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최양일

주연
지진희....장태수/장태진
강성연....강미나
문성근....구양원
이기영....남달구
조경환....송인
오만석....점박이

태수

[수]의 원작은 신영우의 만화 [더블 캐스팅]인데, 영화를 보면 꼭 판권을 살 필요도 없었던 것 같습니다. 죽은 쌍둥이 형제의 신분을 훔쳐 복수를 하는 남자 이야기는 이미 넘치고 넘쳤잖아요. 가까운 예로 얼마 전에 방영된 KBS 미니 시리즈 [부활]이 있죠. 원작 만화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면 영화가 만화 스토리의 장점을 그렇게까지 꼼꼼하게 챙긴 것 같지도 않고요.

하여간 기본 내용은 이렇습니다. 장태수는 수라는 별명으로만 알려진 해결사입니다. 태수에겐 어렸을 때 헤어진 쌍둥이 동생 태진이 있는데, 그는 지금 경찰이죠. 간신히 태수는 태진과 만나지만 바로 그 만남의 순간에 태진은 정체불명의 악당에게 저격당합니다. 복수를 위해 태수가 할 수 있는 일은 뭘까요? 물론 태진으로 변장해 경찰서에 잠입하는 것입니다.

이 설정은 굉장히 많은 이야기들을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신분위장의 서스펜스, 범죄 세계와 경찰서를 오가면서 펼칠 수 있는 다양한 음모... 분명 원작 만화는 그걸 모두 다루었을 거라고 믿습니다.

하지만 영화 [수]는 플롯 자체엔 무관심합니다. 설명은 구멍투성이이고 전개되는 이야기는 극도로 단순하죠. 복수를 위해 온갖 계략을 짜낼 수 있는 유리한 위치에 있으면서도 태수는 아무 것도 안 합니다. 대신 온갖 흉기로 무장한 채 무작정 적진으로 뛰어들어 인명손상이 엄청나고 자기도 굉장히 많이 다치는 험악한 칼질을 해댑니다. 그게 다예요.

[수]는 무자비하고 단순한 오락입니다. 영화가 음모와 계략에 신경쓰지 않는 건 영화의 관심과 무관하기 때문이죠. 영화가 원하는 건 육체가 해체되고 피가 터져 나오는 극단적인 폭력으로 관객들의 카타르시스를 유도하는 것입니다. 물론 그러는 동안 영화는 주인공이 어떻게 되건 신경쓰지 않습니다. 마지막 피바다 학살이야말로 영화의 궁극적인 목적이기 때문이죠. 그 뒤엔 어떻게 끝나도 상관없습니다. 회칼을 들고 슬로우모션으로 달리는 소년들, 눈 먼 아코디언 연주자, 춤추듯 착 달라 붙어 서로의 몸에 칼을 쑤셔박는 남자들로 구성된 이 학살의 제의가 일본적이라고 해석할 수도 있을 겁니다.

[수]가 그리는 경찰과 범죄자들로 구성된 세계는 은근히 현실적입니다. 적어도 분명한 자기 존재감이 있지요. 친절한 설명들이 제거되어 있기 때문에 이야기는 오히려 사실적으로 느껴지고 그들이 그리는 세계도 더 커보입니다. 한국어에 익숙치 않은 감독의 작품인데도 불구하고 영화의 대사는 웬만한 한국 경찰물들보다 나으며 어색한 느낌도 적습니다. 연기 지도도 잘 되어 있고요. 단지 홍일점인 강성연을 어떻게 다루어야 할 지 몰라 어쩔 줄 몰라하는 티가 조금 나긴 하지만 뭐든지 다 잘할 수는 없는 거겠죠.

지진희에 대해 말하라고 한다면... 전 그가 잘 캐스팅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지진희의 트레이드 마크는 커피 광고에 어울릴 법한 부드럽고 신사적인 이미지인데, 그건 다시 말한다면 그가 자신의 감정을 철저하게 통제할 줄 아는 배우라는 뜻도 됩니다. 감정의 폭발로 에너지를 낭비하지 않고 자신이 가진 모든 걸 원수의 학살에 집중하는 전문 킬러로서 그는 아주 잘 어울립니다. (07/03/15)

DJUNA

기타등등

영화가 끝날 무렵엔 태수보다 뒤에 남아 보고서를 작성해야 할 다른 사람의 운명에 더 신경이 쓰이더군요. 저 시체들을 도대체 어떻게 설명해야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