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기예르모 델 토로 Guillermo del Toro

주연
페르난도 티엘베....카를로스
Fernando Tielve....Carlos
페데리코 루피....카사레스
Federico Luppi....Casares
이니고 가르세스....하이메
Íñigo Garcés....Jaime
에두아르도 노리에가....하신토
Eduardo Noriega....Jacinto
마리사 파레데스....카르멘
Marisa Paredes....Carmen
이레네 비세도....콘치타
Irene Visedo....Conchita
후니오 발베르데....산티
Junio Valverde....Santi

카를로스

[악마의 등뼈]의 무대는 가장 가까운 동네까지 가는 데도 하루 이상 걸리는 외진 평야에 위치한 기숙학교입니다. 카톨릭 기숙학교를 위장하고 있기는 하지만 사실은 스페인 내전 중 죽은 공화주의자들의 아이들을 위한 고아원 쪽에 더 가깝죠.

영화는 전형적인 기숙학교물처럼 시작합니다. 전쟁으로 아버지를 잃은 우리의 주인공 카를로스는 기숙학교물의 공식을 그대로 따르는 모험을 겪습니다. 아이들의 텃세를 이겨내고, 낡은 학교 건물을 무대로 자잘한 모험을 벌이고... 뭐, 그런 식이죠. 단지 다른 점이 있다면 시대 배경이 스페인 내전이고, 얼마 전에 죽은 학생의 유령이 밤마다 학교 건물 안을 돌아다니는 호러물이라는 것입니다. 당연히 이들의 모험담은 세인트 클레어 기숙학교 이야기처럼 안전할 수는 없습니다.

영화는 굉장히 스페인 풍입니다. 적어도 이 영화는 스페인 뉴 웨이브 이후에 나온 스페인 호러 영화한테서 기대할 만한 어떤 것입니다. 스페인 내전의 외상으로 황량해진 세계에서 죽은 자들과 산자들이 공존하며 비극의 꼬리를 물고 돕니다. 당연히 묵직한 상징주의가 이들의 이야기에 낙인처럼 찍혀 있습니다. 관객들이 영화 속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어떻게 받아들여도 결국 스페인 현대사에 대한 일련의 상징들로 돌아가게 됩니다.

영화는 무섭다기보다는 서글픕니다. 네, 가끔 소름이 쫙 끼치는 장면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악마의 등뼈]에서 그런 호러 충격은 비교적 덜 중요합니다. 이 영화의 유령 '한숨짓는 아이'는 맞서 싸워야 하는 괴물이 아니라, 부당한 죽음과 앞으로 일어날 재앙의 예견으로 고통받는 영혼이니까요. 네, 어쩔 수 없이 상징주의로 흘러갈 수밖에 없답니다.

컴컴한 이야기지만 영화는 의외로 재미있습니다. [악마의 등뼈]엔 19세기 대중 소설에서 느낄 수 있는 그런 잡다하고 전통적인 재미가 있습니다. 유령, 복수극, 숨겨진 보물, 잔인무도한 악당... 영화는 한자리에 주저앉아 상징주의를 되씹는 대신 계속 사건들을 만들고 스토리를 회전시킵니다. 이야기가 굉장히 풍성해서 지루해질 여지가 별로 없어요. 덕택에 수없이 쏟아지는 다양한 상징들이 공허해지지 않는 것이기도 하고요.

기예르모 델 토로의 스타일리스트로서의 감각도 이 영화와 잘 어울립니다. 그의 멕시코 시절 영화 [크로노스]에서 느낄 수 있었던 징그러우면서도 서글픈 느낌을 이 영화에서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영화는 스타일면에서 호사스러울 정도지만 그 스타일은 결코 기교로만 구성된 표면적인 장식은 아닙니다. 특히 델 토로가 묘사한 '한숨짓는 아이'를 보세요. 이 어린아이의 고통과 슬픔이 화려한 비주얼의 묘사를 통해 얼마나 강렬하게 전달되는지요.

[악마의 등뼈]는 무척 풍요로운 영화입니다. 워낙 하려는 게 많고 야심적이라서 장르의 굴레 안에서만 감상하기가 어려울 정도죠. 위험부담이 많은 기획이었지만 결과는 성공적입니다. 적어도 델 토로는 지금까지 그가 만든 작품들 중 가장 아름다운 영화를 만들어냈습니다. (02/07/19)

DJUNA

기타등등

원래 델 토로는 이 영화의 무대를 멕시코로 할 생각이었다고 합니다. 그래도 별 상관은 없었겠지요. 이 영화의 상징들은 꽤 소소한 부분까지 스페인 현대사와 일치하는 것 같지만 멕시코 현대사에 끼워맞추어도 그만큼이나 그럴싸하게 맞아 떨어지니까요. 원래 상징이란 그런 것이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