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장윤현

주연
심은하....채수연
한석규....조형사
장항선....오형사
유준상....김기연
염정아....이승민

(결말을 밝히지는 않겠습니다. 하지만 글의 일부가 잠재적 스포일러가 될 수 있습니다. 이 장르에 익숙하신 분들은 고려하시기를.)

1.

세 차례의 연쇄살인사건이 일어납니다. 희생자는 모두 번지르르하고 멋스런 직업에 종사하는 남자들입니다. 시체는 팔다리가 뒤섞인 채 나타나며 한 부분씩 빠져 있습니다.

한참 뇌물수수혐의로 등이 따가운 조형사를 팀장으로 한 특수수사대가 만들어지지만 성과는 지지부진. 그러나 세 번째 시체의 신원이 밝혀지면서 피해자 모두가 채수연이라는 박물관 직원의 애인이었다는 사실이 밝혀집니다. 하지만 범인의 목적은 무엇일까요?

2.

[텔미썸딩]은 무척 새로운 영화인 척 하고 싶어합니다. 그리고 아마 제작진들에게는 정말로 꽤 새로운 도전이었을 겁니다. 지금까지 한국 영화에서 이처럼 피가 많이 튀기는 영화도 없었고 토막난 사지가 이처럼 생생하게 나오는 영화도 없었습니다. 마케팅 부에서 자랑스럽게 내민 '하드 고어 스릴러(요샌 이 억지 조어를 만들어 붙이는 마케팅 유행엔 슬슬 짜증이 나기 시작합니다. 도대체 언제나 없어질지)' 딱지에는 나름대로 자부심이 숨어 있습니다.

하지만 관객들의 입장에서 볼 때, 이 영화는 [원초적 본능] 이후 수없이 쏟아진 에로틱 스릴러의 아류 중 하나일 뿐입니다. [텔미썸딩]은 장르 영화의 토막 시체들을 이어서 만든 조각품 같습니다. [원초적 본능], [제이드], [최종분석], [사랑의 파도]... 모두 시체 일부를 [텔미썸딩]에 남기고 있습니다. 고어를 늘리고 섹스를 줄여서 다른 장르인 척 위장하고 있을 뿐이지요.

이것 자체는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창의성 없는 조각보 영화라도 잘 만든 작품이면 대충 용서가 되니까요. 하지만 [텔미썸딩]은 그렇게 잘 만든 장르 영화가 아닙니다. 저희가 여러번 이야기한 적 있었지요? 장르 영화가 실패한다면, 그건 진부한 장르의 공식을 따랐기 때문이 아닙니다. 장르의 공식을 제대로 못 따랐기 때문이지요. [텔미썸딩]은 바로 그 대표적인 예일 겁니다.

기초가 되는 각본부터 문제가 많습니다. 마케팅 부에서는 '단절이 초래한 비극'을 그리고 있다느니 하면서 허풍을 떨지만, [텔미썸딩]은 시간이 남아 그런 것까지 다룰만큼 야무진 스릴러가 아닙니다. 그런 건 제대로 된 동기 설명을 하고 있는 영화나 할 일이지요. 이 영화의 살인마는 주워들은 장르의 규칙에 따라 움직일 뿐, 제대로 된 자체 논리도 가지고 있지도 않습니다(미치광이 살인은 그렇게 막돼먹은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정상적인 살인보다도 더 야무진 동기를 깔고 있지요.) 영화는 살인 동기를 대충 설명하고 있지만 진짜 덩어리라고 할 수 있는 살인 방식과 시체 전시, 기타 등등의 진행에 대해서는 꿀먹은 벙어리입니다. 아마 자기도 잘 모르는 게 아닌가 싶어요.

이 살인 미스테리를 밝히는 과정 역시 헐렁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복선은 어설프고 단서들은 설득력 없으며 형사들은 최소한의 직업적 지식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모두들 진통제에 취해 둥둥 떠다니는 것처럼 보입니다. 최종 해결에 이르는 단서도 공허하고 본 사건과 어처구니 없을 정도로 헐렁하게 연결되어 있고요. 이 각본에 비하면 저희가 지금까지 놀려댔던 [원초적 본능]류 영화들의 각본은 거의 셰익스피어처럼 보입니다.

3.

장윤현은 예쁜 영화를 깔끔하게 만들 줄 압니다. 이죽거림처럼 들리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건 유익하고 좋은 재능입니다. 말끔한 기성품의 존재는 늘 중요한 법입니다.

그러나 그는 좋은 스릴러 감독은 아닙니다. 스릴러에 가장 기초적이라고 할 수 있는 타이밍과 리듬이 형편없거든요. [텔미썸딩]은 별 것 아닌 내용에 비해 어처구니없이 느리고 길며, 편집은 중요한 액션에 제대로 모양을 잡아주지 못합니다. 스토리가 중간에 막혀 영화의 허리가 터무니 없이 따분해지는 것도 문제지요.

장윤현은 '지적인' 스릴러를 만들지도 못했습니다. 많은 관객들이 이 영화의 스토리를 따라가기 힘들어했습니다. 인터뷰를 들어보니 장윤현 감독은 그게 스토리가 복잡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더군요.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텔미썸딩]의 스토리는 관객들을 미로로 몰고갈 만큼 복잡하지 않습니다. 관객들이 혼란스러웠던 것은 영화가 그 간단한 스토리를 짜임새있게 설명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처음에는 각본 탓이라고 생각했지만, 아무래도 최종 편집의 책임이 더 큽니다.

[접속]에서는 그럭저럭 영화에 보탬이 되었던 '번지르르함'도 이 영화에선 장애가 됩니다. 리얼리티가 워낙 떨어져서 영화 전체 분위기를 서툰 헐리웃 영화의 흉내처럼 만들었으니까요.

4.

심은하는 따분합니다. 이 배우의 주름 하나 없는 멀끔한 얼굴은 그 자체로도 그렇게 동적이지 못한데, 그녀는 처음부터 끝까지 그렇게 성공적이지 못한 무덤덤함으로 일관하고 있습니다. 신비스러운 팜므 파탈로는 당연히 맞지 않고 공감가는 피해자로 보기도 힘듭니다. 이 사람은 그냥 예쁜 얼굴일 뿐입니다.

연기력도 미진합니다. 개성이 워낙 없는 캐릭터라 [미술관 옆 동물원]의 친근감이나 [청춘의 덫]의 '악악 연기'처럼 이 배우의 부족한 연기력을 커버할 요소가 전혀 없거든요.

한석규의 연기는 좀 낫지만 새로운 것은 없습니다. 기존의 우울한 형사 이미지와 한석규 연기의 매너리즘이 결합한 결과는 뻣뻣합니다.

둘 사이에는 제대로 된 화학 반응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건 심은하가 연기한 채수연이 그렇게 흡인력이 있는 인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사실 조형사도 제대로 캐릭터가 선 인물은 아니지요.

5.

영화가 가장 자랑스럽게 생각해도 될 만한 부분은 특수 분장입니다. 영화 전체를 장식하는 토막 시체들은 모두 어디다 내놔도 꿀리지 않을 정도로 높은 수준입니다. 재래식 특수 효과의 기초가 제대로 서 있지 않은 우리나라의 영화계 풍토를 생각해보면 무척 긍정적이지요. (99/11/13)

D&P

기타등등

아무리 모형이라지만, 성기와 치모가 그대로 드러나는 남자 몸을 한국 영화에서 본 건 이번이 처음인 것 같군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