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다리오 아르젠토 Dario Argento

주연
안토니 프란치오사....피터 닐
Anthony Franciosa....Peter Neal
다리아 니콜로디....앤
Daria Nicolodi....Anne
줄리아노 젬마....제르마니 형사
Giuliano Gemma....Detective Germani
존 색슨....불머
John Saxon....Bullmer
베로니카 라리오....제인 미카로
Veronica Lario....Jane Miccaro
존 스타이너....크리스티아노 베르티
John Steiner....Christiano Berti
크리스티안 보로메오....자니
Christian Borromeo....Gianni
미렐라 단젤로.....틸데
Mirella D'Angelo....Tilde
아니아 피에로니....엘사 마니
Ania Pieroni....Elsa Manni
에바 로빈스....해변의 여인
Eva Robins....Girl on Beach
카롤라 스타냐로....알티에리 형사
Carola Stagnaro....Detective Altieri
라라 웬델....마리아 알보레토
Lara Wendel....Maria Alboretto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두 번째 살인

작가들을 주인공으로 한 수많은 영화들처럼 다리오 아르젠토의 [테네브레]도 자기반영적인 측면이 강한 작품입니다. 아마 평론가들이 이 작품에 대해 이야기하기 좋아하는 것도 그 때문일 거예요. 사실 처음부터 끝까지 요란한 스타일로만 이루어진 [딥 레드] 같은 영화는 뜯어먹을 구석이 별로 없습니다. 하지만 [테네브레]는 사정이 다르지요.

영화는 피터 닐이라는 미국 추리작가가 신작 홍보차 로마를 방문하면서 시작됩니다. 하필 그가 도착한 바로 그 날 정체불명의 연쇄살인범이 여자들을 죽이고 다니는데, 그 살인은 모두 닐의 신작 소설 [테네브레]의 인용처럼 보입니다. 연쇄살인이 계속되자 닐은 동료들과 함께 살인범을 찾기 위해 나섭니다.

다리오 아르젠토의 지알로 영화들이 대부분 그렇듯, [테네브레]의 이야기도 그렇게 재미있는 편은 아닙니다. 느릿느릿 수사가 진행되는 중간중간에 아르젠토식 장갑 쓴 살인마가 칼질을 하는 거죠. 종횡무진하는 그의 스타일은 여전히 인상적이지만 솔직히 말해 지겹다는 생각이 들지 않습니까? 현란한 칼질에 흥분하는 것도 한두번이죠.

평론가들에겐 다행한 일이지만 이 영화에는 그들이 씹을만한 건더기 비슷한 것이 있습니다. 이 영화에서는 두 명의 살인범이 등장합니다. 살인범 1번은 이탈리아인 비평가인 크리스티아노 베르티로 그는 피터 닐의 소설에 영감을 받아 살인을 저지르고 다닙니다. 살인범 2번은 원래부터 미치광이 살인마 끼가 있었던 피터 닐 자신입니다. 베르티가 살인범이라는 걸 알아차린 그는 베르티를 직접 처단하고 그의 연쇄살인을 자기 알리바이로 만든 뒤 그가 평소에 죽이고 싶어했던 에이전트와 여자친구를 죽입니다.

그렇게 믿음직스럽지는 않지만 그래도 나쁘지 않은 미로가 아닌가요? 정신나간 살인범이 자기가 등장하는 영화와 제목이 같고 내용 역시 아르젠토의 전작들과 거의 같은 소설을 썼는데, 그 소설을 바탕으로 어떤 정신나간 비평가가 카피캣 살인을 저지르고, 원작자는 다시 그 모방자를 처단한 뒤 그 모방자를 또 모방해서 살인을 저지르기 시작했으니 말이에요. 이 미로를 어떻게 가지고 놀지에 대해 간섭하지는 않겠어요.

물론 이 모든 건 아르젠토의 과장된 자기 고백입니다. 영화를 통해 그는 자기 자신과 정신나간 추리작가 피터 닐이 특별히 다르지 않다고 말하는 거죠. 물론 정말 그런지는 제가 알 바 아닙니다. 중요한 건 아르젠토가 은근히 그런 식으로 관객들과 비평가들을 유도하려 한다는 것이죠. 그렇기 때문에 [테네브레]는 자기 고백보다는 노골적인 자기 과시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하긴 예술가 자신이 창조물을 능가하는 괴물처럼 여겨지는 건 이 장르에서 득이 아니겠어요?

가끔 그는 보다 유치하고 야비한 장난을 치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아르젠토의 작품들은 내용상 성차별적이라는 비난을 자주 받습니다. 이 영화에서도 어떤 레즈비언 저널리스트가 등장해서 피터 닐의 작품에 대해 거의 같은 내용의 비판을 하는데, 닐은 그에 대해 제대로 답변을 하지 못합니다. 그리고 그 저널리스트와 그 사람의 헤픈 파트너는 베르티의 다음 희생자들이 되지요. 베르티가 나중에 닐에게 그 사건의 모델이 된 소설 속의 레즈비언 커플에 대한 질문을 하자, 닐은 뻔뻔스럽게도 그들을 죄인으로 본 건 미친 살인범이고 작가로서 자긴 그들을 정상적인 커플로 다루었다고 주장합니다. 참, 염치가 없어요.

아까 전 [테네브레]가 영화에 대해 쓰기가 더 재미있는 작품이라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영화가 아르젠토의 다른 작품들에 비해 더 재미있거나 더 잘 만들어진 작품이라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그의 전성기를 마무리짓는 지알로 영화로서 [테네브레]는 여전히 검토해볼만한 가치가 있습니다. 맘에 들건, 맘에 들지 않건요. (04/08/16)

DJUNA

기타등등

제르마니 형사의 바보스러움엔 정말 질렸습니다. 가짜 칼로 자살한 흉내를 냈다고 어떻게 그걸 그냥 믿어요? 동맥을 진짜로 그으면 효과용 칼에서 가짜 피가 직직 몇 방울 나오는 정도가 아니라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