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돈 샤프 Don Sharp

주연
제니퍼 다니엘....마리안 하코트
Jennifer Daniel....Marianne Harcourt
에드워드 드 수자....제럴드 하코트
Edward de Souza....Gerald Harcourt
클리포드 에반스....짐머 교수
Clifford Evans....Professor Zimmer
노엘 윌먼....라브나 박사
Noel Willman....Dr. Ravna
배리 워렌....칼 라브나
Barry Warren....Carl Ravna
재키 월리스....사베나 라브나
Jacquie Wallis....Sabena Ravna
노엘 하울렛....자비에르 신부
Noel Howlett....Father Xavier
이자벨 블랙....타냐
Isobel Black....Tania
피터 매든....브루노
Peter Madden....Bruno
베라 쿡....안나
Vera Cook....Anna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마리안과 라브나 박사

[뱀파이어의 키스]는 60년대에 만들어졌던 거의 모든 호러 영화들과 도입부의 설정이 같습니다. 신혼여행 중이던 커플의 자동차가 하필이면 뱀파이어 소굴 앞에서 고장난다는 거죠. 그 뒤에 이어지는 이야기도 비슷합니다. 아내는 뱀파이어의 유혹에 빠지고 남편은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뱀파이어 소굴을 소탕합니다.

결국 이 영화에 대해 이야기할 때 집중해야 할 건 스토리가 아니라 소재를 다루는 태도입니다. 그러나 직접 작품을 다루기 전에 일반론을 한 번 검토하기로 하죠. 해머 영화들과 비슷한 시기에 미국에서 만들어진 고딕 영화들은 소재를 다루는 방식에서 분명한 차이가 있습니다. 해머 영화들은 고대의 음흉한 지혜를 품고 있는 사악한 야만과 과학으로 무장한 문명의 대결입니다. 하지만 미국 영화들에서는 세련된 교양을 갖춘 구 시대의 유럽인과 순진무구한 현대 미국인들의 대결이지요.

[뱀파이어의 키스]는 어느 정도 후자 쪽에 기울어져 있습니다. 일단 이 영화의 시대 배경은 19세기 말 또는 20세기 초엽으로, 일반적인 해머 영화들보다는 살짝 '현대'와 가깝습니다. 일단 자동차라는 것이 등장하니까요. 뱀파이어 소굴의 두목인 라브나 박사도 고대의 괴물이 아니라 세기말의 마지막 사치와 타락을 즐기는 교양인이고요. 주인공인 영국인 부부도 크리스티 소설에 종종 나오는 단순무식한 영국인 여행객에 가깝고요.

그 결과 해머 영화의 일반적인 질서는 어느 정도 사라집니다. 우선 뱀파이어들이 그렇게까지 초자연적으로 사악해 보이지 않은 걸요. 그들은 단지 쾌락과 영생을 바라는 이기주의자들에 불과합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혐오스러운 지옥의 짐승인 해머 버전 드라큘라와는 달리 이들은 꽤 안락하고 문화적인 삶을 누리고 있습니다. 사람 좋지만 단순무식한 남편을 버리고 뱀파이어들의 입술에 목을 맡기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될 정도로요.

결정적으로 이 영화엔 뱀파이어들을 절대악으로 규정하고 신과 문명을 대표해서 그들을 처단하는 반 헬싱 박사가 등장하지 않습니다. 뱀파이어들에게 딸을 잃은 짐머 박사가 사냥꾼으로 등장하긴 하지만 그는 잔소리 많은 주정뱅이에 불과합니다. 이 때문에 하코트 부부의 위기가 더 절실하게 느껴지기도 해요. 짐머 박사가 특별히 무력하기 때문이 아니라 그들이 빠진 곤경이 더 현실적으로 와닿기 때문이지요.

어떤 도덕적 원칙에도 구애받지 않는 짐머 박사 덕택에 [뱀파이어의 키스]는 아주 괴상한 결말을 갖추고 있습니다. 십자가와 성수로 싸우는 반 헬싱 박사와는 달리 짐머 박사는 반대로 지옥에서 악의 힘을 불러오지요. 이 영화의 뱀파이어들은 수 천 마리의 박쥐들에게 물어뜯겨 죽습니다. 뭔가 앞뒤가 안 맞는 거죠. 이건 어떻게 보면 이런 뱀파이어 영화들의 기본 컨셉에 대한 가벼운 조롱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06/01/18)

DJUNA

기타등등

[Kiss of Evil]이라는 제목으로 방영된 미국판 TV 버전은 많은 장면을 잘라내고 원작에는 없는 새로운 장면들을 추가했다고 하더군요. 그 버전에 대해 알고 싶으시다면 여기로 가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