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얀 슈미트 Jan Schmidt

주연
베타 포니카노바....나이든 여자
Beta Ponicanová....Old Woman
온드레이 야리첵....나이든 남자
Ondrej Jarichek....Old Man
이카 호레이시....마르타
Jitka Horejsi....Martha
반다 칼리노바....유디트
Vanda Kalinová....Judith
알레나 이페르토바....에바
Alena Lippertová....Eva
이리나 르지카로바....안나
Irina Lzicarová....Anna
나탈리 마슬로보바....마그달렌
Natalie Maslovová....Magdalen
야나 노바코바....클라라
Jana Novaková....Clara
마그다 세이들레로바....바르바라
Magda Seidlerová....Barbara
하나 이트코바....테레사
Hana Yitkova....Theresa

"Konec srpna v Hotelu Ozon"

아트 하우스 영화관에서 얀 슈미트가 감독한 체코슬로바키아 영화 [오존 호텔에서의 8월말]을 상영할 때 늘 미끼처럼 다는 표현이 있습니다.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가 감독한 [매드맥스] 같은 영화'라고요. 지나치게 단순한 표현들이 대부분 그렇듯, 이 역시 영화에 완벽하게 맞아 떨어지는 말은 아니지만 그래도 근접하긴 합니다. [오존 호텔에서의 8월말]은 현대 문명의 붕괴 이후를 배경으로 풀어놓지만 멜 깁슨식 액션을 끼워넣는 대신 그 안에서 우울한 묵상에 빠집니다.

영화의 주인공들은 나이 든 대모가 이끄는 일단의 젊은 여성들입니다. 이들은 핵폭발로 인류가 멸망한 뒤 살아남은 몇 안 되는 생존자들로, 텅빈 폐허를 돌아다니며 다른 사람들을 찾고 있지요. 영화 중반에 이들은 오존 호텔이라는 곳에서 아직도 과거의 삶을 기억하고 있는 유일한 남자 생존자와 만나게 됩니다.

일반적인 할리우드 영화에서라면 이 남자는 '봉 잡았다!'라고 외칠 것입니다. 남자라고는 자기 한 명밖에 없는데 사방에 젊고 섹시한 여자들이 부글거리니 말이죠. 지구와 인류의 미래를 위해 저 여자들과 한번씩 붙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하지만 얀 슈미트의 이 영화에서는 그런 핑계는 먹히지 않습니다. 유일한 생존자인 남자는 죽을 날이 머지 않은 노인이고 여자들은 그에게 어떤 성적 관심도 느끼지 않습니다. 남자는 문명의 폐허처럼 잠시 버티면서 그들의 관심을 끌다가 붕괴되며 여자들은 다시 떠납니다. 유일하게 과거를 기억하는 대모의 시체를 묻고요. 영화가 끝날 때까지 인류의 미래가 재건될지도 모른다는 희망은 제시되지 않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들은 이런 식으로 살다가 자손없이 한 명씩 죽어갈 것 같아요. 아마 그게 모든 것의 종말일 겁니다.

그렇다면 이것은 핵전쟁에 대한 경고일까요? 하긴 이 느릿하고 비관적인 분위기는 스탠리 크레이머의 [그날이 오면 On the Beach]과도 많이 닮았습니다. 하지만 영화 내내 "우린 이렇게 죽지만 당신들은 기회가 있으니 조심해!"를 외치던 크레이머의 영화와는 달리 슈미트의 영화는 그런 교훈엔 관심이 없습니다. 이 영화의 주제는 핵전쟁의 위험성이 아닙니다. 오히려 필연적으로 언젠가 오고 말 문명의 종말에 대한 묵상이지요. 그런 면에서 이 작품은 [그날이 오면]보다는 브라이언 W. 올디스의 [회색수염 Greybeard]에 더 가깝습니다.

슈미트의 영화에서 가장 특이한 점은 여성 캐릭터들의 활용입니다. 나이든 대모를 제외하면 이들은 우리가 흔히 영화나 소설에서 접하는 '긍정적인' 여성 이미지를 거의 갖추고 있지 않습니다. 그들은 잔인하고 냉정하며 동정심 따위는 처음부터 갖추고 있지 않은 야만인들입니다. 그들이 유일하게 제대로 느끼는 감정은 두려움과 불안뿐인 듯 합니다. 그들은 단지 못 배운 사람들이 아니라 우리 문명인들과는 소통 자체가 불가능한 다른 종입니다. 그런데 이들은 왜 여성일까요? 그건 단지 번식의 불가능함을 강조하기 위해서였을까요? 아니면 남성중심인 서구문명의 몰락을 보다 극적으로 보여주기 위한 도구였을까요? 만약 이 작품이 몇 년 뒤 철의 장막 너머에서 만들어졌다면 전 여기서 급진적 페미니즘에 대한 거부감이나 공포감을 읽을 수도 있었을 겁니다. 지금 당장은 거기까지 연장해야 할 필요성이 느껴지지는 않습니다만. (05/07/27)

DJUNA

기타등등

동물보호운동가들이 좋아할만한 작품은 아닙니다. 세 마리의 동물들이 우리 눈 앞에서 처참하게 죽죠. 중간에 죽는 개는 비교적 멀리서 보여지기 때문에 (상당히 좋은) 특수효과를 썼을 가능성도 있지만 뱀이나 소는 '영화를 위해' 죽은 게 분명합니다. 배우들은 소의 시체를 칼로 가르고 내장까지 꺼내야 했으니 고생이 상당했을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