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존 부어맨 John Boorman

주연
브렌든 글리슨....마틴 캐힐
Brendan Gleeson....Martin Cahill
존 보이트....네드 케니
Jon Voight....Ned Kenny
아드리안 던바....노엘 컬리
Adrian Dunbar....Noel Curley
숀 맥긴리....개리
Sean McGinley....Gary
마리아 도일 케네디....프랜시스
Maria Doyle Kennedy....Frances
안젤라인 볼....티나
Angeline Ball....Tina

1.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존 부어맨의 거실에는 [딜리버런스]의 삽입곡 [벤조 이중주]의 히트를 기념하는 골든 디스크가 걸려 있었습니다. 지금은 없어요. 그 사람 집에 밤도둑이 들어와 그 골든 디스크를 훔쳐가 버렸거든요. 경찰은 아직도 그 도둑이 '제너럴'이라는 별명으로 알려진 도둑 마틴 캐힐과 그 패거리였다고 믿고 있습니다.

이렇게 생각해보면 부어맨은 이 영화를 만들면서 나름대로 캐힐에게 복수를 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술가들이나 할 수 있는 멋진 복수지요. 구닥다리 장식품을 예술품으로 전환시키고 타블로이드 판의 흐린 사진에 불과했던 적수를 흥미진진한 초상화로 격상시키는 그런 복수 말이에요.

2.

종교를 보면 그 국민성을 알 때가 많습니다. 아일랜드 사람들이 그 대표적인 예죠. 그네들이 지금까지 꿋꿋하게 지켜온 카톨릭이란 종교는 그들이 얼마나 지독한 반골기질인가를 증명하는 대표적인 예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자신의 드센 성격을 억누르는 해독제로 참견많은 종교를 선택하기 마련이거든요.

마틴 캐힐을 그렇게 요란한 영웅으로 만든 것도 따지고 보면 그런 아일랜드식 반골정신이었습니다. 캐힐은 그렇게 해서 탄생한 첫 번째 영웅도 아니고 마지막 영웅도 아닐 겁니다. 다시 말해 그는 수 백년을 거슬러 올라가는 짓궂은 취향에 선택된 사람일 뿐이었단 말이지요. 정치가 어떻게 변하고 사회구조가 어떻게 변해도 이런 일들은 끝나지 않을 거예요.

몇십 년 동안 이 미친 나라에서 이방인으로 살아온 존 부어맨에게 이런 요소들은 충분히 매혹적인 연구 대상이었을 겁니다. [제너럴]이 '아웃사이더 영웅 현상'에 대한 보편적인 이야기로 나가기 전에 살짝 흘리는 짓궂은 미소는 이 이야기가 아일랜드라는 나라에 얼마나 밀착되어 있는가를 보여주는 증거입니다. 그건 이 영국 남자가 끝끝내 아일랜드인이 되지 못했다는 증거이기도 하겠지요.

3.

감독으로서 존 부어맨이 가진 가장 큰 약점은 자신의 유머 감각을 과소평가한다는 것입니다. [엑스칼리버]나 [딜리버런스]와 같은 '심각한 영화들'의 성공 때문일까요? 아니면 자기 유머 감각에 죄의식이라도 느끼고 있는 걸까요?

[제너럴]의 가장 큰 성공 이유는, 그가 나이를 먹어가면서 슬슬 되찾기 시작한 유머를 아무런 양심의 가책없이 영화 전체에 뿌려댔다는 데에 있습니다. [제너럴]은 저희가 가장 좋아하는 부어맨 영화인 [희망과 영광]만큼이나 여유있어 보입니다.

[희망과 영광]이나 [제너럴]에서 사용하고 있는 유머는 '따뜻한 블랙 유머'라고 할 만한 것입니다. 범죄나 전쟁과 같은 소재를 다루고 있기는 하지만 냉소적이기보다는 인간적이고 동정적입니다.

[제너럴]에서 유머의 원천은 주인공 마틴 캐힐의 직업입니다. 그는 로빈 훗이나 래플즈와 같은 환상이 아닙니다. 캐힐은 직업이 도둑인 남자입니다.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지요. 그러나 체제 밖의 '비정상적인 직업'을 가진 사람들에 대한 우리의 선입견은 그 당연함을 인정할 수 없습니다. 그의 존재와 선입견이 충돌하는 지점에서 유머가 발생하는 것은 캐힐의 직업만큼 당연하다고 하겠지요.

그러나 [제너럴]의 유머는 [그로스 포인트 블랭크]나 [빅 히트]의 유머와는 다릅니다. 도둑질이 살인보다 역사가 짧을지는 몰라도 그보다 훨씬 지상에 더 단단히 박혀 있는 직업임은 틀림없으니까요. 그 때문에 초반의 유머가 후반부의 비극과 충돌하지 않고 뒤섞일 수 있는 겁니다.

4.

영화 속의 마틴 캐힐은 묘하게 매혹적인 남자입니다. 브랜든 글리슨이 너무나도 능청스럽고 아름답게 연기했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그보다는 그가 철저하게 도덕과 무관한 인물이기 때문이죠.

이런 인물들에게는 뭔가 확 트힌 듯한 매력이 있기 마련입니다. 모양새는 조금 다르지만 [라스트 시덕션]의 브리짓 그레고리가 발산하는 매력도 기본적으로는 같은 것입니다. 우리같은 보통 사람들이 도덕과 윤리, 사회 규칙 따위에 끼어 꿈만 꾸는 일을 그들은 당연하다는 듯 하고 그런 뒤에도 양심의 가책 따위는 느끼지도 않죠. 그렇게 자유롭지 못한 우리가 그런 사람들을 바라보며 불가능한 자유의 끝맛을 구걸하는 건 결코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그런 자유로움은 이야기꾼한테도 비슷한 자유를 줍니다. 존 부어맨은 캐힐을 미화시킬 필요가 없습니다. 도덕성이 캐힐의 매력은 아니니까요. 도둑질, 강도질, 협박, 폭탄 테러, 고문과 같은 그의 고약한 범죄들은 장식되지 않고 그대로 스크린에 옮겨집니다(단지 캐힐과 관련된 마약건은 조심스럽게 부인되는데, 분명한 증거가 있는 것도 아니니 이 점은 봐줄 만 합니다.)

그 결과 완성된 캐힐의 초상은 복잡해 보이지만 사실 상당히 단순한 것입니다. 역시 보기만큼 이상한 건 아닙니다. 브라운 신부는 언젠가 이렇게 말했지요. "예술작품이라고 불리우는 것에는 하나의 특징이 있습니다. 아무리 완성된 모습이 복잡하다고 하더라도 그 중심은 어디까지나 단순하다는 것입니다." 사람을 당황하게 만드는 캐힐의 잔인함과 친절함의 혼합은 사실 그가 어린아이처럼 단순하고 속을 감추지 않는 남자라는 사실을 알면 쉽게 풀립니다. 하긴 도둑이라는 직업 자체부터가 그의 단순함의 산물이 아닙니까? ("돈이 저기 있으니 가져가자!")

이를 설명하기 위해 쓸 만한 가장 그럴싸한 예는 캐힐이 지미를 고문하는 장면입니다. 지미의 손에 못을 박을 때 그는 냉정하고 단호합니다. 그러나 지미가 무죄라고 생각하자 역시 직접 못을 뽑아주고 병원까지 데려가지요. 이 두 행동은 전혀 모순되지 않습니다. 캐힐은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고 또 하고 싶었던 일들을 아무런 주저없이 행한 것 뿐입니다. 그 때문에 지미가 손에 못이 박히는 일을 당하고도 여전히 캐힐 주변에서 맴돌았던 거죠. 캐힐한테 어떤 복잡한 악의가 없다는 걸 알고 있었으니까요.

아내 프랜시스와 처제 티나 사이를 오가는 그의 가족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남들 같았으면 울화통 터졌을 설정 속에서도 프랜시스가 그렇게 태연했던 것도 따지고 보면 그녀가 캐힐이 아직 덜 자란 소년에 불과하다는 걸 잘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기저귀를 찬 아기를 미워할 수는 없는 법입니다.

캐힐의 비극은, 그가 체제에 불복하는 반항아였다는 데 있지 않습니다. 진짜 비극은 그가 어른들의 복잡한 세계에서 아이들의 단순한 방법으로 살아남으려고 했다는 데에 있습니다. IRA는 문제아를 체벌하는 학교 선생처럼 그를 처벌한 것입니다.

5.

부어맨은 와이드 스크린에 흑백이라는 구식 스타일을 의도했지만 흑백 필름을 구하기 힘들었기 때문에 칼라로 찍어 흑백으로 현상하는 트릭을 쓸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 결과 칼라 필름이 덤으로 남았고 우리나라에서는 두 판본을 모두 볼 수 있죠.

저희가 본 것은 칼라 버전이므로, 부어맨의 의도를 완전히 파악했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언젠가 흑백 버전도 봐야겠어요. 하지만 코아 아트홀에서는 와이드 스크린이 다 살지 못하니 거기에도 문제가 없는 건 아닙니다. (99/01/26)

D&P

기타등등

부어맨은 복수라도 하는 듯, 캐힐이 자신의 골든 디스크를 훔치는 장면을 그럴싸하게 재현해서 영화 속에 삽입합니다. 정말 부어맨의 디스크가 그처럼 허무하게 사라져 버렸을까요? 아무도 모르는 일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