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크리스 벅 & 케빈 리마
Chris Buck & Kevin Lima

주연
토니 골드윈....타잔
Tony Goldwyn....Tarzan
알렉스 D. 린츠....어린 타잔
Alex D. Linz....Young Tarzan
미니 드라이버....제인 포터
Minnie Driver....Jane Porter
글렌 클로즈....칼라
Glenn Close....Kala
랜스 헨릭슨....커착
Lance Henriksen....Kerchak
로지 오도넬....터크
Rosie O'Donnell....Terk
웨인 나이트....탠터
Wayne Knight.... Tantor
브라이언 블레스드....클레이튼
Brian Blessed....Clayton
나이젤 호손....아르키메데스 Q. 포터 교수
Nigel Hawthorne....Professor Archimedes Q. Porter

1.

글쎄요... 가장 많이 영화화된 주인공들 중 하나라지만, 전 타잔을 좋아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습니다. 저한테는 설정부터 맞지 않아요. 제가 좋아하기엔 남성 호르몬과 '자연'이 지나치게 많습니다.

그러니까 디즈니의 [타잔]은 그렇게까지 가슴벅찬 계획은 아니었지요. 습관대로 보러갈 거라는 생각이 들기는 했지만 [뮬란]이나 [미녀와 야수]처럼 숨죽이며 기다리는 영화는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꼭 비관적일 필요는 없었지요. [헤라클레스]의 경우가 있었으니까요. 전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헤라클레스의 이름만 들어도 구역질이 나지만 디즈니 영화는 괜찮았습니다. 디즈니식 각색이 오리지널의 역겨움을 상당히 지워냈기 때문이었지요. 그리스인들이나 신화 애호가들이 뭐라고 불평하건, 디즈니의 헤라클레스는 오리지널 깡패보다 훨씬 마음에 드는 친구였습니다.

그렇다면 타잔에게도 비슷한 걸 기대해도 되지 않을까요?

2.

[타잔]은 결코 독창적인 스토리를 끌어가지는 않습니다. 물론 예전의 [타잔] 영화들과는 꽤 차이가 나지만, 지금까지 디즈니 애니메이션을 지켜보아왔던 사람들은 어떤 식으로 스토리가 흘러갈 건지 대충 짐작할 수 있고 스토리는 정말로 그 예측에서 조금도 벗어나지 않습니다. 주인공은 보나마나 '나는 여기에 맞지 않아' 어쩌구의 불만을 품고 살다가 아름다운 이방인과 사랑에 빠질 거고 귀엽지만 괴팍한 친구들이 주인공 주변을 에워싸고 있을 것이며... 물론 주인공의 로맨스를 가로막는 악당도 있군요. 우리는 심지어 악당이 어떻게 죽을 건지도 예측할 수 있습니다. '악당은 죄의 대가를 받는다'와 '주인공은 직접 사람을 죽이지 않는다'라는 공식 둘을 결합하면 답이 쉽게 나오죠.

그러나 우리가 뭐 독특한 걸 보러 디즈니 애니메이션을 보나요? 그리고 이 영화는 그 기본틀 안에서 음흉할 정도로 영리하게 굴러갑니다. 그중에서도 특히 지금까지 타잔을 끌어왔던 엉터리 루소주의 판타지를 교활하게 끌어가면서도 원작의 인종차별적, 성차별적인 요소들을 비난 받지 않을 정도의 수준으로 낮추어 현대화시키는 트릭은 더 이상 나아질 수 있을 것 같지도 않습니다. 상당한 수준의 살상과 폭력을 다루면서도 비주얼을 G 등급에 맞추어내는 수완 역시 대단하고요.

이런 디즈니식 윤색 때문에 이 영화의 타잔은 원작의 타잔보다 훨씬 덜 느끼합니다. 원작에서처럼 필요 이상으로 과장된 남성성을 과시하지도 않고요. 아주 그럴싸한 선에서 멈춘 것이죠. 타잔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만족시킬만큼 거창한 액션을 선사하면서도 오리지널 캐릭터에 관심이 없거나 거부감을 느끼는 사람들도 끌어들일 수 있는 그 적당한 선에서 말이에요.

전체적으로 영화는 구렁이처럼 능숙합니다. 그리고 참 멋진 오락이에요. 드라마, 액션, 뮤지컬, 로맨스, 코미디라는 다양한 장르가 88분이라는 짧은 시간 안에 너무나도 알차게 담겨있습니다. 하긴 이렇게 잘 압축할 수 있는데 더 긴 시간이 무슨 필요가 있겠어요.

그렇다고 어떤 엄청난 영화를 기대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타잔]의 장점은 대충 여기서 끝나니까요. [뮬란]은 [타잔]보다 훨씬 덜컹거리는 영화였지만 뒷맛은 훨씬 강했습니다. 그에 비하면 [타잔]은 너무 날씬해서 오히려 믿음이 가지 않을 정도예요. 재미있지만 그렇게 오래동안 기억에 남을 영화는 아닙니다. 그러나 이들이 어떤 깊이있는 영화를 만들 생각이었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3.

디즈니가 [타잔]이라는 소재에 무언가 새로운 것을 부여했다면 그건 스토리가 아니라 비주얼일 겁니다. 딥 캔버스 기법이 과연 얼마나 비주얼에 도움이 되었는지는, 해설만 읽어서는 모르겠어요. 하지만 화면 앞에 쫙 펼쳐지는 롤러코스터와 같은 질주에는 놀랄만큼 강렬한 힘이 있습니다. 이런 종류의 질주는 컴퓨터 그래픽을 사용한 일반 실사 영화에서도 꽤 자주 보는 것이지만 그래도 정도라는 것이 있습니다. [타잔]에 사용된 애니메이션의 박진감은 웬만한 실사 영화 따위는 밟아버릴 정도로 대단합니다.

물론 아직도 실사와 컴퓨터 그래픽 사이의 갭이 눈에 들어오긴 해요. 그러나 이런 효과를 위해서라면 그 정도의 단점은 충분히 무시할 수 있습니다.

기존의 디즈니 애니메이션과 가장 큰 차이를 보이는 것은 필 콜린즈의 음악입니다. 지난 몇 년 동안 그랬던 것처럼 뮤지컬 형식을 취하는 대신 콜린즈의 노래를 그리스 연극의 코러스처럼 이용하고 있지요. 여전히 OST가 영화 마케팅과 부수입의 큰 부분을 차지하는 현실을 따르면서도 식상한 뮤지컬 트릭을 극복하는 꽤 영리한 수단입니다. 과연 몇 번이나 더 쓸 수 있을런지는 모르겠지만요.

이번 성우들은 그들의 이름이 더 자주 홍보에 이용되지 않는 게 이상할 정도로 알찹니다. 토니 골드윈, 미니 드라이버, 나이젤 호손, 글렌 클로즈, 로지 오도넬, 브라이언 블레스드... 모두 참 잘하는데, 그 중에서도 가장 재미있는 성우는 미니 드라이버입니다. 특유의 걸걸한 목소리로 정신없는 애드립을 내뱉는 드라이버의 소란스러운 푼수 연기 때문에 이 영화의 제인은 정말 새롭습니다. 캐릭터만 따진다면 타잔보다 더 새롭지요.

4.

[타잔]의 성공으로 디즈니는 [뮬란]으로 어느 정도 극복한 슬럼프를 말끔하게 마무리지었습니다. 오래간만에 첫주에 1위도 차지하기도 했고요. [타잔]이 [라이언 킹]만큼의 성공을 거두지는 못하겠지만 그래도 다들 '한숨 돌렸다'며 안심하고 있지 않을까요? 이제 이들도 어느 정도 균형 잡는 법을 터득한 모양입니다. (99/07/30)

DJUNA

기타등등

이전 디즈니 영화에 나왔던 카메오들을 찾아보시길. 막사에 놓여있던 차주전자와 찻잔들은 [미녀와 야수]에 나왔던 포츠 부인과 아이들입니다. 거꾸로 들린 포터 교수의 주머니에서 뮬란의 강아지 막동이 모양을 한 인형이 떨어지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