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가이 매딘 Guy Maddin

주연
레슬리 바이스....안나
Leslie Bais....Anna
케일럽 반튼스달....오시프
Caelum Vatnsdal....Osip
숀 발바....니콜라이
Shaun Balbar....Nikolai
그렉 클림키브....아카마토프
Greg Klymkiw....Akmatov

안나와 아카마토프

가이 매딘의 [세계의 심장]은 토론토 영화제가 25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기획한 단편 영화들 중 하나입니다. 이 작품은 아톰 에고이안, 패트리샤 로제마, 데이빗 크로넨버그와 같은 동료 캐나다 감독들이 만든 같은 시리즈의 다른 단편들과 함께 한동안 토론토 영화제 사이트에 스트리밍 파일이 올라와 있었는데 지금은 지워지고 없군요.

하여간 당시 [세계의 심장]에 대한 관객들의 열광은 대단했습니다. 그 해 영화제에 발표되었던 정식 상영작들이 이 6분짜리 단편의 그늘에 가려질 정도였으니까요. 이런 인기는 가이 매딘이라는 감독의 경향을 생각해도 조금 이상했습니다. 매딘은 열혈 컬트 팬들을 끌고다니는 감독이지만 일반 관객들을 흥분시키는 영화를 만든 적은 없잖아요.

하지만 [세계의 심장]은 정말 사람들의 피를 끓게 하는 구석이 있습니다. 이 영화의 가장 중요한 장점은 관객들을 흔들고 몰입시키는 그 엄청난 에너지와 힘에 있습니다. 영화가 끝날 무렵에는 멀미가 날 지경이죠.

영화의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오시프와 니콜라이는 형제로 둘 다 과학자인 안나를 사랑합니다. 그런데 안나는 지구의 심장이 약해져서 곧 지구의 멸망이 온다는 사실을 알게 되지요. 세상은 혼란에 빠지고 안나는 오시프와 니콜라이 중 한 명을 선택해야 합니다. 그 때 돈을 잔뜩 짊어진 기업가인 아카마토프가 짠하고 안나 앞에 나타납니다.

무슨 이야기냐고요? 사실 여기서 논리적으로 이야기의 의미를 따지는 건 큰 의미가 없는 것 같습니다. 앞뒤도 맞지 않고요. 세상이 끝나는 마당에 기업가의 돈이 사람을 유혹할 수 있을까요? 세상이 멸망하는 마지막 날에 안나가 두 남자 중 한 명을 선택해야 하는 이유는 또 뭐고요? 결정적으로 지구의 심장은 뭔데요?

하지만 이 부조리한 이야기는 완벽하게 자기 역할을 합니다. 일단 세상의 종말이라는 엄청난 데드라인을 설정한 이야기는 관객들을 흥분시킵니다. 그러는 동안 20세기 초를 지배했던 수많은 영화적 사조들을 6분 안에 밀어넣는 작업을 성공적으로 수행하기도 하죠. 영화는 자신이 영화제용이라는 걸 잊지도 않습니다. 마지막에 새로운 지구의 심장이 된 안나가 세상을 구원하고 KINO!라는 자막이 뜰 때 영화는 토론토 영화제를 위한 장려한 팡파레로 변신하기도 해요.

영화는 기본적으로 20년대에 만들어진 무성 영화 걸작들의 패러디입니다. 여러분은 영화사에 이름을 남긴 수많은 당시 걸작들의 파편들을 이 영화에서 찾아볼 수 있을 거예요(그중 가장 분명하게 눈에 들어오는 건 에이젠스쩨인과 프리츠 랑의 영화들입니다). 여기까지는 이상할 것도, 특별할 것도 없습니다. 하지만 매딘은 이런 이런 파편들을 옛 영화들의 기억들이 느낌표가 난무하는 자막들과 함께 낡은 필름 속에서 터져나오는 강렬한 심포니를 만들었습니다. 여기서 패러디와 스타일은 단순한 모방으로 남는 대신 매딘 고유의 시를 위한 단어들로 다시 태어납니다.

[세계의 심장]은 지금까지 만들어진 가장 드라마틱한 영화 교과서입니다. 영화라는 매체에 광고가 필요하다면 이 영화야말로 완벽한 선택입니다. (03/07/23)

DJUNA

기타등등

이 영화의 음악은 게오르기 스미르도프가 작곡한 [시간이여, 전진하라! Vremya, vperyod!]의 영화음악입니다. 제가 알기로 이 영화는 발렌친 카타예프가 쓴 '생산소설'을 각색한 작품이죠. 하여간 영화 음악은 여기서 구입할 수 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