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마이클 케이턴-존스 Michael Caton-Jones

주연
브루스 윌리스....자칼
Bruce Willis....The Jackal
리처드 기어....데클랜 멀퀸
Richard Gere....Declan Mulqueen
시드니 프와티에....프레스턴
Sidney Poitier....Preston
다이안 베로나....발렌티나 코슬로바
Diane Venora....Valentina Koslova
마틸다 메이....이사벨라
Mathilda May....Isabella

잘나가는 원작을 자기 식으로 고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가는 전에 [미션 임파시블]에 대해 이야기할 때 언급한 적 있습니다. 하지만 오늘 다시 한 번 해야 할 것 같군요.

[자칼]의 제작 컨셉은 다음과 같습니다. 하나. [자칼의 날]이라는, 지금은 고전이 된 소설/영화가 있다. 둘. 스토리도 딸리니 다시 한 번 스타들을 써서 우려먹자. 셋. 하지만 그냥 리메이크는 곤란하니 기본 컨셉을 바탕으로 새로 쓰자. 넷. 그런데 원작의 컨셉을 보니 액션 장면도 적고 연애담같은 '인간적인' 면이 없네? 그러니 끼워넣자.

어디서부터 잘못되었을까요? 사실 3번까지는 원칙상 무리가 없습니다. 하지만 결정적으로 4번에서 망쳐버리고 말았지요. 왜냐고요? 영화건 소설이건, 한 작품이 완성도를 인정받는다면 그 작품은 스타일과 내용을 포함한 모든 요소들이 적절하게 조화를 이루고 있으며 아귀가 맞기 때문이지요. 그걸 깨트리면 모든 걸 망치고 말아요.

[자칼의 날]은 암살 계획을 세운 유능한 암살자와 그를 쫓는 유능한 경관의 이야기입니다. 소설/영화의 대부분은 주인공들인 전문가들의 매우 전문가다운 행동을 건조하게 서술하는 것으로 일관하고 있지요. 포사이드는 끝까지 기자다운 냉정한 기술로 일관하고 진네먼은 다큐멘터리처럼 차갑게 카메라를 가져 갑니다. 그들이 그랬던 이유는 암살 기도와 암살 방지라는 두 행동 만이 이 이야기의 진짜 주제라는 점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사실 관객들의 흥미를 끄는 부분도 이런 것들이었지요.

그런데 마이클 케이턴-존스의 리메이크는 여기에 인간적인 대립들을 첨가했습니다. 자칼과 데클랜은 사사로운 감정으로 얽혀있는데, 데클랜의 여자친구인 이사벨라를 자칼이 부상시켜서 임신 중이었던 애를 죽였기 때문이라나요. 하여간 그 결과, 이 영화는 두 스타를 등장시킨 안티 버디 무비로 변신해 버렸습니다.

안티 버디 무비가 나쁜가? 그렇지는 않죠. 하지만 다큐멘터리 드릴러를 의도한 스토리는 이 안티 버디 물에 어울리지 않습니다. 아무리 스토리와 상황을 바꾸어도, [자칼의 날]의 스토리는 보통 사람의 능력을 뛰어넘지만 그 자체로는 매우 리얼하게 보이는 자칼과 수사관들의 행동에 집중할 때에만 기능하게 되어있기 때문입니다.

결국 삐걱거리는 소리가 들리고 맙니다. 데클랜의 설정 자체도 설정의 리얼리티를 흐리기에 딱 좋습니다. 그와 이사벨라, 그와 자칼에 관련된 쓸데없는 이야기들이 자칼의 음모가 들어가야 할 부분을 밀쳐내고 대신 들어가버리고 마니까요. 그렇다고 이 영화가 전혀 새로운 다른 영화로 태어나지도 않았는데, [자칼의 날]의 스토리 라인이 결코 그런 발전을 용납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더 나쁜 건, 그 귀찮은 군더더기를 떼어버린 이야기도 결코 쓸만한 게 못된다는 점입니다. 가장 큰 원인은 역시 지능지수에 있습니다. 원작에서 자칼은 일급의 암살자이고 르벨은 일급의 경관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쫓고 쫓기는 도중에도 늘 일급처럼 행동합니다.

하지만 [자칼]에서 자칼과 데클랜은 모두 머리 나사가 하나 빠진 것 같습니다. 2천만 달러나 받는 저격자이면서 자신의 계획을 암시하는 말을 흘리고 중요한 암살이 코 앞에 닥쳤으면서도 엉뚱한 살인에 덤벼들고 자신의 계획이 노출될 것이 뻔하면서도 협박범의 시체를 숨기지도 않는 데다가 추적자를 피해 엉뚱하게도 철로 쪽으로 달아나는 자칼의 꼬락서니를 보면 '저게 과연 2천만 달러나 받아먹는 전문가가 맞아?' 하는 당연한 의문이 들기 마련입니다. 원작의 자칼은 겨우 50만 달러를 받고 훨씬 야무지게 일을 했습니다.

그렇다고 데클랜은 나은가? 영화를 보면 데클랜을 왜 감옥에서 끄집어냈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그는 주인공이라는 점만 빼면 정말 쓸모없는 인물입니다. 리처드 기어가 그 캐릭터를 정말로 매력없게 연기하고 있기 때문에 그 단점이 더 크게 보입니다. 브루스 윌리스는 기어보다 조금 낫지만 다양한 헤어스타일을 선보이는 것 이상의 연기를 보여주지 못하고 있으며 그렇게 유능하게 보이지도 않습니다. 시드니 프와티에나 마틸다 메이 같은 배우들을 다시 보는 것은 반가우나 그저 그 뿐. 그나마 강한 인상을 보여주는 배우는 발렌티나 코슬로바를 연기한 다이안 베로나 뿐입니다.

'원작'을 바꾸는 게 모두 이런 결과를 초래한다는 말은 아닙니다. 하지만 개작이라는 위험한 일을 시작할 양이면 과연 원작의 플롯과 주제가 어떻게 얽혀서 기능하고 있는지 알아차릴 수준은 되어야 하는 법입니다. [자칼]이 그런 면에서 전혀 만족스럽지 못한 영화라는 점은 말할 필요도 없겠습니다. (97/12/20)

D&P

기타등등

자칼이 한국 음식을 주문해 먹는 장면이 나오지요. 하지만 그 사람이 먹는 음식은 마치 중국집에서 배달된 것처럼 종이 상자 안에 담겨 있어요. 우리 나라 음식 중 그렇게 담을 수 있는 게 뭐가 있을까요? 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