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로버트 로드리게스 Robert Rodriguez

주연
알렉스 베가....카르멘 코르테스
Alexa Vega....Carmen Cortez
다릴 사바라....주니 코르테스
Daryl Sabara....Juni Cortez
안토니오 반데라스....그레고리오 코르테스
Antonio Banderas....Gregorio Cortez
칼라 구지노....잉그리드 코르테스
Carla Gugino....Ingrid Cortez
앨런 커밍....페건 플룹
Alan Cumming....Fegan Floop
로버트 패트릭....리스프
Robert Patrick....Lisp
토니 살룹....알렉산드 미니언
Tony Shalhoub....Alexander Minion
테리 해처....그라덴코
Teri Hatcher....Gradenko
치치 마린....펠릭스 검
Cheech Marin....Felix Gumm
대니 트레조...이사도르 "마셰트" 코르테스
Danny Trejo....Isador "Machete" Cortez

코르테스 가족

1995년, 한참 잘 나가던 네 명의 젊은 감독들이 작당을 해서 [포 룸]이라는 옴니버스 영화를 만들었습니다. 결과는 시원치 않았지만, 모든 에피소드가 다 형편없었던 것은 아니었어요. 적어도 로버트 로드리게스가 감독한 세번째 에피소드인 [말썽꾸러기들 The Misbehavers]이 이 영화에서 가장 재미있는 부분이라는 데에는 대부분의 관객들과 평론가들이 동의했죠. 기억나세요? 히스페닉 갱 두목과 그의 일본인 아내 사이에서 태어난 말썽쟁이 남매가 우리의 불쌍한 벨보이 테드를 죽도록 괴롭힌다는 이야기였는데요.

로드리게스는 이 꼬마들이 맘에 들었던 모양입니다. 오늘 이야기할 그의 최신작 [스파이 키즈]의 주인공 카르멘과 주니는 [포 룸]의 꼬마들과 성격과 설정이 거의 같으니까요. 수상쩍은 직업의 부모 밑에서 자란 당돌한 누나와 맹한 남자 동생 말이에요.

[스파이 키즈]의 줄거리는 간단 명료합니다. 잉그리드와 그레고리오는 서로를 죽이려 들던 스파이였지만 임무 수행 과정 중 눈이 맞아 결혼한 뒤 딸 하나 아들 하나를 낳고 평범한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어쩌다가 다시 업무에 복귀한 부부는 악당들에게 납치당하고, 세계를 구하는 임무는 막 엄마 아빠의 정체를 알아차린 그들의 아이들에게 넘어가고 맙니다.

로드리게스의 전작들에 익숙한 관객들이라면 이런 스토리에 당황할 겁니다. 피칠갑한 액션에만 밝은 줄 알았던 감독이 사람 하나 죽지 않는 얌전한 어린이 영화를 만들었으니 말이에요. 몇몇 사람들은 그의 의도를 의심할 거예요. 실제로 로드리게스는 자기 아이들도 볼 수 있는 영화를 만들고 싶어서 [스파이 키즈]를 찍었다고 했었다니, 이 작품에서 폭력 영화 전문 감독인 아빠의 죄책감을 읽어내려고 시도하는 사람들도 많겠지요.

그러나 정작 영화 속에서 그런 '의무감'이나 '죄책감'을 찾긴 힘듭니다. 그건 로드리게스가 정말로 이 어린이 영화 장르를 즐기고 있기 때문이지요. 생각해보면 그는 은근히 이 장르와 잘 맞는 편입니다. 그의 장점은 엄청나게 과장되어서 어처구니 없어 보이기까지 하는 액션입니다. 종종 이런 것들은 어른들의 상식 속에 갇힐 수밖에 없는데, 어린이 영화에서는 이런 것들이 마구 풀려날 수 있거든요.

로드리게스는 오래간만에 옛 장난감들을 다락방에서 다시 찾은 어른처럼 이런 소박한 환상을 즐기고 있습니다. 영화는 일단 진지한 어른들의 비전을 몽땅 제거하고 있습니다. 스파이들이 주인공이기는 하지만 역사나 정치 따위는 전혀 보이지 않죠. 심지어 이들이 어느 나라 스파이인지도 불분명하니까요. 무대가 되는 나라도 미국 같아 보이지는 않습니다. 히스페닉계가 인구 대부분을 차지하지만 언어는 영어를 쓰는 존재하지 않는 나라 같아요.

어른 이야기들이 지워진 빈 공간에는 전형적인 어린이 영화의 플롯이 대신 들어옵니다. 로드리게스가 카르멘과 주니의 모험담 자체를 진지하게 다루고 있음은 분명합니다. 영화는 신나는 대리 충족 환상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자가용 잠수함과 일인용 스파이 비행기, 등에 매는 비행장비, 무기로 쓰이는 풍선껌, 인간형 로봇... 다들 애들이라면 한 번씩 꿈 속에서라도 바라는 것들이죠. 모두 장난감처럼 귀엽고 동글동글하게 디자인되어 있어서 가지고 논다는 느낌을 강하게 풍기기도 하고요.

이런 이들의 모험은 악당 프룹의 동화속 성과 같은 아지트에서 더 빛을 발합니다. 많은 평론가들이 이 작품을 007 영화와 [찰리와 초콜렛 공장]의 크로스 오버 쯤으로 보고 있는데, 그럴만도 해요. 프룹의 성은 분명 윌리 왕카의 초콜렛 공장에 대항할 만한 곳이니까요. 동화 속의 성이 21세기 첨단 기술의 환상을 입고 다시 태어난 곳이지요. 마법이 SF의 첨단 기술로 바뀌었을 뿐, 사악한 마법사와 괴물들로 가득 찬 동화 속 공간이라는 사실은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어떻게 보면 어린이용 스파이물이라는 작위적인 설정을 치료해주는 것도 이 동화적인 배경이죠.

[스파이 키즈]엔 교훈이 있을까요? 네, 모범적인 어린이 영화의 교훈이 있습니다. 결국 이 영화도 고난을 겪으면서 가족의 소중함을 깨닫거나 자신감을 찾는 아이들의 이야기니까요. 하지만 이런 것들을 로드리게스가 얼마나 진지하게 이야기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어요. 너무 뻔해서 농담처럼 보일 때가 많으니까요. [스파이 키즈]는 그렇게까지 '가슴벅찬 감동'을 주려고 작정한 영화는 아닙니다.

그보다 은밀하지만 더 재미있는 '교훈'은 로드리게스가 곳곳에 묻어둔 히스페닉계의 자존심 과시입니다.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이 영화의 주인공 코르테스 가족 대부분은 히스페닉계입니다. 영화가 시작되면 아이들은 은근히 자신의 뿌리에 불만인 듯 하고요. 아버지 그레고리오가 "우리가 코르테스라는 걸 잊지 말아라!"라고 주니를 부추키자 그 아이가 "코르테스 가족인 게 무슨 도움이 된담!"하고 투덜거리는 장면은 충분히 노골적입니다. 카르멘이 터무니 없이 긴 자신의 스페인식 풀 네임에 투덜거리는 장면도 문화적 유산에 대한 불평으로 읽을 수 있지요. 하지만 영화가 끝날 무렵엔 어떻게 되나요? 코르테스 가족은 세상에서 가장 '쿨'한 스파이 가족이고, 카르멘의 풀 네임은 비밀 아지트의 문을 여는 암호입니다.

교훈이야 어쨌건, [스파이 키즈]는 유쾌한 오락 영화입니다. 지나치게 애들 영화 같고 유치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겠지만 그런 사람들 말에 신경 쓸 필요 없습니다. 쓸데없는 어른의 자존심 때문에 이만큼 재미있는 영화를 놓친다면 그 사람들 손해니까요. (01/07/26)

DJUNA

기타등등

리처드 링클레터가 스파이 중 한 명으로 나온다는군요. 어디 나오는지는 모르겠지만요. 참, 후반부에 깜짝 카메오가 한 명 나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