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잭 클레이튼 Jack Clayton

주연
데보라 카....기든즈 양
Deborah Kerr....Miss Giddens
마틴 스티븐즈....마일즈
Martin Stephens....Miles
파멜라 프랭클린....플로라
Pamela Franklin....Flora
멕스 젠킨즈....그로스 부인
Megs Jenkins....Mrs. Grose
마이클 레드그레이브....삼촌
Michael Redgrave....The Uncle
클라이티 제섭....제셀 양
Clytie Jessop....Miss Jessel
피터 윈가드....피터 퀸트
Peter Wyngarde....Peter Quint
아이슬라 카메론....안나
Isla Cameron....Anna

1.

[The Innocents]는 분명 번역하기 쉬운 제목은 아닙니다. 하지만 [공포의 대저택]이 도대체 뭡니까? 가끔 EBS의 영화 담당자들을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원제를 번역하기 힘들다면 [나사못 회전]이라는 소설의 원래 제목을 쓸 수도 있었을텐데요. [공포의 대저택]이라는 제목은 단순히 촌스러울 뿐만 아니라 영화의 분위기와 내용을 오도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게다가 번역 제목 아래 자랑스럽게 써넣은 원제도 맞지 않습니다. 이 영화의 제목은 ['The' Innocents]지 그냥 [Innocents]가 아닙니다.

2.

[나사못 회전]을 헨리 제임스의 가장 평이한 작품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이 작품이 가장 읽기 쉬운 작품이라는 점은 부인할 수 없을 거예요. 여전히 내용은 모호하기 짝이 없지만 적어도 이 짧은 소설에는 대중들의 흥미를 끌만한 요소들, 그러니까 음산한 대저택, 유령, 섹스 스캔들 같은 것들로 가득 차 있지요. 지금도 어디선가 수많은 헨리 제임스 전문가들이 이 짧은 소설을 놓고 끙끙 대고 있겠지만 일반 독자들은 이 이야기를 멋진 고딕 스토리로 읽으며 즐길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나사못 회전]이 제임스의 작품들 중 가장 많이 영화화된 작품이란 사실은 결코 이상하지 않지요. 제가 알기로 이 소설은 5번 영화화 되었습니다. 두 편은 텔레비전용 각색물이었고 두 편은 극장용 일반 영화였으며 다른 하나는 구소련에서 제작한 오페라 영화였습니다. 저는 텔레비전 영화들을 뺀 다른 세 작품을 보았는데, 역시 가장 유명한 [The Innocents]가 최고였습니다.

3.

전혀 정보가 없으신 분들이 있다고 치고 대충 줄거리를 소개하기로 하죠. 주인공(영화 속에서는 기든즈 양이라는 이름이 붙어있습니다)은 두 고아 남매의 가정교사인데, 죽은 하인과 옛 가정교사의 유령들이 아이들 주변에 맴돌고 있으며 순진하고 예쁘게만 보이던 아이들도 그 유령의 영향력 안에 있음을 확신하게 됩니다. 주인공은 두 아이를 유령들로부터 보호하려 하지만 그 행동은 결국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하고 말죠.

[나사못 회전]의 해석에 그렇게 많은 논란이 있는 이유는 이 단순할 것 같은 이야기가 사실은 지독하게 애매모호하기 때문입니다. 과연 유령들이 있는 건지도 확신하기 쉽지 않은데, 일단 아무 쪽으로건 마음을 굳혔다고 치더라도 일관된 해석이 가능한 것은 아니니까요. 이를 해결하기 위해 프로이트에서부터 성서 해석까지 다양한 방법들이 동원되지만 여기서 이런 것들을 모두 나열한다면 바이트 낭비에 불과할 겁니다.

그렇다면 영화는?

잭 클레이튼은 [The Innocents]를 만들면서 원작의 내용을 상당히 단순화시켰습니다. 격자에 격자를 씌우던 원작의 구성도 사라졌고 복잡한 심리묘사도 줄어들었습니다. 예를 들어 원작의 도입부에서 주인공은 고용주에게 강한 매력을 느끼고 이런 설정은 주인공의 히스테리를 암시하는 구운 청어 역할을 하죠. 그러나 이미 중년인 데보라 카가 마이클 레드그레이브에게 그런 순진한 애정을 느꼈다고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겁니다.

그 결과 클레이튼의 영화에서는 원작에서 상당히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성적인 요소들이 줄어들고 대신 주인공의 '지나친 상상력'이 보다 강한 원인으로 등장합니다. 그로스 부인도 원작보다 훨씬 입장이 명확하고 똑똑해서 어정쩡함을 용납하지 않고요. 그리고 '나는 유령을 보았다'라고 쓰여진 가정 교사의 수기를 옛 제자가 화자를 포함한 친구들에게 들려주는 것과, 스크린 위에 유령이 나와 걸어다니는 건 사정이 달라도 한참 다르지요.

그래도 클레이튼은 [나사못 회전]의 기본 뼈대는 잊고 있지 않습니다. 유령은 진짜로 존재하는 것일 수도 있고 기든즈 양의 환상일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영문학자들이 뭐라고 하건, 이 애매모호함의 진짜 기능은 스토리에 서스펜스를 부여하는 데에 있지요. 클레이튼의 가지치기(사실은 각본을 쓴 트루먼 캐포티와 윌리엄 아치볼드가 했지만)는 이 두 리얼리티의 대립을 강화시켰고 그 결과 스토리는 훨씬 극적이고 긴박감이 넘칩니다. [The Innocents]는 [나사못 회전]보다 깊이가 떨어질지 모르지만 보기는 더 재미있습니다.

4.

데보라 카의 단정한 아름다움과 비싼 학교에서 잘 교육받은 숙녀같은 고상한 태도 때문에 우리는 종종 이 배우를 과소평가할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카는 옷 잘 입은 마네킹 같은 배우가 절대로 아닙니다. 특히 이 배우가 자신의 고상하고 말끔한 이미지에서 살짝 미끄러질 때 그 결과는 대단합니다. [지상에서 영원으로]는 분명 그 중 가장 잘 알려진 예겠지요. 그리고 [The Innocents]도 카의 역량을 입증하는 좋은 예로 언급되어야 할 것입니다.

하여간 카가 연기하는 기든즈 양은 근사합니다. 언제나처럼 고결한 의무감과 도덕성을 무리없이 표현하면서도 거기에 광기와 집착을 뒤섞는 이 배우의 줄타기는 단순한 멋진 곡예 이상입니다.

[The Innocents]는 기든즈 양 뿐만 아니라 마일즈와 플로라의 영화이기도 합니다. 이들을 연기한 두 배우인 파멜라 프랭클린과 마틴 스티븐즈는 모두 아주 잘했지만, 여기서는 감독인 잭 클레이튼의 역량을 조금 더 평가해야 할 것이라고 봅니다. 그들이 자기 캐릭터를 제대로 이해하고 있었을 리가 없기 때문입니다.

두 배우를 평가하라고 한다면, 파멜라 프랭클린([The Innocents]는 프랭클린의 데뷰작입니다)쪽에 조금 더 점수를 주고 싶습니다. 조금 노골적으로 보이는 스티븐즈의 마일즈에 비교해 볼 때, 프랭클린의 플로라는 훨씬 넓은 옥타브를 소화해내고 있으며 그 이중적인 표현의 효과도 스티븐즈보다 크기 때문입니다. 프랭클린의 플로라는 어딘지 모르게 [피아노]의 동명 캐릭터를 떠올리게 하는데, 혹시 캠피언은 이 영화의 영향을 받은 것이 아니었을까요?

5.

프레드 프랜시스의 흑백 촬영은 근사하지만 시네마스코프로 찍은 화면은 텔레비젼 화면에 맞게 크로핑되어서 원래의 의미가 종종 손상이 됩니다. 레터박스로 보았다고 하더라도 극장에서 시네마스코프 화면을 볼 때 느끼는 그 꽉 찬 기분은 맛볼 수 없었겠지요. 역시 이런 영화는 극장에서 봐야하는 데 말이에요.

조르쥬 오릭의 음악은 언제나처럼 좋지만 효과를 노릴 때는 종종 노골적이 됩니다. (98/03/06)

DJUNA

기타등등

[나사못 회전]을 각색한 두 편의 영화들에 대해서도 간단히 덧붙이기로 하죠. 둘 다 본 지 상당히 오래되었으니 자세한 정보는 기대하지 마세요.

1992년에 제작된 영국-프랑스 합작 영화인 [나사못 회전]은 국내 개봉도 되었고 비디오로도 출시되었습니다. 출시제는 [블라이가의 미로]입니다. 감독인 러스티 레모런드가 각색도 했는데, 엉뚱하게도 시대배경이 1960년대로 옮겨져 있습니다. 왜냐고요? 이 영화는 마리안느 페이스풀의 캐릭터가 다른 사람들에게 들려주는 이야기라는 형식을 취하고 있는데 페이스풀의 캐릭터가 바로 어른이 된 플로라이기 때문입니다! 1960년대라는 시대 배경은 매우 60년대 풍인 페시 켄시트의 아름다움에 어울릴 지는 모르지만 단지 그 뿐입니다.

게다가 그 시대 배경은 러스티 레모런드의 의도와도 맞지 않습니다. 레모넌드는 분명히 [The Innocents]가 빠뜨린 원작의 요소들을 다시 살리려고 했음은 분명합니다. 켄시트가 연기하는 가정교사(이 영화 속에서는 이름이 제니입니다)가 줄리언 샌즈가 연기하는 고용주에게 성적 매력을 느끼고 있음은 자명하니까요. 제니가 피터 퀸트의 유령을 만났을 때 느끼는 두려움도 분명히 성적 위협에 바탕을 두고있지요. 그런데 1960년대 같은 개방적인 시대가 이런 내용에 어울리겠어요?

하여간 이 영화는 수준작이 되기에는 여러 모로 문제점이 많습니다. 일단 러스티 레모런드의 모자라는 재능이 원작의 아름다움을 너무나도 자주 망가뜨리거든요. 특히 에어로빅이라도 하는 것처럼 요란하게 춤을 추어대는 제셀 양의 유령같은 걸 보면 웃음만 나옵니다. 게다가 마일즈와 플로라를 연기한 아역 배우들도 프랭클린과 스티븐즈보다 한참 떨어져요.

표트르 바이글이 감독한 러시아 영화 [나사못 회전]은 벤자민 브리튼의 오페라를 영화화한 것입니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콜린 데이비스가 지휘한 [나사못 회전] 앨범에 영상을 덧씌운 것이지요. 러시아에서는 한동안 꽤 많이 만들어졌던 방식인데, 이 영화에서도 헬렌 도나트가 부르는 가정교사의 목소리에 맞추어 마그달레나 바사료바라는 러시아 배우가 립싱크를 하고 있습니다. :-)

브리튼의 오페라가 원래 그렇지만, 이 영화는 [The Innocents]보다도 덜 애매합니다. 심지어 피터 퀸트와 제셀 양의 유령들까지 노래를 불러대니 어쩌겠어요. 게다가 영화는 음악에 너무나도 설명적인 화면들을 제공하기 때문에 상당히 지루합니다. 바이글이 어떻게든 튀어보려고(?) 삽입한 음악없는 도입부도 없는 편이 훨씬 낫고요.

틀어놓고 음악만 듣는 편이 가장 좋은 영화예요. 참, 너무나도 슬라브적으로 생긴 배우들이 영국인 역을 하는 걸 보면 좀 어색하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