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아녜스 바르다 Agnès Varda

아녜스 바르다

[아녜스 바르다의 해변]은 영화라는 매체가 얼마나 개인적인 영역까지 침... 아니, 제가 무슨 소리를 하는 건가요. 간단히 말해 이 영화는 디지털 카메라를 새 장난감으로 받은 할머니가 만든 홈비디오입니다. 그 할머니는 이 장난감을 이용해 손주들에게 자기가 살아온 이야기를 들려주려고 결정하죠. 그렇다고 심각하게 자서전을 쓸 생각은 없고 그냥 카메라를 앞에 놓고 가볍게 수다를 떨고 싶은 겁니다. 다른 홈비디오와 차이가 나는 점이 있다면 그 할머니가 누벨바그의 일원이었던 저명한 영화감독이라는 거죠.

바르다는 이 영화를 통해 [라 푸앵트 쿠르트로의 여행]에서부터 [이삭줍는 사람들과 나]에 이르는 자신의 대표작들을 커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남편인 자크 드미와의 결혼생활에서부터 페미니즘 운동의 참여, 할리우드 생활과 같은 자신의 인생에 대해서도 많은 이야기를 하고 있고요. 자서전으로서 이 영화엔 특별히 빠진 구석이 없습니다.

단지 연대기 순서를 따르고 있지는 않습니다. 제목이 밝히는 것처럼 이 영화는 시간보다는 공간을 더 중요시해요. 자신의 기억을 되살리는 장소, 특히 다양한 해변들을 찾아가면서 그 공간을 통해 과거를 들여다보는 거죠. 과거의 이미지를 보존하는 영화라는 매체 덕택에 이 공간들은 유령처럼 자신의 과거를 재현할 수 있고... 또 못하면 어때요. 동네 사람들을 불러서 엉성하게 재현 장면을 찍을 수 있는 걸요. 자세할 필요는 없습니다. 어차피 사람들의 기억이란 카메라처럼 정확할 수 없는 법이니까 오히려 그 엉성함이 더 사실적이죠.

이 영화에는 정말 아무런 야심도 없습니다. 이미 이룰 건 다 이룬 할머니의 태평함이 느껴지지요. 엄청난 예술 작품을 창조하려는 생각 같은 건 보이지 않아요. 결과보다는 아이디어와 그 아이디어를 구체화시키는 과정의 유희가 더 재미있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이 할머니는 도입부에서 해변의 모래 위에 거울들을 배치시키는 아이디어를 갖고 있는데, 온전한 결과물만 보여주는 대신 어떻게 그 아이디어를 만들어냈는지 들려주고 그 과정을 직접 보여주면서 그 모든 것들을 결과물의 일부로 통합시킵니다. 하긴 예술가의 일생에서 창작 과정 자체를 빼버리면 뭐가 남겠습니까? 일생을 회상하는 자서전 영화를 만들고 있지만 그 영화를 만들고 있다는 것 자체가 바르다의 인생이 진행형이라는 걸 증명하는 걸요.

[아녜스 바르다의 해변]은 노인네의 작품입니다. 그것도 제대로 나이를 먹은 노인네의 작품이죠. 자신이 과거에 이룬 것들에 대해 회상하는 것을 좋아하고 당시 겪었던 모든 감정에 대해 솔직하지만 정작 그것들과 남은 시간에 대해 집착하지 않는 노인네의 영화인 것입니다. 물론 나이 팔십에 이런 태도를 유지할 수 있으려면 바르다처럼 젊은 시절에 쌓은 것들이 좀 있고 그를 통해 성숙할 기회 역시 가졌어야 합니다. 아무나 이 단계에 도달하는 건 아니죠. (09/04/21)

DJUNA

기타등등

이 영화를 보기 전에는 잘만 킹이 그처럼 조용하고 평화로운 결혼생활을 하고 있는지 몰랐습니다. 하긴 직업으로 섹스와 관련된 영상물을 만드는 사람이 집에서까지 자기 직업을 끌어들이지는 않겠죠. 게다가 대부분 작품들이 아내와 공동작업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