알고 보니 홀로 어두운 숲 속에 와 있더라..." 어쩌구저쩌구...

영화의 주인공 브뤼노도 꼭 [신곡]의 단테와 같은 입장에 서 있습니다. 동구권 몰락 이후 공산주의 신념을 짊어지고 다니는 것 자체가 어색한데다가 여자 관계도 엉망이죠. 그러던 어느 날, 삼촌의 선거를 돕기 위해 그르노블의 작은 마을에 온 브뤼노는 삼촌 심부름을 하기 위해 숲 속으로 차를 몰게 됩니다.

[작은 상처들]은 냉정한 영화입니다. 영화가 브뤼노를 긍정적인 인물로 평가하지 않는 건 분명합니다. 그는 책임감없고 무신경한 바람둥이이고 입만 산 스노브인데다 정치적 신념도 변변치 않습니다. 한마디로 프랑스 좌파 지식인 스테레오 타입에서 역겨운 점만 골라서 품고 있어요.

하지만 영화는 그를 적극적으로 비판만 하지는 않습니다. 아마 그러기엔 보니체 자신과 너무 가까운 인물이 아니었나 싶어요. [작은 상처들]은 공격적인 풍자극보다는 과장된 로맨스에 가깝습니다. 보니체는 일종의 독일식 로맨티시즘을 추구했다고 하더군요. 카스파 프리드리히의 그림에서 느껴지는 초월적인 분위기 말이에요. 치밀한 구조 대신 반지나 립스틱과 같은 자잘한 소도구들과 우연의 일치에 끌려가는 꿈결과도 같은 스토리 전개도 그런 분위기에 일조하죠. 브뤼노는 21세기를 사는 냉소적인 지식인이지만 그가 프랑스의 숲 속에서 겪는 모험담은 마치 19세기 독일 로맨티시트 소설가가 그려낸 것 같습니다. 특히 그가 숲 속의 저택에서 만난 정체불명의 여성 베아트리스와 나누는 감정의 교류는요(물론 그 사람의 이름이 베아트리스인 건 우연이 아닐 겁니다).

풍자극과 로맨스는 보니체의 의도만큼 잘 섞이지는 않습니다. 서로를 갉아먹는다고 할 수 있을 거예요. 보니체의 의도는 논리적으로만 완벽하게 짜여져 있습니다. 하지만 그게 드라마와 섞이면서 망가지기 시작하는 거죠. 특히 풍자극과 로맨스의 결합은 완전히 잘못된 선택이었습니다. 풍자극은 충분히 날카롭지 못하고 로맨스는 주인공이 워낙 짜증나는 인물이라 감정이입이 어려워요. 이 이야기가 먹힐 것이라고 보니체가 굳게 믿고 있었다는 건, 그가 브뤼노만큼이나 대책없는 남자라는 증거일까요?

다니엘 오퇴이유의 연기도 브뤼노의 캐릭터를 충분히 살려내지 못합니다. 지치고 피곤한 중년 남자의 이미지는 그의 장기지만, 이 영화에서 그가 보여주는 연기는 설득력있다기보다는 기계적이고 도식적입니다. 그게 브뤼노의 캐릭터와 어울리지 않느냐고 묻는다면 그렇다고 답변할 수밖에 없어요. 하지만 브뤼노가 그처럼 재미없는 인물인 건 이 영화에서 결코 장점이 아니지 않나요?

오퇴이유가 어설픈 돈 후안처럼 거쳐가는 여자 배우들은 오퇴이유보다 재미있습니다. 특히 베아트리스 역의 크리스틴 스코트 토머스가 연극적 허세로 그려내는 멜로드라마틱한 캐리커처는 흥미롭습니다. 스코트 토머스의 캐릭터가 너무 황당해서 접근하기 어렵다면, 뤼디빈느 사니에가 브뤼노의 어린 여자친구 나탈리를 이 영화에서 유일하게 공감가는 인물로 연기하고 있고요.

[작은 상처들]은 좌절한 영화입니다. 차라리 처음부터 대책없이 로맨틱한 영화로 만들었다면 그럴싸한 캐스팅은 건졌겠지요. 하지만 보니체는 그게 너무 쑥쓰럽다고 생각했던 모양입니다. 하긴 브뤼노 캐릭터를 꾸려가는 실력을 보면 그에게 그런 순수한 로맨스는 처음부터 불가능한 것이었는지도 몰라요. (04/06/24)

DJUNA

기타등등

작년 광주 국제 영화제 상영작이었어요. 물론 전 거기 갈 수 없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