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민제 (박구)

주연
김지미....백설
도금봉....태수비
허장강....파돌계
김진규....내전시랑
황정순....유모
김동원....태수

백설과 태수

[백설공주]는 유명한 독일의 동명 동화를 한국 사극으로 옮긴 작품입니다. 그렇다고 구체적인 실제 역사적 배경을 모델로 한 건 아닙니다. [은행나무 침대]에서처럼 적당히 가상의 역사적 무대를 만든 뒤 국내 사극의 분위기와 원작의 이야기 구조를 결합한 거죠.

내용은 이렇게 됩니다. 무대는 마달 나라라는 곳인데, 의상을 보면 대충 삼국시대 정도를 시대배경으로 잡고 있는 것 같습니다. 김지미가 연기한 백설은 이곳 태수의 외동딸이고요(이 사람 아버지는 아무리 봐도 한 나라의 왕 행세를 하고 있는데 왜 태수인지 모르겠군요). 영화가 시작되면 태수는 도금봉이 연기한 두번째 아내를 맞아들이는데, 새 태수비는 파돌계라고 하는 간신과 놀아나며 나라를 말아먹습니다. 계모와 멍청한 아버지 때문에 실컷 마음 고생을 하던 백설은 간신히 살해당할 뻔한 위기를 넘기고 난쟁이골에 사는 일곱 사냥꾼들의 오두막에 몸을 숨깁니다. 한편 백설과 사랑을 나누던 김진규 내전시랑은 이웃나라 달둔으로 달아나 파돌계와 계모의 손아귀에서 나라를 되찾을 계획을 짜죠.

대충 [백설공주] 이야기가 나오죠? 어떻게 보면 조금 더 사실적이고 한국적인 [백설공주]라고 할 수도 있겠습니다. 마술 거울과 같은 초현실적인 요소도 없고 이웃나라 왕자와 같은 동화적 설정도 없습니다. 대신 태수비의 사주를 받은 방물장수 아줌마/아마추어 암살자가 등장하고 백설공주도 원작보다 조금 덜 무력해지고 덜 멍청해졌습니다. 여전히 하는 건 별로 없습니다만.

영화가 한국 사극의 형태를 취하자 우리에게 익숙한 다른 장르 관습들이 들어옵니다. 음모에 휘말려 투옥되는 충신들, 태수를 가지고 노는 간신들, 난쟁이들과 함께 숨어 있으면서도 나라와 백성들을 걱정하는 백설공주의 모습은 전형적인 동양 사극의 설정이지요. 단순히 소박한 가정 비극으로 만족하는 원작과는 달리 이 영화의 스케일은 훨씬 큽니다. 그 때문에 이야기가 더 묵직해 보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 영화에서 어떤 진중한 사실적인 느낌을 기대하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 현대 관객들에게 이 [백설공주]는 웃기고 캠피합니다.

물론 몇몇은 자연스러운 시대적 한계 때문이기도 합니다. 대표적인 경우가 음악이지요. 이 영화는 직접 음악을 작곡하는 대신 유명한 할리우드 영화 음악들을 염치없이 따서 쓰고 있는데, 당시엔 흔한 일이었지요. 하지만 최종 결과가 굉장히 웃긴 건 부인할 수 없습니다. 태수비가 처음 등장할 때 [벤 허]의 음악이 나오고, 주인공들이 재회하는 클라이맥스 장면에 옛 영어권 유행가인 [Long Ago and Far Away]가 흘러나올 때는 그냥 기가 막히는 거죠. 난쟁이들 주제곡에 대해서는 언급하고 싶지도 않군요.

계모 역의 도금봉이 입고 나오는 옷과 헤어 스타일도 상당히 재미있습니다. 다들 삼국시대 당시를 흉내낸 옷을 입고 있는데, 도금봉 혼자만 코르셋으로 허리를 죄이고 소매를 부풀린 가짜 유럽식 옷을 입고 있거든요! 이건 도금봉의 캐릭터가 외국인이라는 암시일까요? 이런 식으로 조강지처답지 않게 구는 것이 한국 처자들의 행실과 맞지 않는다는 변명일까요? 너무 깊이 생각할 필요는 없습니다만. :-P

쟁쟁한 배우들이 많이 등장하는 영화지만 모두에게 대표작이 될 만한 영화는 아닙니다. 김진규나 허장강은 그렇게 비중이 큰 편이 아니니까요. 하지만 김지미는 전형적인 비극적 여자 주인공 역을 언제나처럼 해내는 편이고 도금봉의 못된 계모도 꽤 재미있습니다. 참, 이 영화에서 난쟁이로 나오는 배우들 중 일부는 보통 키의 성인 배우들입니다. 키를 줄이기 위해 영화 내내 무릎을 구부리고 다니는 게 얼마나 딱해보이던지...

지금 와서 보면 [백설공주]는 조금 웃기고 대체적으로 귀여운 소품입니다. 하지만 자세히 보면 아주 진지한 대작 사극의 가능성도 숨어 있긴 해요. 보다 나은 각본을 쓰고 충분한 제작비의 지원을 받아 시치미를 뚝 뗀 때깔 좋은 영화를 만들었다면 결과가 어땠을까 생각해봅니다. (05/03/28)

DJUNA

기타등등

이 영화도 오프닝 크레딧이 없군요. 이것들은 다 어디로 사라지는 거랍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