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리기 J. 풀라팔리 Ligy J. Pullappally

주연
수하시니 V. 나이르....키란
Suhasini V. Nair....Kiran
수루이티 메논....딜라일라
Shrruiti Menon....Delilah
K.P.A.C. 랄리타....엄마
K.P.A.C. Lalitha....Amma
발살라 메논....할머니
Valsala Menon....Ammachi
시암 시탈....라잔
Syam Seethal....Rajan

딜라일라와 키란

[그녀의 여행]은 태생적으로 디파 메타의 [화이어]와 비교될 수밖에 없습니다. 둘다 여성 동성애를 다룬 인도 영화지요. 그렇다고 이들을 무작정 하나로 묶는 건 게으른 일이 될 겁니다. 두 영화는 다루는 문화뿐만이 아니라 언어도 달라요. [화이어]는 대도시인 뉴델리에 사는 사람들을 그린 영어 영화지만 [그녀의 여행]은 케랄라의 농촌마을이 무대인 말라얄람어 영화잖아요.

[그녀의 여행]의 이야기는 [화이어]만큼이나 전형적입니다. 둘 다 커다란 서브 장르의 공식들에 속해 있어요. [화이어]가 불행한 결혼생활에 빠진 두 유부녀의 사랑을 다루고 있다면, [그녀의 여행]은 어린 시절부터 단짝 친구였던 두 고등학생들이 사랑에 빠지는 과정을 그리고 있죠. 이 장르 영화들에 익숙한 사람들이라면 우리의 주인공 키란과 딜라일라의 운명이 어떤 순서대로 흘러가는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처음엔 순진무구한 우정으로 시작된 관계가 동성애판 [시라노 드 베르주락]이 되었다가 끝에 가서는 [로미오와 줄리엣]이 되지요. 관객들이 궁금해 하는 건 이 내용 자체가 아니라 그 결말입니다. 영화가 이야기의 아이디어를 얻은 실화의 결말은 비극이었어요. 단짝 친구를 사랑한 섬세한 문학 소녀 키란의 모델이 된 실제 대학생은 자살했다고 하는군요. 하지만 영화에서는 어떨까요?

우선 이 영화의 감독 겸 각본가인 리기 J. 풀라팔리가 동성애 이슈에 대해 알만큼 아는 사람이라는 걸 밝혀두고 싶습니다. 시카고에서 자라고 공부한 변호사 출신이고 여성인권 문제에 대해서도 훤한 사람이에요. [그녀의 여행]이 소재를 다루는 방식은 '서구적 교양'의 잣대로 평가했을 때 특별히 걸리는 구석이 없습니다. 나이브한 시골 사람들의 이야기지만, 장르의 클리셰들과 실제 세계의 정치학 모두에 훤한 사람이 각본을 쓴 게 너무나도 분명해요.

문제는 기술적 완성도에 있습니다. 풀라팔리는 디파 메타만큼 능숙한 영화 예술가가 아니에요. 메타만큼 좋은 스텝들과 배우들을 만나지도 못했고요. 영화는 전체적으로 아주 거칠고 투박합니다. 차라리 영화가 하려는 이야기 자체가 토착적인 나이브함(으, 오리엔탈리즘 냄새가 풀풀 풍기는군요!)을 유지했다면 그 투박함이 자연스럽게 느껴질 수 있었을 텐데, 이 경우엔 알 것 다 아는 서구 지식인의 관점과 투박한 만듦새가 결합된 것이니, 심하게 덜컹거릴 수밖에 없지요. 인도 영화 특유의 후시녹음 연기도 저 같은 외국인 관객들에겐 조금 신경 쓰이는군요. 물론 처음부터 작정한 볼리우드 영화였다면 상관없었겠지만요.

그래도 영화는 피사체와 재료의 덕을 단단히 보고 있습니다. 두 주연배우들의 연기는 결코 완벽하다고 할 수 없지만 믿음직하고 진실되어 보입니다. 무대가 되는 케랄라의 풍경은 이야기에 때 묻지 않은 에덴 동산의 무대를 제공해주고요. 그리고 시스템이 갈라놓은 비극적인 로맨스가 정말로 안 먹힐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저한테 가장 재미있었던 건 영화의 케랄라 사회 묘사였습니다. 일단 전 이들의 호모포비아가 종교적 혐오에서 비롯되지 않는다는 점이 재미있어요. 이들은 그냥 현실적입니다. 여자들이 살아남으려면 남자들이 필요하고 결혼엔 스캔들이 쥐약이라는 거죠. 가톨릭과 힌두 신앙이 자연스럽게 조화를 이루고, 아직도 남아있는 모계 사회의 전통 속에서 은근히 목소리 높고 강한 여자들을 만들어내는 분위기 역시 흥미로웠고요. 그리고 가끔 삽입되는 영어 대사들을 들으면서 말라얄람어를 쓰는 사람들의 일상어에 영어가 얼마만큼 침투했는지 궁금해할 수밖에 없었답니다. (06/06/09)

DJUNA

기타등등

1.리기 J. 풀라팔리는 이 영화를 만들기 전에 [Uli]라는 제목의 단편을 만들었는데, 그 단편의 내용은 이 영화의 속편 형식을 취하고 있었다고 해요. 그에 대해 자세히 알고 싶으시다면 AfterEllen의 다음 인터뷰를 참고하세요.

2. 키란의 책장에 J.B.S. 홀데인의 [생명이란 무엇인가]가 버젓하게 꽂혀있더군요. 동네 학교에서 요구하는 독서 수준이 은근히 높은 모양입니다. 그렇게 과학에 관심이 있는 아이처럼 보이지는 않았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