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로버트 엡스타인 Robert Epstein &
제프리 프리드먼 Jeffrey Friedman

출연
릴리 톰린....나레이터
Lily Tomlin....Narrator
수지 브라이트
Susie Bright
토니 커티스
Tony Curtis
하비 피어스타인
Harvey Fierstein
우피 골드버그
Whoopi Goldberg
팔리 그레인저
Farley Granger
해리 햄린
Harry Hamlin
톰 행크스
Tom Hanks
셜리 맥클레인
Shirley MacLaine
잰 옥센버그
Jan Oxenberg
폴 루드닉
Paul Rudnick
수잔 서랜든
Susan Sarandon
존 슐레진저
John Schlesinger
고어 비달
Gore Vidal

좀 뜻밖의 일이라고 생각하실지 모르겠지만 로브 엡스타인과 제프리 프리드먼의 대표적인 다큐멘터리들은 모두 국내에 정식으로 소개되어 있습니다. 모두 Q채널을 통해 방송되었답니다. [하비 밀크의 시대]만 빼면 제목들이 좀 이상하게 바뀌었지만요. [Common Threads]의 방영제는 [운명의 삶 에이즈]였고 [셀룰로이드 클로젯]의 방영제는 [영화 속의 동성애]였습니다. 이 거세된 제목들 때문에 이 작품들이 방영되었다는 사실도 모르시는 분들이 꽤 될 겁니다.

방영제야 어쨌건 볼만한 작품입니다. 비토 루소의 논픽션 북에 바탕을 두고 있는 영화는 헐리웃 영화 속에 숨겨져 있는 동성애 요소들을 다시 파헤쳐서 작은 게이-레즈비언 영화사로 재구성합니다.

나와봤자 얼마나 나오겠냐고요? 상상외로 쏠쏠합니다. 시시와 같은 불편한 동성애자 스테레오 타입이나 마를레네 디트리히와 그레타 가르보의 복장 도착적 판타지처럼 겉으로 드러난 것만 다루어도 상당하거든요.

안으로 파고들면 더 근사해집니다. 영화는 구닥다리 헤이즈 규약에 눌려 헉헉거리던 영화인들이 은밀하게 필름 사이에 숨겨놓은 동성애 코드를 맵시있게 꺼내 재구성합니다.

가장 유명하고 또 많이 언급되는 사례는 바로 [벤 허]입니다. 각색자 고어 비달이 메살라의 적대적 행위를 설명하기 위해 벤 허와 메살라를 동성애 애인으로 설정했던 것이죠. 영화에 나와 태평스럽게 [벤 허]의 동성애 서브 텍스트를 설명하는 고어 비달의 한가한 목소리를 한 번 듣고 나면 [벤 허]는 결코 같은 영화처럼 보이지 않습니다. 의식적으로 동성애 캐릭터를 연기했던 스티븐 보이드와 서브 텍스트에 대해선 전혀 아는 것 없이 순진하게 연기했던 찰턴 헤스턴의 연기 비교도 새롭고요(헤스턴이 얼마나 바보처럼 보이는지!)

그 밖에도 수많은 흥미로운 사례들이 있습니다. [레베카]에서 죽은 여자 주인의 속옷을 어루만지는 덴버스 부인, [스파르타커스]에서 토니 커티스를 유혹하는 로렌스 올리비에, [필로우 토크]에서 게이인 척하는 스트레이트 남성을 연기했던 스트레이트인 척 했던 게이 배우 록 허드슨... 이런 것들만 대충 훑어보아도 본전은 뽑습니다. :-)

그래서 이 영화의 가장 흥미진진한 부분은 처음 절반입니다. 은밀하게 숨겨져 있던 서브 텍스트를 하나씩 풀어가는 재미가 그만이거든요. 도리스 데이의 'Secret Love'가 흐르면서 새로운 의미를 부여받은 화면 클립들이 펼쳐질 때 느끼는 기분은 참 묘합니다.

5, 60년대로 넘어가면서 이야기는 조금 심각해집니다. 지금까지 은밀하게 숨겨져 있던 타부들이 슬슬 사라지는 것 까지는 좋은데 그와 동시에 스테레오 타입과 편견의 힘도 강화되어 튀어나왔기 때문이죠. 영화는 안 좋게 죽어나가는 게이 캐릭터들의 모습을 엮어 보여주면서 당시의 상황을 설명합니다.

영화의 마지막 부분은 동성애 캐릭터들이 서서히 존엄성을 회복해나가는 8,90년대를 다루고 있는데, 슬프게도 가장 재미가 없는 부분입니다. 주석도 서브 텍스트도 없는 클립들의 나열일 뿐이죠. 인터뷰들도 싱겁습니다. 예절 바르지만 주제에 대한 흥미도 별로 없는 유명 배우들이 나와 그냥 자기 영화 이야기나 할 뿐이에요. 좀 위선적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후반부의 밋밋함이 전반부의 흥미진진함을 망쳐놓지는 않습니다. 생각해보면 밝은 전망을 암시하는 후반부가 중반부의 우울함을 커버하는 것도 같고요.

보다 상세한 분석과 역사적 디테일을 읽고 싶으시다면 비토 루소의 책을 읽으면 되겠지요. 그러나 영화에는 그 나름대로의 유쾌한 가치가 있습니다. 원작에 비하면 클립 쇼에 불과하다고 할 수 있겠지만 적어도 얼마나 멋진 클립 쇼인가요? 백문이 불여일견이라. 활자책 어디에 스티븐 보이드의 그 은밀한 눈길이 있습니까? (99/06/28)

DJUNA

기타등등

Q채널에서는 언제나처럼 엔드 크레딧을 잘라먹었는데, 그 때문에 k. d. 랭이 부르는 Secret Love도 빠져버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