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김태경

주연
김하늘....지원
류진....준호
남상미....수인
신이....미경
전혜빈....은서
이윤지....은정
전희주....유정
김수진....어린 지원
주다영....어린 수인
김혜숙....지원모
최란....수인모
기주봉....형사

유정, 은서, 지원, 미경

[령]의 시사회를 하기 전에 회사에서 나온 마케팅 담당이 부탁하더군요. 후반부에 나오는 반전 내용을 제발 공개하지 말아 달라고요. 들으면서 참 할 필요없는 소리라고 생각했습니다. 시놉시스와 예고편만 본 저도 그 반전의 내용이 뭔지 짐작하고 있었거든요. 생각해보세요. 익사할 뻔하다 살아난 뒤 기억상실증에 걸린 주인공이 물귀신에게 쫓기는 내용의 호러영화에 반전이 있다면 그게 뭐겠어요?

전 지금 반전이 뻔하다고 불평하는 게 아닙니다. 전 뻔한 이야기들을 좋아해요. 전 기억상실증 이야기를 좋아하고 고전적인 귀신 이야기도 좋아합니다. 둘이 결합되면 더 좋고요. 뻔하디 뻔한 설정은 [령]의 단점이 아닙니다. 장점이지요.

위에서도 말했지만 [령]은 익사할 뻔하다 살아난 뒤 기억상실증에 걸린 대학생 지원이 주인공입니다. 지원은 생각나지도 않는 과거를 접고 새 생활을 시작하려 하지만, 고등학교 동창들이 한 명씩 이상한 상황에서 죽어가기 시작해요. 지원 자신도 물에 빠진 사다코 같은 유령의 추적을 받고요.

지나치게 [가위]를 흉내낸 것 같아 보이긴 하지만 괜찮은 설정입니다. 말이 나왔으니 하는 말이지만 [가위]도 그렇게 독창적인 설정의 영화는 아니었잖아요. [령]의 설정은 적당한 미스터리를 품고 있고, 물을 이용해 괜찮은 비주얼을 끌어낼 수 있는 가능성을 갖추고 있으며 관객들이 주인공에게 쉽게 감정이입할 수 있을만큼 정서적 효과가 큰 위기 상황을 조성할 수도 있습니다.

유감스럽게도 [령]은 이 가능성들을 모두 놓쳐버립니다.

일단 [령]이 기술적으로 그렇게 잘 만들어진 영화가 아니라는 점부터 말해야겠습니다. 리듬감에 거의 신경쓰지 않은 것 같은 공포 효과들은 재미가 없고, 중간에 성의없이 삽입되는 꽝꽝 효과음은 깜짝 놀라는 정도의 자극도 주지 못합니다. 도입부에 가끔 나오는 코미디의 삽입은 더 나쁩니다. 분위기를 조절하는 대신 그냥 망쳐버리죠. 각본은 빈틈투성이이고 당연히 해야할 설명도 하지 않고 있습니다. (방에서 익사체로 발견된 시체를 보고 자연사라고 주장하는 경찰들은 도대체 뭐란 말입니까?) 마치 서툰 저글링을 보는 기분입니다. 던진 공들 중 반이 그냥 바닥으로 떨어져버리니까요.

영화는 진부하기도 합니다. 이 영화의 귀신은 물에 젖은 사다코 이상은 아닙니다. 전 극장 앞좌석의 사다코 출연 장면을 보았을 때 킥킥거리며 재미있어했지만, 나머지 장면들을 볼 때는 그럴 성의를 보일 생각도 들지 않았어요. 영화가 그처럼 중요시했던 물의 모티브도 희생자를 익사시키는 것 이상으로 구체화되지는 않습니다.

영화는 당연히 깊이 다루어야 할 주제도 제대로 파지 못합니다. [령]은 기억상실증을 가장 재미없게 다룬 영화로 기네스북에 오를 자격이 있습니다. 지원의 모험담에는 이런 소재의 이야기에 마땅히 따라와야 할 공포도, 매혹도, 흥분도 없습니다. 영화는 지원의 기억상실을 마치 점심 도시락을 잃어버린 것 정도로 취급하고 있습니다.

영화는 반전을 지나치게 심각하게 다루는 실수를 범하기도 했습니다. 친구들이여, 로마인들이여, 미래의 호러 작가들이여, 여기 여러분에게 진심으로 들려줄 충고가 있습니다. 제발 여러분이 고안해낸 반전을 과대평가하지 마시길. 반전만으로는 영화를 만들 수 없습니다. 대부분의 경우 반전은 이야기를 구성하는 작은 벽돌에 불과합니다. [령]에서도 진짜로 중요시해야 했던 건 영화를 보기도 전에 눈치챌 수 있는 반전이 아니라 그 반전을 체험하는 캐릭터의 성격과 심리묘사였습니다. 슬프게도 이 영화에서는 관객들이 자신을 묻거나 흥미를 품고 관찰하고 싶어할만한 캐릭터들이 전무합니다. 캐릭터 묘사는 얄팍하고 행동은 설득력이 떨어집니다. 그들은 무섭거나 혐오스럽지도 않습니다. 단지 앞뒤가 안 맞고 어색한 존재들에 불과해요. 당연히 그들의 갈망이나 죄의식이 관객들에게 와닿을 리가 없죠.

영화는 캐스팅에도 실패했습니다. 위의 사진을 봐주세요. 저게 어떻게 정통 호러영화의 한 장면인가요. [논스톱 5] 납량 특집 에피소드의 스틸이지. 전 이 영화에 나오는 배우들의 재능을 무작정 깎아 내릴 생각은 없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이 영화에 맞는 사람들이 아니었어요.

주인공 김하늘부터 문제가 심각합니다. [령]에서 김하늘이 보여주는 연기는 퍽퍽하고 둔탁합니다. 이 장르에서 필수적인 예민하고 날카로운 느낌이 전혀 살아있지 못하죠. 보고 있으면 그 예쁜 얼굴을 대패로 밀어버리고 싶을 정도입니다. 연기 스타일 역시 잘못되어 있습니다. 이 영화에서 김하늘의 연기는 [동감]의 멜로드라마와 [그녀를 믿지 마세요]의 오버 연기를 섞은 듯 합니다. 아무리 봐도 설익은 멜로와 핀트가 어긋나는 코미디의 혼합이지, 호러 연기는 아니에요.

나머지 배우들도 특별히 낫지는 않습니다. 전희주와 남상미는 중간 정도는 갑니다. 하지만 그건 이 배우들에게 아직 분명한 개성이 없어서 스토리 안에 비교적 잘 녹아들었기 때문이지 그들이 특별히 연기를 더 잘했기 때문은 아닙니다. 얄궂게도 자매로 나오는 전혜빈과 이윤지는 아직도 [논스톱]에 한쪽 발을 담그고 있는 것처럼 보이고 신이는 여전히 코미디 연기를 하고 있습니다. 남자 파트너로 나오는 류진에 대해서는 할 말 자체가 없습니다. 그만큼이나 투명해요.

전 아직도 [령]을 관대하게 보고 싶습니다. 여전히 이 이야기의 기본 설정과 아이디어가 맘에 들거든요. 하지만 아무리 노력을 해도 영화가 가진 단점들까지 눈감아 줄 수는 없겠더군요. [령]은 2004년 한국 호러 영화 시즌의 첫 걸음을 내딛는 영화치고는 실망스럽습니다. (04/06/07)

DJUNA

기타등등

너무나 노골적인 오리온 과자들의 간접 광고 때문에 실컷 웃었답니다. 특히 고소미 광고는요. 고소미의 최근 텔레비전 광고가 영화관 장면에 나오기도 하니 여러분은 임수정과 강혜정이 이 영화에 카메오 출연했다고 우길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