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엄준 Yen Chun

주연
이려화....장희
Li Li-Hua....Princess
능파....조무
Ivy Ling Po....Chiu Wu
이영....도안고
Li Ying....Tu
엄준....정영
Yen Chun....Cheng Ying

조무와 장희

[만고유방]은 황매조 영화의 대표작 중 하나로 알려져 있지만, 장르의 전형이 될 만한 작품이 아닙니다. 음악은 아주 적고 스토리 역시 로맨스와는 큰 상관이 없으며 남성 위주지요. 그냥 가끔 음악이 들어가는 궁중사극을 보는 듯한 느낌입니다.

내용이 뭐냐고요? 그 악명높은 [조씨고아] 이야기입니다. 진나라의 충신 조삭이 간신 도안고의 음해를 받아 처형되고 남은 조씨 가문 300명도 몰살되었는데, 유일하게 살아남은 조삭의 아들 조무를 살리기 위해 수많은 사람들이 희생한다는 거죠. 이 이야기에서 가장 끔찍한 부분은 아마 조씨고아를 거둔 정영이 조무를 구하기 위해 자신의 아들을 대신 희생시키는 장면일 겁니다. 기군상의 원작 희곡을 읽을 때마다 "이 말도 안 되는!"이라는 말이 자동적으로 터져 나옵니다. 하긴 애가 나오지 않으면 나라 안의 갓난아기들을 몽땅 죽이겠다고 협박을 해댔으니 그 선택이 이해가 안 가는 건 아닙니다만.

이야기를 보면 참 갑갑합니다. 도대체 이 사람들, 왜 이러고 사는지 모르겠어요. 자살하고 자기 아들을 죽일 만한 에너지가 있다면 일단 코 앞에서 이죽거리는 원수를 죽일 시도는 해봐야 하지 않겠어요? 그리고 도대체 왜 복수를 위해 15년이나 되는 세월을 기다려야 했는지. 그 정도 깊이 침투했다면 그 이전에 얼마든지 다양한 방법으로 도안고를 죽이고 괴롭히고 고문할 수 있었거든요. 15년이나 기다렸으니 복수도 시시해지지요. 그 동안 온갖 부귀영화를 다 누리고 죽을 날만 기다리는 노인네를 죽여서 뭘 얻겠다고요? 원작에서는 서서히 고통스럽게 죽이기라도 했지요.

영화 [만고유방]은 기군상의 원작보다는 상대적으로 부드러운 편입니다. 보다 '여성적'이라고 할 수도 있겠군요. 일단 원작 희곡에서 자살하는 조삭의 아내 장희는 끝까지 살아남습니다. 그 덕택에 아무 것도 모르는 16살의 조무가 엄마랑 재회하는 장면이 첨가되지요. 엄마가 아들의 정체를 알아차리는 장면이 없어서 뭔가 좀 빠진 듯한 느낌이 들긴 하지만요. 그래도 이 정도로 장희의 역할이 커진 건 그 역을 당시 최고의 스타였던 이려화가 연기했기 때문일 겁니다.

조무의 역할을 능파가 연기하고 있기 때문에 이 피투성이 이야기의 분위기가 조금 더 부드러워지기도 합니다. 아마 너무 부드러운 건지도 몰라요. 이 영화에서 조무는 분노에 떠는 복수자보다는 철부지 소년 같습니다. 연기나 연출 자체가 조무를 열 살 소년처럼 행동하게 몰고 가고 있죠. 그것 역시 하나의 예술적 선택일 수 있겠지만 대부분 사람들은 그보다 더 강한 복수자를 원했을 거예요.

그러나 영화의 폭력적인 분위기는 그냥 남습니다. 그만큼이나 영화는 선악의 구별이 분명하고 착한 사람들이 당하는 고통이 심하며 그들의 선택도 힘겹습니다. 하긴 아무리 부드럽게 처리한다고 해도 기군상의 원작에 있는 그 끔찍한 요소들이 다 사라지기야 하겠어요? (05/08/19)

DJUNA

기타등등

제가 처음 본 이려화의 영화입니다. 아니, 제가 이 사람 얼굴과 이름을 매치시켜가며 본 첫 번째 영화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