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펑 샤오강 Xiaogang Feng

주연
장쯔이...황후 완
Ziyi Zhang....Empress Wan
다니엘 우....우 루안 왕자
Daniel Wu....Prince Wu Luan
저우쉰....칭누
Xun Zhou....Qing Nu
유 게....리 황제
You Ge....Emperor Li

완

[야연]은 오대십국 시대를 배경으로 한 중국판 [햄릿]입니다. 시대를 비교적 잘 잡았죠. 정말 온갖 나라들이 다 있었으니 가공의 나라를 하나 슬쩍 집어넣어 셰익스피어와 결합하는 건 일도 아닙니다. 이 영화가 과시하는 거창한 스케일과 그런 작은 나라들이 어울리는 건지 모르겠지만요.

스토리 전개는 썩 비슷합니다. 삼촌이 아빠를 죽이고 왕좌와 엄마(이 영화에서는 계모)를 취하죠. 아들은 질투와 분노에 떨고 그 옆에는 순진무구한 약혼녀가 영문을 몰라 겁에 질려 있습니다. 삼촌은 아들을 죽이려 하고 아들은 반격에 나서고 수많은 사람들이 죽습니다.

물론 다른 점들도 많아요. 죽음의 순서나 방법과 같은 것 말이죠. 예를 들어 오필리아의 죽음과 관련된 여러 설정은 [햄릿]보다 [로미오와 줄리엣]에 가까운데 아마 우연은 아닐 겁니다. 역학 관계나 캐릭터 활용 방법도 다릅니다. [햄릿]이라고 했지만, 이 영화의 주인공은 햄릿 역의 왕자 우 루안이 아닙니다. 영화의 스포트라이트는 그의 애인이었고 새 엄마이며 남편이 죽은 뒤로 그의 동생인 리와 결혼한 이 영화의 거트루드 완에게 맞추어져 있습니다. 이 영화의 거트루드는 수동적인 엄마가 아니라 스스로 황제의 자리에 오르려는 야심을 품은 당당한 주인공입니다. 상업적으로도 이치에 맞는 설정이죠. 해외시장에서 장쯔이를 팔아야 하니까요.

야심만만한 거트루드가 주인공인 중국판 [햄릿]. 잘만 다루면 그럴싸할 것 같지 않습니까? 하지만 결과는 영 아닙니다. 그 이유는... 심심할 정도로 단순합니다. 영화는 처음부터 드라마에 전혀 신경을 쓰고 있지 않아요. [햄릿]의 이야기는 순전히 근사한 동영상들을 한 줄로 엮는 핑계에 불과한 것입니다. 영화가 신경쓰는 건 전체적인 드라마의 흐름이 아니라 각각의 장면들이 얼마나 뽀대나게 그려지는가입니다.

그 결과 영화는 시퀀스 별로 딱딱 끊기고 그들은 전혀 조화를 이루고 있지 않습니다. 각 시퀀스들은 순전히 뽀대를 위해 존재하기 때문에 종종 맥락과 전혀 상관 없이 폼만 잡는 설정들이 너무 많죠. 황후와 왕자의 칼 싸움 장면이야 장쯔이에게 액션 장면을 넣어주어야 한다는 (무리한) 강박증에서 비롯된 것이겠지만, 충신의 고문 장면 같은 건 그냥 어이가 없습니다. 왜 그 영감이 날아다니면서 매를 맞아야 하는 건데요?

그 결과, 영화는 하는 이야기가 별로 없습니다. 캐릭터들은 [햄릿]의 각본에 따라 움직이지만 의지나 동기가 거의 보이지 않죠. 과연 왕자는 누구를 사랑하는 걸까요? 황후는 누구를 사랑하는 걸까요? 황후에게 권력과 사랑 중 어느 쪽이 더 중요한 걸까요? 언제부터 이 사람은 황후가 되겠다는 야심을 품은 걸까요? 화면을 뚫어지게 들여다 봐도 답은 안 나옵니다. 그들은 장쯔이나 주신, 다니엘 우와 같은 스타들의 얼굴을 뒤집어 쓴 의지없는 허상일 뿐이죠.

그래도 보기는 좋습니다. 영화보다는 패션쇼답게 좋은 거죠. 호사스러운 의상과 세트, 잘 생긴 배우들로 구성된 눈요깃거리로 [야연]은 썩 그럴싸합니다. 하지만 이렇게 하나로 연결된 영화로 보는 대신 보고 싶은 장면들만 취해서 보는 멀티미디어 덩어리로 포장되었다면 더 좋았을 걸 그랬어요. (06/09/29)

DJUNA

기타등등

소문에 따르면 20분 가까이 잘렸다더군요. 하긴 가끔 음악이 끊기고 그러기도 했어요. 잘린 부분에 어떤 장면들이 담겨 있는지 확인한다면 평가가 달라질 수도 있겠습니다. 아닐 가능성이 더 크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