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마지드 마지디 Majid Majidi

주연
아미르 파로흐 하쉬미안....알리
Amir Farrokh Hashemian....Ali
바하레 세디키....자라
Bahare Seddiqi....Zahra
모하마드 아미르 나지....알리의 아버지
Mohammad Amir Naji....Ali's Father
페레쉬테 사라반디....알리의 어머니
Fereshte Sarabandi....Ali's Mother
나피세 자파르-모하마디....로야
Nafise Jafar-Mohammadi....Roya
다리우쉬 모흐타리....알리의 선생님
Dariush Mokhtari....Ali's Teacher
모하마드-하산 호세이니안....로야의 아버지
Mohammad-Hasan Hosseinian....Roya's Father
마수메 다이르....로야의 어머니
Masume Dair....Roya's Mother

1.

자라와 알리

우리에게 익숙한 다른 이란 영화들처럼 [천국의 아이들]도 지극히 작은 일에서 시작합니다. 우리의 주인공 소년 알리는 동생 자라의 구두를 고쳐가지고 오다 그만 구두를 잃어버렸습니다. 문제는 그게 자라의 유일한 신발이고 알리와 자라네 집이 당장 새 신발을 사주기도 벅찰만큼 가난하다는 것이죠. 다행히도 자라는 오전반이고 알리는 오후반입니다. 남매는 신발을 잃어버렸다는 걸 부모에게 숨기기 위해 필사적으로 신발을 바꾸어가며 달리기를 합니다.

2.

글쎄요. 알리네 집안이 가난하기는 해도 자라에게 신발 한컬레를 더 사주지 못할 정도로 빈곤하지는 않았을 겁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았다고 해도 이야기의 심각함은 달라지지 않습니다. 네, 어른 관객들은 이 작은 소재를 보고 귀엽게 생각하겠지만, 아직도 수많은 아이들은 이보다 훨씬 작은 일 때문에 하늘이 무너질 것 같은 공포를 맛보고 살고 있습니다.

[천국의 아이들]의 가장 큰 장점은 성인 관객들이 한 동안 잊고 지냈던 어린 시절의 감정을 절묘하게 살렸다는 것입니다. 영화는 작은 사건들을 교묘하게 확장하고 있죠. 자라의 구두가 사라진 뒤, 알리와 자라는 부모들의 간섭 없는 자기들만의 세계로 뛰어듭니다. 아직 초등학생인 아이들이 양심과 윤리, 진실과 같은 엄청난 추상적 문제와 정면으로 부딪히는 것입니다.

이런 위기는 직접 그들이 겪는 현실적 문제에 비하면 안전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알리는 끝도 없이 지각을 해대지만 이를 부모를 통해 커버할 수는 없습니다. 덕택에 지각한 알리가 학교로 뛰어들 때는 정말 한없이 고약한 서스펜스가 발생하지요.

영화의 서스펜스는 알리가 3등상인 운동화를 노리고 4킬로미터 어린이 마라톤에 참가하면서 절정을 이룹니다. 동생을 위해 1등이 아닌 3등을 하겠다는 논리는 자못 희극적이지만 정작 그런 설정이 도입되자 달리기 경주의 서스펜스는 더욱 강렬해졌습니다. 경쟁자들이 비슷한 속도로 앞서거니 뒷서거니 하는 동안 1등하는 건 차라리 쉽습니다. 하지만 어떻게 그 바늘 한끝같은 차이 속에서 3등을 차지할 수 있을까요?

3.

[천국의 아이들]은 종종 놀랄만큼 박진감 넘치는 스토리 전개를 보여주는 영화입니다만, 기본적인 영화의 흐름은 기존 이란 영화들과 크게 차이나지 않습니다. 어딘지 모르게 이란 어린이 영화들은 그날 있었던 이야기를 들려주는 아이들을 연상시킵니다. 아이들이 학교에서 본 시험이랑 길에서 주운 10원 짜리 동전 이야기를 동등하게 취급하며 한 줄로 길게 늘어놓는 것처럼, [천국의 아이들]도 비슷한 병렬 진행을 택하고 있습니다. 기본적으로 영화는 자라의 사라진 구두와 연결된 남매의 모험담을 다루고 있지만 중간에 샛길로 빠질 때가 있으면 경고 없이 그대로 빠져 버리고 맙니다. 그게 너무 자연스럽게 이루어져서 그런 일탈이 눈에 잘 안들어올 뿐이죠.

덕택에 이야기가 꽤 넓어지기도 했습니다. 영화가 끝나면 우리는 남부 테헤란의 빈민가에 사는 하층 계급의 삶에 대해 상당히 많이 알게 됩니다. 점심 때 무엇을 먹고 어떻게 빨래를 하고 하는 소소한 것들에서부터 부유한 도시 북쪽 사람들과의 문화적/경제적 갭과 같은 상당히 큰 것들에 이르기까지도요. 정원사 일을 하러 자전거를 타고 북부로 올라온 알리 부자가 겪는 이야기는 어떻게 보면 부자의 세대차를 반영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알리가 인터폰 앞에서 쩔쩔 매는 아버지 대신 척척 말을 건낼 수 있었던 건 애가 야무져서이기도 하지만 그만큼 서구식 현대 문명에 더 익숙해져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영화적 오아시스 취급을 하는 이란의 영화도 알리가 어른이 되면 꽤 달라져 있겠지요.

4.

[천국의 아이들]이나 [하얀 풍선],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와 같은 작품들 각각에 대해서는 아무런 불만이 없습니다. 모두 시적인 아름다움이 가득 찬 아름다운 영화이며 그만큼 절절하게 아이들의 삶을 기막히게 살려내고 있으니까요. 검열을 피하기 위한 필사적 발버둥이었는지는 몰라도, 우린 이란이라는 나라가 이처럼 훌륭한 어린이 영화들을 만들어내고 있다는 데 일단 감사해야 합니다.

하지만 이들 영화를 아주 순수하게 받아들일 필요도 없습니다. 이들은 모두 훌륭한 영화지만 우리 식 기준으로는 여전히 '공익 영화'입니다. 잊지 않으셨겠지요? 이들은 모두 국립 청소년 지식 발전 연구소인가 하는 곳에서 만들어낸 작품들입니다. 이런 영화들이 삶에 대해 아름답고 희망적인 비전을 제시해주는 건 반갑지만 아주 솔직하지 않을 수도 있는 것입니다.

특히 [천국의 아이들]은 제목부터 의미심장합니다. 어떻게 보면 이 제목은 운동화와 마라톤에 대한 개별 영화보다는 이란의 어린이 영화 전체를 대표하는 게 아닌가 싶어요.

각각의 영화에서 착하고 순박한 아이들을 보는 건 괜찮지만 우리가 본 거의 모든 영화에서 이런 아이들이 나온다면 그 순수성을 의심할만하죠. 아이들의 세계가 천상의 순수성을 유지하는 곳은 없습니다. 이란이라고 특별히 다르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그곳도 아이들의 세계는 무심한 폭력과 집단 따돌림으로 그득할 겁니다.

하지만 지금 당장으로서는 이란의 어린이 영화가 그런 어두컴컴한 면까지 다룰 가능성은 없어 보입니다. 지금은 아니지만 결국 그런 한계는 이란 어린이 영화의 발전을 막는 장애가 될 겁니다.

5.

그러나 지금은 그렇게까지 멀리보고 싶지는 않군요. 당장은 알리와 자라의 모험담의 지닌 그 순수한 아름다움을 즐기는 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게다가 꼬마들이 어쩜 그렇게 귀엽고 연기도 잘 하는지. 애들만 봐도 즐거웠어요. (01/04/10)

DJUNA

기타등등

'록키가 링을 떠난 후 가장 짜릿한 스포츠 중계'라는 광고 카피는 지금은 은퇴한 자넷 마슬린 아줌마의 평에 실린 'Not since Rocky left the boxing ring has a sporting contest been filmed as momentously as this school race'라는 문장에서 빌려온 것 같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