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조엘 코엔 Joel Coen

주연
팀 로빈스....노빌 반즈
Tim Robbins....Norville Barnes
제니퍼 제이슨 리....에이미 아처
Jennifer Jason Leigh....Amy Archer
폴 뉴먼....시드니 J. 머스버거
Paul Newman....Sidney J. Mussburger
찰스 더닝....워링 허드서커
Charles Durning....Waring Hudsucker
짐 트루....클라렌스 '버즈' 건더슨
Jim True....Clarence 'Buzz' Gunderson
빌 콥스....모지스
Bill Cobbs....Moses
브루스 캠벨....스미티
Bruce Campbell....Smitty
해리 버긴....알로이시어스
Harry Bugin....Aloysius

1. 급선회

[바튼 핑크]는 부지발 시계의 부속품을 담아놓은 보석 상자처럼 매혹적인 작품이지만 어떤 면에서는 실패작이기도 합니다. 시계 부속이 시계공 이외의 사람들에게는 신경을 곤두서게 만들 뿐인 것처럼 [바튼 핑크]도 영화광이 아닌 일반 관객들을 질리게 만들죠.

이것은 분명히 실패입니다. 코엔 형제는 이해 못하는 수수께끼를 만들어놓고 의기양양해 하는 사람들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들을 '컬트 작가'로 올려놓고 숭배하고 싶은 사람들은 불만이겠지만, 그들은 소수의 관객들만을 열광시켜놓고 만족하는 부류는 아닙니다. 그들의 전작인 [블러드 심플]이나 [아리조나 유괴사건], [밀러스 크로싱]과 같은 영화들을 보세요. 그것들은 다소 괴팍하고 별난 영화들이기는 해도 이해불능이거나 지루하지는 않습니다. [바튼 핑크]를 제외한 코엔 형제의 영화들은 영화광이 아닌 관객들에게도 재미있는 영화입니다.

코엔 형제는 [허드서커 대리인]을 타고 [바튼 핑크]가 아슬아슬하게 멈추어선 낭떠러지에서 반대쪽으로 급선회해 허둥지둥 달려왔습니다. 그들의 스타일을 보면 이 영화는 당연한 선택이라고 할 수 있겠죠.

2. [허드서커 대리인]

일단 이 영화는 전혀 어렵지 않으며 캐내야 할 어떤 주제의식도 숨겨져 있지 않습니다. 허드서커 사의 살벌한 장면들을 보고 산업사회의 인간 소외에 대한 비판이라고 읽어 내려가는 사람들이 있을지도 모르겠 군요. 하지만 아닙니다. 와일더가 [아파트먼트]를 만들었을 때는 그런게 비판의 기능을 할 수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것은 아주아주 먼 옛날의 일입니다. 줄지어 늘어선 책상들과 기계화된 관료 시설들은 이제 동화의 배경이 되어 버렸습니다. 바로 와일더와 웰즈, 길리엄과 채플린이 그렇게 만들었지요. 그것들은 얼음나라의 숲과도 같은 맨하탄과 마법에 걸린 성처럼 보이는 허드서커 사의 마천루와 함께 동화의 배경을 구성합니다. 그리고 그 모든 것들을 덮으며 관객들의 귀를 충만케하는 아람 하차투리안의 음악은 얼마나 로맨틱한가요!

[허드서커]는 바보 한스가 왕이 되는 그림 형제의 민담과 전혀 다를 것이 없는 동화입니다. 그리고 동화답게 온갖 기적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 기적들은 40년대의 스크루볼 코미디의 황당한 플롯과 영화 언어 그리고 90년대의 특수효과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장르에 대해서는 아래에서 이야기 하기로 합시다.

3. 장르 애딕트

코엔 형제는 언제나 헐리우드 장르 영화를 나름대로 재해석해서 다시 만들어 왔는데 이번에도 그들의 특기를 여지없이 발휘합니다. 이번 대상은 스크루볼 코미디입니다. 그리고 [허드서커...]는 어떤 코엔 영화보다도 그 인용에 있어서 노골적입니다. 캐서린 헵번과 로잘린드 러셀이 연기했던 당찬 여자 주인공들을 그대로 표절하는 제니퍼 제이슨 리는 장르 확인을 위한 꼬리표라고 해도 별로 이상하지 않으며, 신문사의 북적거리는 묘사는 분명히 [히스 걸 프라이데이]의 영향 아래에 있습니다. 추락하는 반스 앞에 나타난 허드서커 사장의 유령에서 [멋진 인생]의 초보 천사를 떠올리기는 너무나도 쉽습니다. 이런 영화들이 미국 관객들에게는 지겨울 정도로 익숙한 작품이라는 점을 잊지마세요. 이것은 은밀한 지식 과시가 아닌 분명한 선언입니다. "이것은 '스크루볼 코미디'다, 또는 '스크루볼 코미디에 대한' 영화이다." 물론 그들의 체취가 묻어 더 황당해졌고 더 괴팍해졌으며 더 시각적이지만 말입니다.

자, 우리가 잊어서는 안될 점은 코엔 형제가 세상이라고 여기고 그들의 작품에서 다루고 있는 공간과 인간들입니다. 코엔 형제는 실제 세계를 다루지 않습니다. 그들의 영화 속에 등장하는 사람들과 사건들은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에서 따온 것이 아니라 다른 책과 영화 속에서 나온 것들입니다. 그들은 도서관의 생쥐들입니다. 저희는 그들이 과연 진짜 세상에 관심이 있는지 종종 궁금할 때가 있는데, 여러분들도 그런 기분이 가끔 드셨을 겁니다.

하여간 그들은 이 영화에서도 매우 진지했습니다. 그들은 나름대로 자기가 사는 세상에 대한 영화를 만들었으니까요. 실제 사회에 대한 무심함은 오히려 장르에 대한 진지한 몰두를 설명합니다. 이 경우는 그 진지함이 지나칠 정도입니다! [허드서커]는 스크루볼 코미디의 패러디가 아닙니다(코미디를 패러디하다니 무슨 바보같은...) 코엔 형제는 거의 편집증 환자처럼 이 장르의 성격을 극한으로 몰고 갑니다. 이 영화의 어처구니없는 플롯은 단순히 웃음거리용이 아닙니다. 약한 당위성의 어처구니없는 이야기는 이 장르의 가장 중요한 특성이니까요. 황당한 결말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추락 정지와 '기계장치의 신'인 허드서커 사장의 출현은 해피엔딩이 용납되지 않는 세상에 대한 냉소라기보다는 장르의 결말을 마음대로 조정하는 전지적인 작가의 능력을 과시한 것에 불과합니다. 이 또한 장르 연구가 특유의 행동이지요.

단지 이 모든 것들이 정도에 지나칩니다. 혹스가 천국에서 이 영화를 보았다면 자신이 창조한 괴물을 보는 프랑켄슈타인처럼 덜덜 떨었을 겁니다. 하나의 극한에 도달한 영화는 괴물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일반적인 코엔 영화들이 그 완벽한 스토리와 스타일에도 불구하고 기괴하게 보이는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이것이긴 합니다만.

4. 그리고...

어찌 되었건, [허드서커]는 카프라와 혹스의 전성기 영화만큼 (또는 그 이상으로) 재미있습니다. 그것만으로도 이 작품은 성공작입니다. [바튼 핑크]에 진력이 난 평범한 관객들에게 권할 만합니다. 그들이 이 영화를 보고 그들의 다른 작품들의 매력을 발견할 마음이 생겼으면 좋겠군요.

참, 카메오들이 많이 나옵니다. 바텐더로 나오는 스티브 부세미를, 신문기자로 등장하는 브루스 캠벨을 찾아 보세요. 자자로 나오는 안나 니콜 스미스(웩!)도 있고 저희들은 못찾았지만 피터 갤러거도 나온다고 하더군요. (95/05/10)

D&P

기타등등

짐 트루가 연기한 클라렌스 '버즈' 건더슨의 이름은 자연스럽게 [파고]의 마지 건더슨으로 연결되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