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마틴 스콜세지 Martin Scorsese

주연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하워드 휴즈
Leonardo DiCaprio....Howard Hughes
케이트 블란쳇....캐서린 헵번
Cate Blanchett....Katharine Hepburn
케이트 베킨세일....에이바 가드너
Kate Beckinsale....Ava Gardner
존 C. 라일리....노아 디트리히
John C. Reilly....Noah Dietrich
알렉 볼드윈....후안 트립
Alec Baldwin....Juan Trippe
앨런 앨다....랄프 오웬 브루스터 상원의원
Alan Alda....Sen. Ralph Owen Brewster
이안 홈....피츠 교수
Ian Holm....Professor Fitz
대니 휴스턴....잭 프라이
Danny Huston....Jack Frye
그웬 스테파니....진 할로우
Gwen Stefani....Jean Harlow
주드 로....에롤 플린
Jude Law....Errol Flynn
켈리 가너....페이스 도머그
Kelli Garner....Faith Domergue
프랜시스 콘로이....헵번 부인
Frances Conroy....Mrs. Hepburn
브렌트 스파이너....로버트 그로스
Brent Spiner....Robert Gross
조시 마란....델마
Josie Maran....Thelma
에이미 슬론....알린 휴즈
Amy Sloan....Allene Hughes

하워드 휴즈

아무래도 마틴 스콜세지는 하워드 휴즈를 그의 다음 영화 소재로 고르면서 자기만의 [시민 케인]을 만들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에비에이터]를 보다보면 이 두 영화들을 비교하지 않을 수 없으니까요. 두 영화 모두 미국의 대부호의 삶을 다룬 현란하지만 씁쓸한 일대기이죠. 단지 [에비에이터]는 모델이 된 [시민 케인]보다 더 솔직하고 간결하며 직설적입니다.

영화는 하워드 휴즈의 삶에서 가장 화려했던 20여년간의 삶을 다룹니다. 엄청난 제작비를 들여 만든 대작 [지옥의 천사들]로 할리우드의 거물이 된 1920년대 말에서부터 청문회가 열리고 스프루스 구스가 역사적인(?) 비행을 한 40년대 말까지죠. 하긴 이 정도만 다루어도 할 말은 다 한 겁니다. 휴즈는 그 뒤로 죽을 때까지 추리소설에 나오는 괴짜 부호처럼 은둔생활에 들어갔으니까요.

스콜세지는 휴즈의 삶에서 무엇을 보았던 걸까요? 휴즈는 노력없이 부모의 돈으로 부자가 된 '재벌 2세'였고 대단한 재능이나 인간적 깊이를 가졌던 인물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세상에서 가장 빠른 비행기들을 몰았고 할리우드 일급 여성 스타들과 염문을 뿌렸으며 몇몇 근사한 영화들을 만들었습니다. 무엇보다 그는 부인할 수 없는 일급의 몽상가였습니다. 그는 20세기를 살면서 20세기를 꿈꾸고 만든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휴즈가 살았으며 꿈꾸었던 그 시기는 스콜세지가 언제나 매료되어있던 바로 그 시기이기도 했죠.

[에비에이터]는 한 인물에 대한 깊이있는 탐구가 아닙니다. 휴즈는 괴짜였지만 신비스럽거나 이해불가능한 인물은 아니었어요. 그의 장단점들은 모두 공개되어 있고 우린 그에 대해 알만큼 압니다. 하워드 휴즈의 이야기에서 재미있는 건 그의 내면이 아니라 그의 고민이 외부로 표출되는 과정입니다.

[에비에이터]는 기본적으로 얄팍하고 호사스러운 영화입니다. 이 영화는 자신의 모든 고민을 과시적인 장식처럼 달고 다니는 한 남자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요란한 퍼레이드입니다. 자신이 욕망하는 거의 모든 걸 소유한 결벽증에 걸린 괴짜 아저씨가 20년의 세월을 가로지르는 동안 하늘에서는 그가 소유한 비행기들이 날아다니고 그의 주변에는 캐서린 헵번이나 에이바 가드너, 진 할로우와 같은 스타들이 맴도는 것이죠.

스콜세지가 이 영화에 투자한 노력 대부분도 표면에 깔려 있습니다. 그는 그가 이미 오래전에 통달한 영화적 기교들을 총동원해서 할리우드 스튜디오 전성기이기도 했던 이 시기의 화려함을 노스탤지어가 잔뜩 묻은 영화적 꿈으로 재구성해냅니다. 그가 그리는 세계는 진짜 할리우드보다 그가 할리우드에서 만든 영화들을 보며 꿈꾸었던 환상 속의 세계에 더 가깝습니다. 심지어 스콜세지는 휴즈의 20년간을 그리면서 원시적인 2단 테크닉 컬러에서 총천연색으로 발전해가는 당시 컬러 영화의 질감을 그대로 재구성하기까지 했죠.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는 스콜세지의 비전을 구축하기 위한 완벽한 도구였습니다. 디카프리오는 기본적으로 표피적인 연기에 능한 배우입니다. 그는 뱃속에 무언가를 숨기는 대신 자기가 가진 모든 것들을 피부 위에 덕지덕지 바릅니다. 하워드 휴즈는 그런 연기에 완벽하게 맞는 인물이었습니다. 디카프리오는 휴즈의 모든 버릇들을 재발명하고 과장하고 그들을 노골적인 특유의 자기도취와 섞어 내놓습니다. 여전히 그는 휴즈를 연기하기엔 너무 젊어보이지만 상관없습니다. 스콜세지의 이 영화에서 그런 젊은 느낌은 오히려 더 잘 맞으니까요.

디카프리오를 제외한 다른 배우들은 화려한 배경이거나 도구입니다. 하지만 캐서린 헵번을 연기한 케이트 블란쳇의 연기에 대해서는 한 마디 해야겠습니다. 블란쳇은 헵번과 그렇게까지 닮은 배우는 아니지만 이 배우가 선사하는 제스처나 억양은 실제의 캐서린 헵번과 놀라울 정도로 비슷합니다. 블란쳇은 헵번을 적당히 따라하는 대신 그 특유의 습관들을 아주 교활하게 과장하기 때문에, 종종 블란쳇의 헵번은 진짜 헵번보다 더 진짜같이 느껴지죠. 더 놀라운 건 이 배우가 이 뻔뻔스러운 캐리커처에 꽤 믿음직한 인간의 모습을 담아냈다는 것입니다.

[에비에이터]는 표피만이 존재하는 영화지만, 거기에 대해 스콜세지나 그의 옹호자가 어떤 변명을 늘어놓을 필요는 없습니다. 따지고 보면 영화라는 것 자체가 감각을 자극하는 표면만으로 이루어진 예술이니까요. 스콜세지에게, 온갖 기벽에도 불구하고 얄팍한 캐리커처로만 존재할 수밖에 없었던 하워드 휴즈라는 남자의 초상을 그리는 것이 그처럼 흥분되는 작업이었던 것도 바로 그런 특성 때문이었겠죠. (05/01/26)

DJUNA

기타등등

1. 계획이 원래대로 진행되었다면 [에비에이터]는 마이클 만 감독, 짐 캐리 주연의 영화로 완성되었을 겁니다.

2. '애'로 표기해야 할 걸 '에'로 표기하는 게 요새 강박증적인 유행입니까? '애'가 그렇게 맘에 안 든다면 차라리 [에이비에이터]라고 쓰거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