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라스 폰 트리어 Lars von Trier

주연
마이클 엘픽....피셔
Michael Elphick....Fisher
에스몬드 나이트....오즈본
Esmond Knight....Osborne
미 미 라이....킴
Me Me Lai....Kim
제롤드 웰즈....크레이머 서장
Jerold Wells....Police Chief Kramer
아흐메드 엘 세나위....심리치료사
Ahmed El Shenawi....Therapist

[범죄의 요소]의 시간적 배경은 아마도 가까운 미래이며 공간적 배경은 유럽의 어느 나라입니다. 종종 언급되는 지명을 생각해보면 독일일 가능성이 높지만 사람들은 영어를 사용하고 피셔나 오즈본, 크레이머와 같은 사람들은 아무래도 영어권 사람들이죠. 어떻게 보면 이 곳은 구체적인 나라가 아니라 '유럽'이라는 대륙의 어디에 있어도 상관 없는 불특정 지역입니다.

하여간 끔찍한 세계입니다. 이 세계는 도대체 낮이라고는 없고 (누군가가 '새벽 3시가 영원히 지속되는 곳'이라고 표현하죠) 폐허가 된 건물들은 반쯤 물에 잠겨있으며 유럽의 문명은 서서히 붕괴되어 가고 있습니다.

이 영화의 주인공 피셔는 13년동안 유럽을 떠나 카이로에서 살다가 스승인 오즈본의 부름을 받고 복권파는 여자들만 살해하는 연쇄 살인범을 잡기 위해 다시 유럽으로 돌아옵니다. 그는 오즈본의 범죄학 서적인 [범죄의 요소]에 나온 수사 방법을 충실히 따르면서 아마도 범인일 듯한 해리 그레이라는 인물을 추적합니다. 도중에 아마도 해리 그레이와 뭔가 관계가 있었던 듯한 여자 킴을 만나고요.

이 모든 이야기는 악몽과 같은 분위기에서 전개됩니다. 실제로 악몽일 수도 있죠. 영화는 폰 트리어가 나중에 [유로파]에서도 사용했던 '최면'을 이야기를 끌어가는 도구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유럽에서 돌아온 피셔는 기억을 거의 잃어버렸고, 그 기억을 살리기 위해 최면 치료를 받지요. 영화에서 벌어지는 액션은 최면에 걸린 피셔가 잃어버린 기억을 재현하는 과정입니다.

그래서인지, 이 영화에 나오는 사람들은 모두 힘이 하나도 없습니다. 주변 사운드로부터 격리된 대사들은 무척이나 공허하게 들리고 모두 최면에 걸린 듯 멍한 표정으로 상황에 쓸려다니고 있어요. 이런 사람들이 상대하는 것은 죽은 사람들과 죽은 사람들이 남긴 잔재들이니 지옥이 따로 없죠. 이 영화의 유럽은 슈뢰딩어의 책을 문자 그대로 해석해 과장한 듯 한 곳입니다.

이 영화의 최대 장점은 이 지옥의 비주얼입니다. 라스 폰 트리어의 후기작을 보신 분들이라면 대충 짐작하실 수 있을 거예요. 갈색으로 탈색된 화면에 드문드문 비치는 푸른 빛이 오히려 섬뜩한 곳이지요. 존재하는 모든 광학 효과들이 영화의 비현실적인 악몽을 강조하고 관객들은 낡은 셀룰로이드 조각으로 구성된 감옥에 갇힌 듯한 느낌을 받습니다.

실제로 이 영화는 수많은 인용들로 구성된 감옥이기도 합니다. 폰 트리어가 만든 감옥의 창살에는 모두 선례가 있죠. 기본적으로는 필름 느와르를 흉내내고 있지만, 컴컴한 디스토피아 분위기는 테크놀로지가 없는 [블레이드 런너]와 같고, 추리 소설의 구성은 보르헤스의 [죽음과 나침반]에서 빌려온 듯 하고요.

영화가 진짜 삶까지 다가서지 못한 듯한 느낌을 주는 것도 그 때문일 수 있습니다. 폰 트리어의 다른 영화들이 그렇듯이 [범죄의 요소]도 도서관과 시네마테크에서 만들어진 영화라는 느낌이 강하게 듭니다. 몽환적인 분위기가 너무 강해서 기초적인 내용도 잘 전달되지 않는다는 문제점도 있고요.

그러나 [범죄의 요소]는 여전히 강렬한 영화입니다. 폰 트리어라는 남자의 싹을 볼 수도 있고 후기작의 단서들이 보인다는 점에서도 흥미로운 작품이죠. 종종 야심을 따라오지 못한다는 느낌이 들기도 하지만 따라온 부분만 해도 상당히 근사합니다. 멋진 첫 발인 셈이죠. (00/11/03)

DJUNA

기타등등

크라이테리언의 DVD는 부록으로 스티그 비에르크만의 다큐멘터리 [Tranceformer - A Portrait Of Lars von Trier]를 수록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