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탈 깃털의 새 L'uccello dalle piume di cristallo (1970) * * *

주연
토니 무산티....샘 달마스
Tony Musante....Sam Dalmas
수지 캔달....줄리아
Suzy Kendall....Giulia
엔리코 마리아 살레르노....모노시티 경위
Enrico Maria Salerno....Inspector Morosini
에바 렌지....모니카 라니에리
Eva Renzi....Monica Ranieri
움베르토 라오....알베르토 라니에리
Umberto Raho....Alberto Ranieri
마리오 아도르프....베르토 콘살비
Mario Adorf....Berto Consalvi

샘

[크리스탈 깃털의 새]는 다리오 아르젠토의 첫 감독작입니다. 그가 만든 첫 번째 아르젠토 영화이기도 하죠. 이 영화를 보고 나면 이런 생각이 듭니다. 이 양반, 젊은 시절에 만든 재료를 평생 우려먹었구나.

이 영화에는 정말 아르젠토 영화들을 특징 짓는 거의 모든 것들이 있습니다. 잘 재단된 살인, 검은 장갑을 끼고 잘 닦은 흉기를 휘둘러 대는 미치광이 살인마, 우연히 범죄를 목격하고 연쇄살인의 한가운데 빠져든 외국인 주인공, '분명 뭔가를 보았는데 그게 뭐지?'식 기억... 물론 종횡무진 날아다니는 카메라와 무시무시한 시점샷도 빼먹을 수 없지요.

영화의 내용은... 사실 설명하는 게 좀 재미없습니다. 거의 모든 아르젠토 영화랑 똑같으니까요. 주인공인 미국인 작가 샘 달마스는 어느날 밤, 갤러리에서 정체불명의 살인마가 어떤 여자를 공격하는 걸 목격한 뒤로 젊은 여자들만 살해하는 연쇄살인마의 사건에 말려듭니다. 그러는 동안 사람들은 한 명씩 죽어나가고, 샘과 여자친구 줄리아는 생명의 위협을 받고, 영화가 끝날 무렵엔 영화 내내 샘의 머리를 괴롭혔던 그 무언가가 무엇인지 밝혀집니다.

[크리스탈 깃털의 새]는 잘 만든 지알로입니다. 빠지는 게 없어요. 살인 묘사는 절제 되었지만 거기로 이어지는 시퀀스의 서스펜스는 강렬하고, 각 장면마다 흥미로운 아이디어가 넘쳐 흐릅니다. 머릿속에 몇 년 동안 아이디어를 넣고 다녔던 젊은이가 그 모든 것들을 한 영화에 쏟아 부은 것이죠.

심지어 이 영화는 아르젠토 전성기의 영화들보다 훨씬 잘 만든 것처럼 보입니다. 사실 더 잘 만들기도 했어요. 각본은 더 논리적으로 짜여졌고 대사들은 더 자연스러우며 연기도 훨씬 유려한 것 같습니다. 적어도 이 영화엔 너무 말도 되지 않아 우스꽝스럽기까지 한 아르젠토 특유의 괴상한 느낌은 없습니다.

저에겐 하나의 이론이 있습니다. 전설적인 이탈리아 호러 감독이 되려면 이런 식의 '잘 만든 영화'식 질을 어느 정도 포기해야 한다는 거죠. [서스피리아]나 [딥 레드]와 같은 전성기 영화들과 이 영화를 비교해보면 얻고 잃은 게 보입니다. 스토리와 논리, 구조가 약해지는 동안 살인장면의 독창성, 난폭한 상상력, 악몽의 비논리는 점점 더 발전해 가는 거죠. 물론 이건 절정기 때 이야기고 [오페라] 이후 이 양반은 꾸준히 하향세지만요.

그 때문에 이 영화의 감상은 다소 괴상해집니다. 작품 자체만 보면 [크리스탈 깃털의 새]는 좋은 영화입니다. 서스펜스 넘치고 아름다우며 심지어 이죽거리는 유머도 상당한 수준이죠. 하지만 살인장면에서 터져 나오는 광기와 피의 극한을 체험하려는 아르젠토 팬들에겐 이 영화가 다소 미진하게 느껴질 겁니다. 심지어 젊은 시절의 로저 이버트는 그가 쓴 유일한 아르젠토 영화의 리뷰에서 살인 자체의 폭력보다는 그 과정의 서스펜스를 중시한 감독의 선택을 칭찬하기까지 했거든요. 웃기는 건 그가 한 말이 정확하게 옳았다는 것입니다. 이 영화에서 가장 자극적인 장면엔 피와 살육이 등장하지 않아요.

그 때문에 한 번 생각해 보는 겁니다. 아르젠토는 그 뒤 몇 십 년 동안 장르 팬들의 상상력을 사로잡은 훌륭한 영화들을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과연 그러는 동안 작품의 자체적 완성도를 포기해야 했었던 걸까요? 정말로 두 마리 토끼를 잡는 게 불가능했던 걸까요? (05/12/30)

DJUNA

기타등등

이 영화의 각본이 더 그럴싸하게 보이는 건, 제가 이 영화를 이탈리아 더빙과 영어 자막으로 봤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가끔 이탈리아 팬들이 자국의 호러 영화 대사들을 어떻게 평가하는지 궁금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