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테리 길리엄 Terry Gilliam

주연
크리스토퍼 플러머....파르나서스 박사
Christopher Plummer....Doctor Parnassus
릴리 콜....발렌티나
Lily Cole....Valentina
앤드루 가필드....안톤
Andrew Garfield....Anton
번 트로이어....퍼시
Verne Troyer....Percy
히스 레저....토니
Heath Ledger....Tony
조니 뎁....상상극장 토니 1
Johnny Depp....Imaginarium Tony #1
주드 로....상상극장 토니 2
Jude Law....Imaginarium Tony #2
콜린 패럴....상상극장 토니 3
Colin Farrell....Imaginarium Tony #3
톰 웨이츠....미스터 닉
Tom Waits....Mr. Nick

토니

[파르나서스 박사의 상상극장]은 테리 길리엄의 신작이기도 하지만 히스 레저가 미완성으로 남긴 유작이기도 합니다. 대부분 사람들은 후자에 집중할 것이고 그렇게 보는 것이 더 좋습니다. 이 영화는 어차피 길리엄의 대표작이 되지는 못할 테니까요.

영화가 만들어지는 과정은 영화 자체보다 재미있습니다. 히스 레저는 이미 영화의 상당부분을 찍었지만 특수효과와 관련된 많은 부분이 미완성으로 남아있었습니다. 길리엄과 공동 각본가 찰스 맥퀀은 상상극장에 들어가면 레저의 캐릭터 토니가 모습을 바꾼다는 설정을 도입하고 조니 뎁, 주드 로, 콜린 패럴을 토니 역으로 캐스팅해 영화를 마무리지었습니다. 그 결과는 아주 자연스럽지는 않지만 그래도 그럴싸하며 성공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트릭이 눈에 훤히 보이지만 그래도 썩 재미있는 마술을 본 기분이죠.

하지만 영화의 이야기 자체는 평범하기 그지 없습니다. 흔한 [파우스트] 이야기예요. 유랑극장 단장인 주인공 파르나서스 박사는 악마인 미스터 닉보다 먼저 영혼 다섯을 얻지 않으면 열여섯살이 된 딸 발렌티나를 빼앗기게 됩니다. 이 '영혼'이 과연 무엇이고 그렇게 빼앗으면 어떻게 되는 건지는 저도 잘 모릅니다. 하여간 파르나서스 박사는 상상극장이라는 곳에 그 사람들을 데려가 그들의 환상을 구체화시키고 옳은 길을 선택하게 합니다.

많이들 이런 설정이 비주얼리스트인 테리 길리엄에 어울린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요? '상상력'이라는 것이 직접적으로 개입되는 아이디어들 중 창작자의 상상력을 최대한으로 뽑아내는 것이 과연 얼마나 될까요? 얼마 안 됩니다. 가능성의 영역이 지나치게 넓어서 도대체 제약이라는 것이 없기 때문이죠. 게다가 컴퓨터 그래픽이 발명된 뒤로 이런 '상상력의 공간'을 만드는 건 너무 손쉬운 일이 되어 버렸습니다. 오히려 창작 과정의 상상력이 말살당할 지경이지요.

아까 그럴싸하게 성공했다고는 했지만, 히스 레저의 부재 역시 영화의 질에 어느 정도 영향을 끼쳤을 것 같습니다. 레저가 연기하는 사기꾼 토니의 캐릭터의 원래 운명은 이렇지 않았을 것 같아요. 벌려놓은 것도 많고 드라마의 가능성도 많은데, 결말은 그냥 허무하거든요. 상상극장 속에서는 다른 배우들을 동원해 커버할 수 있었겠지만 밖에서는 곤란했던 게 아닐까요? 레저가 영화를 완성했다고 해도 이 프로젝트의 나태함을 극복하기엔 역부족이었을 것 같기도 합니다만. (09/12/18)

DJUNA

기타등등

이것으로 히스 레저의 경력은 진짜로 끝입니다. 2008년 1월에 죽은 배우가 지금까지 계속 신작을 내고 있었다니 정말로 신기하지 않나요. 이것 역시 영화의 힘인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