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로버트 클램펫 Robert Clampett

주연
멜 블랭크....벅스 버니, 할리우드 늑대
Mel Blanc....Bugs Bunny, Hollywood Wolf
아서 Q. 브라이언....엘머 퍼드
Arthur Q. Bryan....Elmer Fudd

"Billions and twillions of wabbits. Where are they all coming from?"

밥 클램펫이 척 존스만큼 유명하지 않은 건 순전히 그가 46년에 워너사를 떠났기 때문입니다. 만약 그가 계속 남아 컬러 단편들을 조금 더 찍었다면 척 존스의 명성도 위태로웠을지 모르죠. 따지고 보면 우리가 [루니 튠즈]의 개성이라고 생각하는 건 거의 클램펫의 발명품이나 다름없지 않습니까? 지상 세계의 논리와 물리학을 완전히 무시한 초현실주의적인 난장판 말입니다.

하여간 [빅 스누즈]는 클램펫의 마지막 워너 애니메이션 단편입니다. 이 작품을 끝으로 그는 워너사를 떠나 텔레비전 세계에 뛰어들었지요. 그걸 알고 보면 엘머가 워너사와 맺은 계약서를 찢는 장면이 꽤 의미심장하게 느껴집니다. 노골적인 클램펫 작품인데도 불구하고 감독 이름이 비어있는 오프닝 크레딧도요.

[빅 스누즈]는 너무나도 전형적인 벅스 버니와 엘머 퍼드의 추적신으로 시작됩니다. 속이 빈 통나무 속에 든 엘머를 벅스 버니가 가지고 노는 이 장면은 사실 그냥 전형적인 게 아니라 노골적인 재활용이죠. 지금은 인종차별적인 내용 때문에 쉽게 볼 수 없는 [All This and Rabbit Stew]라는 텍스 에이버리의 애니메이션에서 흑인 사냥꾼 삼보를 지우고 그 자리에 엘머 퍼드를 심어놓은 것이니까요. 하여간 이 시퀀스가 끝나자마자 똑같은 상황의 반복에 화가 난 엘머 퍼드는 계약서를 찢어버리고 낚시나 하겠다고 선언합니다. 엘머가 떠나면 자신의 커리어도 끝날 게 분명하다고 판단한 벅스 버니는 결국 수면제를 마시고 낚시 중 잠든 엘머의 꿈 속으로 들어갑니다.

그렇지 않아도 정신없는 클램펫의 애니메이션은 꿈이라는 설정을 빌리자 정말 막 나가기 시작합니다. 시간과 공간은 무시되고 엘머가 겪는 일련의 수난들은 순전히 꿈의 논리에 의해 연결되지요. 여기선 벅스 버니가 엘머의 꿈 속에 들어가 엘머를 괴롭힌다는 설정을 취하고 있긴 하지만 벅스 버니가 들어가지 않아도 마찬가지긴 했을 겁니다. 그 동안 벅스 버니에게 당한 걸 생각하면 그런 악몽은 당연한 거예요. 어느 쪽이건 엘머가 겪는 벅스 버니의 악몽은 클램펫식으로 난폭하고 근사합니다. 더 가학적이기도 해요. 그나마 자기만의 세계로 남아 마땅한 꿈 속에까지 들어와 평상시보다 더 끔찍한 고문을 해대니 말이죠.

클램펫은 이 에피소드에서 엘머 퍼드의 위치를 재검토합니다. 벅스 버니에게 엘머 퍼드는 꼭 필요한 존재입니다. 정상적인 논리를 따르면 자길 죽이려는 사냥꾼이지만, [루니 튠즈]의 논리를 따지면 자기한테 형편없이 당해서 관객들에게 웃음거리가 되어주는 코미디 파트너죠. 물론 이 에피소드의 엘머는 실사 배우들보다 더 힘든 일을 합니다. 흉내만 내는 실사 배우들과는 달리 엘머는 직접 온 몸으로 벅스의 고문을 견뎌내니까요. 하여간 엘머의 이야기는 어쩔 수 없이 허구의 세계 속에 속해야만 존재할 수 있는 애니메이션 캐릭터들의 딱한 존재나 이들이 속해 있는 할리우드의 계급 구조에 대한 다소 서글픈 고찰일 수 있을 겁니다. (05/06/03)

DJUNA

기타등등

이 작품에서는 벅스 버니 대신 엘머 퍼드가 여장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