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박윤교

주연
정세혁
서정아
선우은숙
최용원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영임

신달산업 사장인 김영하는 어느 날 길가에서 가수 지망생인 영임을 만나 서울까지 차로 태워다 줍니다. 나중에 일이 잘 안 풀린 영임이 회사로 찾아오자 그는 회사 소유인 별장에 일자리를 제공해주죠. 영하와 불륜을 맺게 된 영임은 곧 임신하게 되고, 영하는 자기에게 자꾸 귀찮은 요구를 해대는 영임을 실수로 죽이게 되지요. 영하는 영임의 시체를 우물에 묻고 잊어버리려 하지만 8개월 뒤 영임의 유령이 영하의 집에 나타나기 시작하고 그 뒤로 그의 삶은 엉망이 됩니다.

[망령의 웨딩드레스]는 [마의 계단]의 80년대식 리메이크라고 할 수 있는 작품입니다. 재수없는 남자 주인공이 자기에게 귀찮게 달라붙는 젊은 여자를 죽였는데 그 뒤로 여자의 유령이 나타나 남자를 공포로 몰아넣죠. 알고 봤더니 그건 모두 간신히 살아남은 여자의 음모였고요. 따지고 보면 [마의 계단]도 일본 소설에서 아이디어를 빌린 것이라고 하고 그 일본 소설도 십중팔구 [이제는 존재하지 않는 사람]의 영향 아래 쓰여진 것일테니 꼭 [마의 계단]에만 매달릴 필요는 없겠지만요.

[망령의 웨딩드레스]에서 [마의 계단]의 강렬함을 기대할 수는 없습니다. 처음부터 그런 질에 도달할 능력도 없었죠. 박윤교는 이만희가 아니었고 지금은 이름을 확인하기도 어려운 남자 주인공 아저씨도 김진규는 아니었으며 제작 상황도 결코 그만큼 좋지 못했을테니까요. 영화는 서툴고 논리적으로 엉망이고 코미디로 보기엔 너무 쳐집니다. 아니, 이건 너무나도 진지한 할머니/할아버지들 사이에서 영화를 봤기 때문일 수도 있겠군요. 계획대로 작년 부천 영화제에서 상영되었다면 웃어대는 관객들 사이에서 훨씬 즐거운 감상을 할 수 있었을 겁니다.

이 구닥다리 영화의 주제에 대해 이야기하는 건 여전히 가치있는 일입니다. 버림받고 살해당할 뻔한 여자가 전기 기술, 마술, 최면술, 서커스 탈출쇼의 테크닉을 배운 뒤 유령 흉내를 냈다는 내용인 줄 알았던 영화가 갑자기 아버지의 사업체를 빼앗은 남자에게 복수하기 위해 접근한 딸의 치밀한(?) 복수극이었다는 진상이 밝혀지는 후반부를 보세요. 네, 참으로 말도 안되는 이야기이긴 하죠. 그래도 이 영화에 깔려있는 물질주의에 대한 격렬한 혐오는 80년대 초의 사회적 분위기와 연결해서 적당히 해석해 볼 수 있을 겁니다.

너무나 80년대적인 영화의 모양새에 대해서도 한마디 해야 할 것 같습니다. [망령의 웨딩드레스]는 참으로 천박하고 추하게 생긴 영화입니다. 어느 정도 잘 사는 사업가인 영하네 집을 한 번 보세요. 돈과 형편없는 취향을 섞어 덕지덕지 벽에 처바를 때 생기는 썩은 내가 납니다. 의도적일까요? 아뇨, 이 영화가 예술적으로 그만큼 여유있는 작품일 리가 없습니다. 보다 단순한 일반법칙에서 이유를 찾는 게 더 쉬워요. 그건 천박한 시대의 영향을 가장 노골적으로 받는 건 부자들네 집의 인테리어라는 거죠.

배우들, 아니 배우들의 이미지에 대해서도 비슷한 말을 할 수 있습니다. 검은 웨딩드레스를 입은 선우은숙에 대해서는 불만이 없습니다. 역이 우스꽝스러워서 그렇지, 관객들이 별 불만없이 여자 주인공으로 인정해 줄 수 있을 정도로 안전하게 예쁘거든요. 하지만 이름 석자도 기록에서 사라져버린 영하 역의 남자 배우 아저씨는 심해도 너무 심했습니다. 형편없는 10류 악역 배우들의 공식적인 매너리즘을 모두 보여주는 졸렬한 연기야 무시한다고 쳐도 어쩜 그렇게 혐오스럽게 생길 수가 있을까요? 물론 영하의 추악한 이미지는 캐릭터를 위해 과장되었음이 분명하지만 그래도 이 아저씨의 역겨운 외모와 태도가 7,80년대에 당연시되던 '남성미'와 어느 정도 연결되어 있었음은 분명합니다.

결국 [망령의 웨딩드레스]는 이중의 유물입니다. 영화는 80년대 초의 물질주의에 대한 비판이기도 하지만 그 자신이 속해 있을 수밖에 없었던 시대의 천박한 미의식의 잔재이기도 하죠. 그리고 위에서도 말했듯, 둘은 밀접하게 연결될 수밖에 없습니다. 자기 꼬리를 물어 뜯은 뱀의 시체처럼 천박함과 처절함이 뒤섞인 영화의 모양새는 그 결과인 거죠. 그 때문에 영화는 자체의 질과는 상관없이 굉장히 절실해 보입니다. (04/09/07)

DJUNA

기타등등

남자 주인공 아저씨를 연기한 배우 이름이 누군지 확인해주실 분 계십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