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스코트 데릭슨 Scott Derrickson

주연
로라 린니....에린 브루너
Laura Linney....Erin Bruner
톰 윌킨슨....무어 신부
Tom Wilkinson....Father Moore
캠벨 스코트....이든 토머스
Campbell Scott....Ethan Thomas
제니퍼 카펜터....에밀리 로즈
Jennifer Carpenter....Emily Rose
콤 피어....칼 군더슨
Colm Feore....Karl Gunderson
죠슈아 클로즈....제이슨
Joshua Close....Jason
케네스 웰시....뮐러 박사
Kenneth Welsh....Dr. Mueller
덩컨 프레이저....카트라이트 박사
Duncan Fraser....Dr. Cartwright
JR 분....레이
JR Bourne....Ray
메리 베스 허트....브루스터 판사
Mary Beth Hurt....Judge Brewster
헨리 체니....브릭스 박사
Henry Czerny....Dr. Briggs
쇼레 아그다샬루....아다니 박사
Shohreh Aghdashloo....Dr. Adani

에밀리 로즈

[다 빈치 코드]가 세상에 존재하는 유일한 거짓말이라도 되는 것처럼 생각하는 사람들이 툭 하면 하는 말이 있죠. 사실 속에 거짓말이 조금 섞여 있는 게 진짜 위험한 거라고. 그런데 세상에 그렇지 않은 게 얼마나 되겠어요? 얼마 전 기독교 세계의 대히트작이었던 멜 깁슨의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도 그렇게 정직한 영화는 아니었습니다. 약간의 사전 지식만 있어도 이 영화가 목표를 위해 얼마나 노골적으로 고고학적 지식을 조작하고 있는지 알 수 있지요.

[엑소시즘 오브 에밀리 로즈]는 멜 깁슨의 영화보다 더 노골적인 영화입니다. 거짓말을 구별하기가 더 쉽다는 거죠. 하지만 사실 속에 거짓말이 섞여 있는 건 마찬가지이고 영화 보고 나오는 사람들 중 그걸 구별하고 싶지 않은 사람들도 많을 겁니다.

무엇이 사실일까요? 70년대에 안넬리제 미켈이라는 여자가 악령에 빙의되었다고 믿었고 몇 년 동안 엄청 고생하다가 엑소시즘 중에 사망했다는 것이죠. 부모와 엑소시즘을 집행한 두 사제는 과실치사죄로 걸려 재판을 받았고요.

영화는 이 이야기를 현대 미국으로 옮기고 주인공 이름을 에밀리 로즈로 바꾸어 재구성하고 있습니다. 안넬리제 미켈의 이야기만 따면 꽤 충실한 편이에요. 진행시간이 조금 압축되었고 증세와 현상이 과장되긴 했지만요.

하지만 영화가 이야기를 끌어가는 방식은 대부분 허구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이 영화의 주인공은 에밀리 로즈가 아니라 에밀리의 엑소시즘을 집행한 무어 신부의 변호사 에린 브루너입니다. 에밀리 로즈의 이야기는 에린이 사건을 조사하고 무어 신부의 재판이 진행되는 동안 플래시백으로 조금씩 삽입되지요.

에린 브루너의 캐릭터는 받아들일만 합니다. 누가 봐도 노골적인 허구의 인물이니까요. 하지만 에린의 이야기와 에밀리의 이야기가 연결되면서 중간에 다소 통제하기 어려운 거짓말들이 만들어집니다. 여기서 [엑소시즘 오브 에밀리 로즈]는 진상을 확신할 수 없는 미지의 대상을 객관적으로 다룬다는 기본 규칙을 위반합니다. 여전히 불가지론을 유지하는 척하면서 악마의 존재와 에밀리 로즈의 '성스러움'을 믿으라고 강요하는 거죠. 허구와 사실을 멋대로 뒤섞은 마지막 자막도 이런 기만 중 하나입니다. 하긴 호러 영화를 만들면서 초자연현상을 무시하는 것도 재미없는 일이긴 합니다. 하지만 안넬리제 미켈 사건의 가장 큰 문제점이었던 '의사가 배석하지 않는 엑소시즘'까지 슬쩍 넘어가는 건 그냥 거짓말입니다.

그러나 사실을 구분하고 확인할 정도의 성실함을 갖추고 있는 관객들에게, [엑소시즘 오브 에밀리 로즈]는 썩 좋은 호러 영화입니다. 엄청 무서운 영화라고는 하지 않겠어요. 하지만 전체적으로 잘 만들어졌고 엄청난 자극 없이 관객들을 불편하게 만드는 방법을 알고 있습니다. 특히 액자구조의 효율적인 활용은 주목할만 합니다. 안전한 현재와 공포스러운 과거가 교차하는 이 스토리가 진행되는 동안 각본은 현재의 안전함을 서서히 파괴해가지요. 이건 우리 속에 갇혀 있는 줄 알았던 호랑이가 동물원 밖으로 뛰쳐나가는 것과 같은 효과를 만들어냅니다. 훨씬 은밀하지만요.

로라 린니와 톰 윌킨슨과 같은 훌륭한 배우들의 노련한 연기도 이 영화의 장점 중 하나입니다. 에밀리 로즈를 연기한 제니퍼 카펜터의 온 몸을 던진 열연도 무시할 수 없고요. 문제는 이들의 호연이 정신적으로 게을러 빠진 수많은 관객들을 속여넘기는 노골적인 기만의 일부로 작용할 수 있다는 거겠죠. (06/04/25)

DJUNA

기타등등

개인적으로 2000년대로 시대 배경을 옮긴 게 그렇게 맘에 들지 않습니다. 안넬리제 미켈이 죽어갔던 1970년대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가톨릭교가 급변하던 때였지요. 제3자에겐 거의 자폭처럼 보이는 미켈의 행동은 종교의 현대화에 대한 보수적인 가톨릭교도의 개인적 저항일 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온갖 노골적인 근본주의와 보수주의가 고함을 질러대는 21세기 초엔 이건 그냥 집단의 협박처럼 보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