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마이클 윈터보텀 Michael Winterbottom

주연
피터 뮬란....다니엘 딜런
Peter Mullan....Daniel Dillon
밀라 요보비치....루시아
Milla Jovovich....Lucia
웨스 벤틀리....댈그리쉬
Wes Bentley....Dalglish
나스타샤 킨스키....엘레나 번
Nastassja Kinski....Elena Burn
사라 폴리....호프 번
Sarah Polley....Hope Burn
셜리 헨더슨....애니
Shirley Henderson....Annie
줄리안 리칭스....벨린저
Julian Richings....Bellanger
숀 맥긴리....스위틀리
Sean McGinley....Sweetley

엘레나, 호프, 딜런

[더 클레임]은 마이클 윈터보텀의 두번째 토머스 하디 영화입니다. 이 영화의 원작은 하디의 [캐스터브리지의 시장]이니까요. 젊었을 때 아내와 딸을 팔아먹었던 왕년의 주정뱅이가 비뚤어진 운명을 바로 잡으려고 한다는 그 이야기 말입니다.

그렇다고 이 영화를 대충 보고 원작을 읽은 척 하시지는 마시길. [더 클레임]은 [캐스터브리지의 시장]에서 기본 설정만 가져왔을 뿐이니까요.

배경부터 다릅니다. 영국에서 대양과 대륙 하나를 훌쩍 건너 뛰어 캘리포니아의 시에라 마드레 산맥으로 옮겼지요. 시대는 19세기 말, 골드 러쉬가 슬슬 맥이 빠져가고 새로 건설되는 철도가 대륙을 관통하기 시작하던 바로 그 때입니다. 네, 바로 서부극의 무대입니다.

영화는 시에라 마드레 산맥에 위치한 킹덤 컴이라는 마을에서 시작됩니다. 우리의 주인공 딜런은 이미 이 마을의 왕이나 다름 없는 위치에 있는 남자입니다. 마을 사람들은 아마도 마을 근처에 지나갈지도 모르는 철로가 가져다 줄 이익에 들떠 있고요.

이 때 이방인들이 이 마을을 찾아옵니다. 왠지 모르게 딜런과 무슨 관계가 있는 듯한 번 모녀와 철도회사에서 파견된 측량기사들이 그들이죠. [캐스터브리지의 시장]이 원작이므로 당연히 번 모녀는 딜런이 십 여 년 전에 금 몇 자루와 맞바꾼 그의 아내와 딸입니다. 딜런은 애인 사이로 지내던 매춘굴 주인이자 가수인 루시아와 결별한 뒤 아내인 엘레나와 정식으로 결혼하지만 엘레나는 이미 죽어가고 있는 몸이었죠. 딸 호프는 철도 회사의 엔지니어 댈그리쉬와 사랑에 빠지지만, 킹덤 컴과 철도 회사의 관계는 점점 틀어져 가고 있었습니다...

대충 원작의 스토리를 따르고 있는 것 같죠? 하지만 충실한 각색을 원하신다면 실망하실 겁니다. [더 클레임]은 엘레나(원작의 수잔)의 죽음 이후 이어지는 수많은 이야기들을 대폭 잘라버렸거든요. 루시아와 댈그리시는 원작의 루세타와 파프레이를 모델로 한 모양이지만 역할과 성격은 그렇게 닮지 않았습니다. 특히 루시아는 완전히 새로 만들어진 인물이나 다름없습니다. 순수한 하디 영화로 보기엔 문제가 많죠.

원작에서는 생생하게 묘사된 캐릭터들의 힘이 약해지기도 했습니다. 전작 [주드]에서와는 달리, 우리는 이 캐릭터들의 뱃속까지 들어가지는 못해요. 다들 조금씩 힘이 없고 수줍어 보입니다. 그 때문에 몇몇 갈등도 약화되었지요.

그러나 우리가 이 영화를 [캐스터브리지의 시장]의 각색물로만 볼 필요는 없습니다. 이 영화는 원작과 다른 이야기도 하고 있거든요. 장르물의 자의식이 없긴 하지만 우린 이 영화를 심각한 서부극으로 볼 수 있습니다. 자주 비교되는 로버트 앨트먼의 [맥케이브와 밀러 부인]처럼요. 이 영화의 중요 소재인 철도도 [캐스터브리지의 시장]과 전혀 다른 종류의 갈등을 만들어냅니다.

서부극이라는 장르 때문에 영화의 상징극적인 느낌이 더 강해지기도 했습니다. 애당초부터 서부극이라는 장르 자체가 인공적인 것이잖아요. 아무리 장르 영화로 만들어진 작품이 아니라고 해도, 일단 익숙한 배경을 깔고 나니, 각 캐릭터들은 실제 사람보다는 상징으로서 더 잘 먹힙니다.

영화는 드러나 있는 구체적인 스토리나 캐릭터보다는 전체적인 분위기로 이야기를 전달하려는 것 같습니다. 눈에 덮인 산골 마을의 조용한 분위기에서부터 니트로글리세린 폭파 사고 뒤 달아나는 불타는 말에 이르기까지, 영화는 드러난 스토리와 언제나 완벽하게 일치하지는 않는 또 다른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피터 뮬란, 나스타샤 킨스키, 사라 폴리와 같은 좋은 배우들이 나오지만, 모두 아주 적극적인 연기를 보여주지는 않습니다. 여전히 좋은 연기이긴 하지만 모두들 킹덤 컴을 둘러싼 겨울의 분위기에 자기를 맞추려는 것처럼 보여요. 튀는 연기는 오히려 밀라 요보비치한테서 볼 수 있습니다. 그건 루시아의 캐릭터가 하디의 원작과 별 상관 없는 새로운 인물이고, 이 배우의 연기에 대한 기대치가 낮았기 때문이겠지요.

[더 클레임]은 쉽게 평가하기 어려운 영화입니다. 마이클 윈터보텀의 많은 영화들이 그렇듯 이 작품도 일부러 이야기를 조금 덜 한 것 같아 보입니다. 그렇다고 그게 극적으로 미진한 것이냐 하면... 꼭 그런 것 같지도 않아요. 거창한 예술적 야망이 잘난 척으로 여겨져 관객들의 심기를 긁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잘난 척만 있는 것도 아니고요. 하지만 이런 불분명한 분위기가 주는 매력 또한 무시할 수 없답니다. (01/08/22)

DJUNA

기타등등

[캐스터브리지의 시장]은 비슷한 시기에 보다 원작에 충실한 미니 시리즈로 제작되기도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