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스코트 맥기 Scott McGehee
데이빗 시겔 David Siegel

주연
틸다 스윈튼....마가렛 홀
Tilda Swinton....Margaret Hall
고란 비스닉....알렉 스페라
Goran Visnjic....Alek Spera
조나단 터커....보 홀
Jonathan Tucker....Beau Hall
피터 도나트....잭 홀
Peter Donat....Jack Hall
조시 루카스....다비 리스
Josh Lucas....Darby Reese
레이몬드 J. 배리....칼리 네이글
Raymond J. Barry....Carlie Nagel
타마라 호프....페이지 홀
Tamara Hope....Paige Hall
조던 도랜스....딜런 홀
Jordan Dorrance....Dylan Hall

마가렛

[딥 엔드]의 원작은 엘리자베스 홀딩이라는 작가가 쓴 [The Blank Wall]이라는 소설입니다. 이 작품은 1949년에도 막스 오퓰스 감독, 조운 베넷, 제임스 메이슨 주연으로 영화화된 적 있어요. [The Reckless Moment]라는 제목의 그 영화는 몇 년 전 EBS에서 [위험한 관계]라는 제목으로 방영되기도 했죠.

이 이야기의 구성은 간단합니다. 평범한 가정 주부인 우리의 주인공에게 17살 짜리 아이가 하나 있는데, 어느 날 이 아이가 그만 수상쩍은 남자와 관계를 맺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주인공은 어떻게든 그 남자와 아이 사이의 관계를 끊으려 하지만, 그러는 동안 그 남자가 사고로 죽어버리고 말아요. 주인공은 남자의 시체를 감추지만, 죽은 남자와 아이 사이의 관계를 알고 있는 범죄자가 나타나 주인공을 협박하기 시작합니다...

[딥 엔드] 역시 이 이야기를 그대로 가져오고 있습니다. 단지 40년대에서 2000년대로 무대를 옮겼으니 설정이 조금 달라지긴 했어요. 원작과 오퓰스의 영화에서 수상쩍은 남자와 관계를 맺는 사람은 주인공의 딸이었지만, 이 영화에서는 주인공의 게이 아들입니다. 협박 도구가 되는 편지는 비디오 테이프로 바뀌었고요. 물론 인플레 때문에 협박범이 요구하던 5천 달러는 5만 달러로 올랐어요.

오퓰스의 영화와 이 영화의 가장 큰 차이점은 분위기입니다. [위험한 관계]는 어두컴컴한 40년대 풍 필름 느와르였습니다. 영화 전체도 그들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가족의 가치가 서서히 붕괴되어가던 전후 미국의 축축하고 위험한 느낌으로 가득 차 있었지요. 하지만 [딥 엔드]에서는 그런 컴컴한 느와르 영화의 분위기는 느껴지지 않습니다. 영화는 일부러 무대가 되는 타호 시티의 차갑고 청결한 분위기를 강조합니다. 액션의 대부분이 밝은 대낮에 일어나고요. 오퓰스 영화가 멜로드라마를 강조했다면 이 영화는 정갈한 사실주의를 지향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범죄 세계와 일상 세계가 충돌하면서 당연시되던 가족의 안정이 위기를 맞는다는 설정은 같습니다. 반세기가 흐르는 동안 미국의 가족상도 많이 바뀌었지만 (아마 딸을 게이 아들로 바꾸지 않았다면 주인공 마가렛의 고민은 상당히 약화되었을 겁니다) 중산계층 가족의 위상 자체는 큰 변화가 없거든요.

어느 쪽이 더 효과적으로 주제를 살렸을까요? 글쎄요... 전 오퓰스의 필름 느와르 터치가 주인공의 악몽과도 같은 경험에 더 잘 어울린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딥 엔드]의 차갑고 냉정한 접근법이 중산 계층 가족의 안전한 세계에서 갑자기 떨어져 나온 주인공의 서늘한 공포를 더 잘 살리는 것일 수도 있어요. 그 때문에 뒤의 멜로드라마가 오퓰스 영화보다 설득력이 조금 떨어지긴 합니다만.

플롯이 좀 약하다는 것도 [딥 엔드]의 단점이 될 수도 있습니다. 몇몇 부분은 당위성이 상당히 떨어져요. 예를 들어 주인공 마가렛이 왜 시체를 그렇게 얕은 곳에 버렸는지 이해할 수 있는 관객들은 거의 없을 겁니다. 물이 너무 맑아서 그냥 위를 지나가도 시체가 보일 정도인 걸요. 사고 경위를 바꾼 것도 아주 좋은 선택 같지는 않아요.

다행히도 영화는 플롯보다는 배우를 위한 영화입니다. 그리고 마가렛 역의 틸다 스윈튼은 기가 막힙니다. 조운 베넷도 좋은 연기를 보여주었지만 틸다 스윈튼처럼 인상이 강하지는 않았던 듯 해요. 스윈튼은 특별히 오버 액션을 보여주지 않으면서도 놀랄만큼 깊은 감정을 관객들에게 전달합니다. 그 사람의 독특한 영국 귀족 분위기가 미국의 평범한 가정 주부로 옮겨가면서 나오는 묘한 충돌 역시 인상적이고요. 고란 비스닉도 괜찮지만 제임스 메이슨을 따라잡은 것 같지는 않더군요. 제임스 메이슨의 모호한 연기는 협박대상에게 호감을 품으면서 평생에 단 한 번 괜찮은 일을 할 기회를 잡은 범죄자의 캐릭터를 굉장히 입체적이고 효과적으로 살렸었습니다. 하지만 고란 비스닉은 처음 등장할 때부터 안전한 느낌이라 긴장감이 떨어지는군요. 가면 벗기기가 참 쉬워 보여요. 그러고보면 연속극의 힘이 세긴 세죠? 이 사람이 [ER] 이전에 이 영화에 출연했다면 저도 그처럼 쉽게 순둥이 이미지를 발견하지 못했을테니 말입니다. (02/05/03)

DJUNA

기타등등

영화 중반에 도널리라는 남자가 다비의 살인자로 몰리는 부분이 있습니다. [위험한 관계]에서 제임스 메이슨이 연기한 캐릭터 이름이 바로 도널리였지요. :-)

숨은 농담 하나 더. 마가렛의 시아버지 잭이 심장마비를 일으켜 쓰러졌을 때, 스페라는 범죄자답지 않은 민첩한 실력으로 잭에게 응급소생술을 실시합니다. 놀란 마가렛은 "전에도 이런 거 해본 적 있어요?"라고 묻죠. 물론 고란 비스닉은 [ER] 촬영장에서 이런 걸 수도 없이 해보았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