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크리스 콜롬버스 Chris Columbus

주연
수잔 서랜든....재키
Susan Sarandon....Jackie
줄리아 로버츠....이자벨
Julia Roberts....Isabel
지나 말론....안나
Jena Malone....Anna
리암 에이킨....벤
Liam Aiken....Ben
에드 해리스....루크
Ed Harris....Luke

1.

[스텝맘]의 트레일러를 보면 좀 황당한 구석이 있습니다. 분명히 시한부 인생을 다룬 이야기이면서도 정작 병에 대한 언급은 전혀 없어요. 그 때문에 가벼운 코미디인 줄 알고 영화관에 들어갔다가 당황한 관객이 한둘이 아니라는군요.

기본 등뼈라고 할 만한 내용을 쏙 빼놓고 광고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관객들이 죽음이라는 주제에 겁먹을까봐? 그랬다면 아예 영화를 만들지 않았겠죠. 저희 생각을 말해볼까요? 그런 식으로라도 '반전'을 감추어서 영화를 비교적 덜 뻔하게 만들 속셈이었을 거예요. [스텝맘]은 지독할 정도로 뻔한 영화거든요.

2.

[스텝맘]이 뻔하다는 것은 [스텝맘]의 줄거리가 뻔하다는 말이 아닙니다. 죽어가는 엄마가 계모에게 그 자리를 넘겨준다는 줄거리 자체는 한번쯤 다루어도 될만큼 새롭습니다. 앤 마그렛 주연의 옛날 영화가 생각나긴 하지만 이 세상에 전적으로 새로운 게 어디 있나요.

문제는 그 다루는 방식입니다. [스텝맘]에는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사용되는 가장 안이한 헐리웃식 수법들이 수영장의 대장균처럼 바글바글 모여있습니다. 의붓엄마가 슬슬 아이들과 가까워져야 할 시간이 되면 딸에게 고민이 갑자기 툭 생깁니다. 이야기가 엄마의 병 때문에 어두워질 것 같으면 갑자기 온가족이 모여 춤을 추며 관객들에게 아양을 떨고요. 의붓엄마의 무능을 드러낼 시간이 되자 아이들이 이유없이 사라지는 건 말할 필요도 없겠죠?

늘 하는 말이지만 의도만으로 모든 게 해결되지는 않습니다. [스텝맘]의 가장 큰 문제점은 거창한 문제거리를 툭 던져놓고 그걸 가장 안이한 방식으로 해결하려 했다는 점에 있습니다. 영화가 구멍투성이인 것은 오히려 당연한 거죠.

3.

모 신문기자가 그러더군요. "미국에도 저런 의붓엄마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줄리아 로버츠의 캐릭터인 이자벨이 착하다고요.

말이 거꾸로 된 것 같군요. 오히려 그런 의붓엄마는 미국에서 더 나오기 쉽지 않겠어요? 가정의 울타리에 갇혀 어머니라는 위치에 자기의 전 존재 이유를 다 거는 사람보다야, 자기 일도 있고 거스를 게 없는 직업 여성이 자기 남자의 아이들에게 더 편하게 다가갈 수 있을테니까요.

하여간 [스텝맘]이 새로운 대안적 가족에 대한 하나의 해결책을 마련해주려고 애를 쓰고 있는 게 눈에 보이긴 합니다. 그건 크리스 콜롬버스의 전작인 [미세스 다웃화이어]에서도 드러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역시 시도일 뿐, 결과는 시원치 않군요. 역시 문제를 너무 안이하게 생각했어요. 영화는 쉬크해지려고 필사적으로 노력하지만 해결책은 구닥다리입니다. 결국 엄마가 큰 모성애를 등에 짊어지고 다 해결해야 한다는 거죠.

[스탭맘]에서 아버지인 루크의 부재가 신경에 거슬리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영화는 이자벨과 재키의 갈등을 여전히 영역권 싸움 정도로 다루려고 하고 있는 모양인데, 사실 새로 생긴 문제점의 진짜 이유는 루크한테 있습니다. 커리어 우먼과 같이 살 생각이라면 전업 주부하고 살 때처럼 굴어서는 안된다는 걸 알아야죠. 이자벨이 그렇게 서툴게 돌아다니는 건, 순전히 루크가 '집안 일은 여자 일'이라는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4.

[스텝맘]에서 가장 불만족스러운 부분은 바로 결말입니다. 그게 뭔지 아세요? 수잔 서랜든이 안 죽는답니다! 갑자기 병이 나았다는 게 아니에요. 죽기 전에 영화가 끝난다는 거죠. 불치병이 기둥인 영화에서 주인공의 죽음이 안 나온다는 게 말이 됩니까?

흠, 어디서 전에도 비슷한 걸 본 것 같군요. 네, 줄리아 로버츠 영화 중에 그런 게 하나 더 있었습니다. 바로 [다잉 영]이었죠. '캠벨 스코트가 언제 죽나' 하고 미리 눈물 흘릴 준비를 하던 관객들이 [다잉 영]의 어정쩡한 결말에 얼마나 얼이 빠졌었는지.

5.

그나마 영화를 구제해주는 건 배우들입니다. 수잔 서랜든은 언제나처럼 아주 잘하고 줄리아 로버츠의 스타 파워도 여전합니다. 캐릭터의 존재감이 없어서 탈이지 에드 해리스도 믿을 만하고 지나 말론 역시 재능있는 아역이고요. 그리고 막내 역의 리암 에이트킨은 웃는 모습이 예쁘고 애교 떠는 것도 귀엽네요.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도 이 사람들은 돼지 목에 진주입니다. 좋은 배우들이 딸리는 캐릭터를 질질 끌며 헐떡대는 걸 보면 애처롭기까지해요.

6.

별점 줄 시간입니다. 내용만 따진다면 별 둘이면 족할 것 같아요. 하지만 아무래도 배우들을 무시할 수 없군요. 애들도 귀엽고. 얼굴값으로 별 반 개를 더 주겠어요. (99/01/14)

D&P

기타등등

이 영화 극장판의 자막 번역에선 성적인 평등이 상당히 잘 지켜지고 있는 편입니다. 자막 번역가가 지금까지 성차별적인 자막 번역의 모델을 꾸준히 보여주던 이미도라는 것이 좀 뜻밖이네요. 의식적인 노력의 흔적이 보입니다. 앞으로 지켜봐야겠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