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로저 도널드슨 Roger Donaldson

주연
나타샤 헨스트리지...."실"
Natasha Henstridge...."Sil"
벤 킹즐리....자비어 피치
Ben Kingsley....Xavier Fitch
마이클 매드슨....프레스턴 레녹스
Michael Madsen....Preston Lennox
알프레드 몰리나....스티븐 아든 박사
Alfred Molina....Dr. Stephen Arden
포레스트 위테이커....댄 스미스슨
Forest Whitaker....Dan Smithson
마그 헬젠버거....로라 베이커 박사
Marg Helgenberger....Dr. Laura Baker
미셸 윌리엄즈....아역 "실"
Michelle Williams....Young "Sil"

1.

외계인 침략은 진부한 소재지만 저희들은 언제나 진부한 SF 소재들에 매료당해 왔습니다. 우주 전쟁, 더블 아이덴티티, 도망치는 로봇, 학대받는 돌연변이, 화성의 운하... 그랬으니 [스피시즈]의 소재도 반갑기 그지 없는 것이었죠. 최근 들어서 순수한 '외계인 지구 침략'소재 영화는 자주 접하지 못했으니까요.

본 소감이 어땠냐고요? 재미 있었어요. 하지만 전에 저희들의 글을 읽어보신 적이 있는 분들이라면 이런 말이 하나도 믿을 만하지 못하다는 걸 아실 겁니다. 듀나 패거리가 재미없게 본 영화는 거의 없다는 걸 아실테니까. 사실 잘 보고 나오기는 했지만 불만이 꽤 됩니다. 칭찬해 주고 싶은 점보다 더 많은 것 같아요.

2.

[스피시즈]의 시작은 SF 독자들에게 매우 익숙합니다. 외계에서 온 전파를 CETI팀들이 잡아내고 그들은 그 정보를 바탕으로 외계인 DNA와 인간의 DNA를 결합해서 중간종을 만들어냅니다. 실험체는 SIL이라는 암호명이 붙여진 여자 아이인데 무섭게 빠른 속도로 성숙하죠. 자, 어디서 많이 들어본 이야기죠? 바로 프레드 호일의 [안드로메다의 A]가 아닙니까! 그 책을 읽어본 적이 없으니 더 이상의 일치점은 모르겠지만 적어도 도입부의 발상은 동일합니다.

[안드로메다의 A]말고도 영화를 보면 연상되는 작품들이 꽤 많습니다. H.R. 기거의 디자인은 [에일리언]에서 많이 벗어나지 않았고 실이 죽는 장면은 [터미네이터 2]와 아주 비슷합니다. 크리스토퍼 영의 음악도 제임스 호너와 같은 작곡가들의 기존 음악과 유사하며 남자들을 죽이고 다니는 팜므 파탈의 이미지는 [원초적 본능] 이후 죽도록 보아 왔습니다.

소재의 진부함을 탓할 생각은 없습니다. 하지만 진부한 소재를 진부한 방식으로 만들었다는 것까지 변호해줄 필요는 없습니다. [스피시즈]를 아무리 칭찬해주고 싶어도 여러 곳에서 너무 많이 베낀 영화라는 비판에는 별로 맞서고 싶지 않습니다.

3.

자, [스피시즈]의 주인공은 누구일까요? 실? 아니면 제거팀? 도대체 누구한테 감정이입을 시켜서 영화를 보아야 할까요? 장르 규칙을 따진다면, 당연히 제거팀의 입장으로 보아야겠죠. 그런데 그게 잘 되지 않습니다.

일단 제거팀 다섯 명 중 어느 누구에게도 개인적인 매력을 느낄 수 없다는 점이 큰 문제입니다. 등장인물들이 모두 종이인형 같은데 글쎄, 그런 사람들이 다섯 명이나 됩니다! 아무래도 시선은 이리저리 흔들리게 되고 결국 그들이 죽거나 위기에 빠져도 관객들은 담담해 질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럼, 이번에는 실을 봅시다. 실은 툭하면 사람들을 죽여대는 살인마지만 동정할 점이 수두룩합니다. 일단 실 역을 연기한 두 배우 모두 아주 아름답지요. 세상은 불공평한지라 관객들은 아름다운 사람들에게 일단 관대해지는 경향이 있습니다. 게다가 그녀가 처음에 겪는 일들을 보세요. 태어나서부터 갇히고 고립되었으며 나중에는 친부모같은 사람들에게 살해당할 뻔하기도 했고 태어났을 때부터 끊임없이 악몽과 싸워야 했습니다. 세상에 나가서 만난 첫번째 사람은 그녀를 겁탈하려고 했고요. 게다가 관객들은 그녀의 어린 시절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이유도 알 수 없는 공격에 떨며 달아나는 어린 아이의 모습에는 어딘가 가슴뭉클한 구석이 있지 않습니까? 사람을 죽여댄다고 하지만 그게 어떤 악의가 있어서 한 행동도 아니었고요.

장르의 규칙은 지켜야 하므로 각본가 데니스 펠드만은 어떻게든 실을 사악하게 묘사하려고 합니다. 그런데 그게 잘 되지 않습니다. 일관성이 없다는 느낌이 자꾸 들어요. 각본은 실과 제거팀 사이를 박쥐처럼 맴돌 뿐이라 어정쩡하기 짝이 없습니다.

차라리 실을 주인공으로 해서 그녀의 시점으로 영화 전체를 끌어갔더라면 영화가 보다 일관성이 있었을 것이고 스토리도 압축되었을 겁니다. 캐릭터를 충분히 매력적으로만 묘사한다면 아무리 살인마라도 관객들은 대충 눈감아 준다는 점은 이미 [원초적 본능]에서 배운 사실이잖아요.

4.

몇몇 디테일들에도 불만이 많습니다. 일단 실의 묘사 중 상당 부분이 건성으로 넘어갔습니다. 실은 3개월 밖에 안된 어린 아이입니다. 그녀가 아무리 천재라고 해도 어휘나 사고 방식이 성인과 같을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어른이 된 이후의 실은 너무나도 자연스럽고 너무나 인간같습니다.

실 제거팀도 엉성합니다. 무엇보다 현실감이 떨어집니다. 분자생물학자나 인류학자는 뒤에서 조언이나 해야 할 사람들입니다. 그들이 총들고 설치는 장면은 아무래도 믿을 수가 없지 않습니까?

5.

기거에게서 더이상 새로운 것을 바랄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포스터들은 인상적이었습니다.

나타샤 핸스트리지는 아름다운 배우입니다. 하지만 이 배우의 장래성에 대해서는 묻지 마십시오. 실 역은 연기력을 많이 요구하지 않는 배역이니까요. 이것만으로는 아직은 알 수 없죠.

임신했다고 기뻐하는 실의 모습을 보고 정말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각본가의 수작만 없었더라도 실은 충분히 종족번식에 성공했을텐데. 이런 영화의 대본을 지구인 각본가들에게만 일임한다는 것은 참 불공평하죠?

실이 두번째로 고른 남자를 살해할 때 나오던 음악은 바그너의 [트리스탄과 이졸데]의 마지막 장면이었죠. 적절한 선택이었지만 그 적절함이 영화의 수준을 넘어선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해봅니다. 펠드먼과 도널드슨이 조금만 더 신경썼더라면 섹스와 죽음에 관한 진짜 그럴싸한 이야기가 나왔을텐데...

(근데 포레스트 위테이커는 왜 최근 들어 게이 역만 할까요?) (95/10/11)

D&P

기타등등

어린 실을 연기한 배우 미셸 윌리엄즈는 [도슨즈 크릭]의 젠이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