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김태은

주연
성현아....여자
조동혁....남자

여자와 남자

여자는 7년 동안 사귄 남자친구와 결혼을 앞둔 매듭전문가, 남자는 사업을 정리하고 잔지바르로 떠나려는 건축가. 둘은 우연히 엘리베이터에서 만납니다. 남자가 여자에게 먼저 치근거리고 여자도 싫지는 않은지 그 유혹에 응합니다. 그리고 둘은 24시간 동안 붙어 다니며 섹스를 하고 싸우고 연애를 하고... 뭐, 그럽니다.

이들에겐 이름이 없습니다. 영화가 끝날 때까지 여자랑 남자죠. 서로의 이름도 모르는 사람들이 24시간이라는 한정된 시간 안에서 할 것 못할 것 가리지 않고 다 하는 영화이니, 컨셉이 스토리보다 더 강한 영화입니다.

이 컨셉을 믿은 건 [애인]의 첫 번째 실수입니다. 물론 이런 컨셉들을 제대로 활용한 영화들은 많습니다. [비포 선라이즈]도 그런 영화고 [종착역]도 그런 영화죠. 하지만 그 영화들이 성공할 수 있었던 건 리처드 링클레터나 비토리오 데 시카가 능력있는 작가이고 감독이었기 때문입니다. 강한 컨셉을 밀고 나가려면 자신이 얼마나 능력이 있는지 먼저 확인을 해야 합니다.

[애인]엔 그런 컨셉을 이길만한 능력이 없습니다. 일단 이름을 제거한 것부터 영화 내내 계속 걸립니다. 이들이 처음 만났을 때, 서로에게 자기들을 '여자', '남자'라고 소개하는 건 서툰 애교라고 쳐줍시다. 하지만 이들의 '결혼식' 장면까지 가면 이건 벌써 발목을 잡는 족쇄가 됩니다. 그런데도 이 설정을 계속 끌고 간다면 내용보다 게임 규칙에 더 신경을 쓰고 있다는 말이죠. 이름만 그런 게 아니라 [애인]이라는 영화의 모든 것들이 그렇습니다.

[애인]의 두 번째 문제는 영화가 시작부터 끝날 때까지 쿨해지려고 온갖 짓을 다하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이건 정말 치명적입니다. 쿨하지 않은 사람들이 쿨한 척 하는 건 처음부터 불가능하거든요. 영화는 도회인의 쿨함을 상징하는 거의 모든 것들을 꺼내 나열하는데, 그것들이 몽땅 흉내입니다. 관대하게 보면 귀여울 수도 있겠죠. 하지만 이 영화의 지방스러운 분위기를 온전히 즐기려면 몇 년 더 썩어야 하지 않을까요?

쿨함의 추구는 심한 부작용을 남깁니다. 처음부터 충분한 유머를 담고 있는 영화라면 그 유머가 완충작용이라도 할 텐데, 자신의 쿨함을 너무나도 진지하게 믿고 있는 터라 빠져나갈 구석이 없거든요. 이미 형식주의의 게임에 갇혀 허덕이는 내용이 쿨한 흉내를 내느라 완전히 굳어버리는 겁니다.

전 여전히 [애인]이라는 영화를 만든 사람들의 진실성을 믿습니다. 하지만 이 최종 결과에서 그걸 찾는 건 굉장히 힘든 일입니다. (05/11/29)

DJUNA

기타등등

정말 [애인]이라고 제목을 붙여야 했던 건가요? 벌써 세 번이나 [연애]라고 썼다가 고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