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정재은

주연
천정명....소요
조이진....한주
김강우....모기
이천희....갑바
온주완....쨍

소요

[태풍태양]을 보면서 [발레 교습소]를 떠올리지 않는 건 어려운 일입니다. 둘 다 십대 후반의 아슬아슬한 시기를 통과하는 남자아이들이 아무리 봐도 별다른 도움이 될 것 같지 않은 일에 매달려 땀을 흘린다는 이야기를 다룬 여성감독의 작품들이죠. 주인공을 제외한 나머지 남자애들이 다들 비슷비슷하게 생겨 얼굴 구별이 어려운 것도 같고. 참, 온주완은 두 영화 모두에 나오더라고요.

[태풍태양]의 이야기와 설정은 [고양이를 부탁해]의 작가/감독이 만든 것치고는 조금 실망스럽습니다. 개성적이고 사실적인 캐릭터들의 믿음직한 드라마를 다루었던 전작과는 달리 [태풍태양]의 이야기는 도식적이고 뻔해요. 인라인 스케이트에 막 발을 내딘 초보자 주인공 하나, 사려깊고 이성적인 그룹 리더 하나, 자기 멋대로 구는 '쿨'한 남자애 하나, 초보자 주인공의 가슴에 불을 당기는 '쿨'한 남자애의 여자친구 하나. 이름과 무대만 바꾸면 60년대 할리우드 서핑 영화라고 우겨도 통할 법합니다. 자기가 알고 있는 세계를 그리는 것과 재미있어 보이는 세상을 밖에서 구경하는 것의 차이겠죠. [태풍태양]은 [고양이를 부탁해]보다 한참 얇습니다.

장르에 구속되어 있어도, 주인공들의 개성이 사실적이고 강렬하다면 별 문제 없을 겁니다. 하지만 이 영화의 남자아이들은 뭔가 좀 빠진 것 같습니다. 이 나이 또래 아이들의 거칠고 파괴적이고 냄새나는 느낌이 없어요. 이건 외부인인 여성작가/감독의 한계일 수도 있고 스포츠 영화라는 장르의 한계일 수도 있습니다. [태풍태양]은 처음부터 아주 건전한 스포츠 영화로 만들어진 영화이니 후자 쪽이 더 강할 것 같군요.

그러나 이 영화의 도식성을 과장할 필요는 없습니다. 적어도 [태풍태양]은 [발레교습소]보다 훨씬 사실적입니다. 인라인 스케이트에 미친 아이들의 열광과 열정을 보여주면서도 이들 모두에게 교과서적인 해피 엔딩을 안겨주지는 않지요. 어떤 아이들은 좌절하고 어떤 아이들은 현실에 안주하고 어떤 아이들은 반쯤 목표를 이룹니다. 이들의 사랑과 욕망은 여전히 진행 중이고 영화는 이들의 이야기에 너무 빠른 결말을 주지는 않습니다.

전작 [고양이를 부탁해]가 그런 것처럼, [태풍태양]은 철근 콘크리트로 만들어진 현대 도회지의 느낌이 물씬 풍기는 작품입니다. 영화는 때깔이 곱고 듣기 좋습니다. 인라인 스케이트라는 역동적인 소재를 잘 살린 편이기도 하고요.

조금만 더 노력한다면 전 이 영화의 장점을 몇 개 더 나열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럴 열의가 느껴지지는 않는군요. 이건 영화의 평면성 때문일 수도 있고 단지 제 취향이 아니어서일 수도 있습니다. 시사회 시작하기 전에 무슨 동호회에서 나왔다는 사람들이 기자들에게 인라인 스케이트에 대한 보도 자료를 나누어주고 있더군요. 그들이 이 영화를 어떻게 보았는지 궁금해집니다. (05/05/19)

DJUNA

기타등등

엔드 크레딧을 보는 동안 전 정말 온 몸이 아팠습니다. 왜냐고요? 보면 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