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레니 할린 Renny Harlin

주연
지나 데이비스....사만다 케인 (찰리)
Geena Davis....Samantha Caine (Charly)
사무엘 L. 잭슨....미치 헤네시
Samuel L. Jackson....Mitch Henessey
이본 지마....캐이틀린
Yvonne Zima....Caitlin
크레이그 비에르코....티모시
Craig Bierko....Timothy
톰 아만데스....할
Tom Amandes....Hal
브라이언 콕스....네이던
Brian Cox....Nathan
패트릭 맬러하리드....퍼킨스
Patrick Malahide....Perkins
데이빗 모스....루크/대덜러스
David Morse....Luke/Daedalus
조셉 맥케나....애꾸눈 잭
Joseph McKenna....One-Eyed Jack
멜린다 카나카레데스....트린
Melina Kanakaredes....Trin
댄 워리-스미스....레이먼드
Dan Warry-Smith....Raymond

1. 셰인 블랙

셰인 블랙의 명성은 다소 과장된 경향이 있습니다. 그는 피플즈처럼 독창적이지도 않고 에스터하스처럼 많은 히트작도 없습니다. 타우니나 헥트처럼 거장은 더더욱 아니고요. 그가 [리설 웨폰]이라는 성공적인 시리즈를 창조했다는 사실은 인정해야겠지만 겨우 그것만 가지고 그를 중요한 작가라 할 수는 없습니다. 사실 [리설 웨폰] 이후로 그가 한 일은 별볼일 없었지요. [라스트 보이스카웃]은 [리설 웨폰]의 뻔한 변형에 불과했습니다. [마지막 액션 히어로]에서 그가 한 일은 간단한 윤색밖에 없었고요.

400만 달러에 팔린 [롱키스 굿나잇]의 각본을 보면 고개가 갸우뚱해집니다. 블랙의 이름에 붙은 프리미엄(하지만 누가 각본가의 이름을 기억할까요)을 뺀다면 이 각본에는 반짝거리는 면이 조금도 없습니다. 전형적인 '히트 앤 런'의 연속에 여드름쟁이 틴에이저에게나 어울리는 판타지가 섞여있을 뿐입니다. 전혀 독창적이지도 않고요.

유감스러운 일입니다. 이 스토리는 훨씬 흥미진진할 수도 있었기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들은 하품을 할 지 몰라도 저희는 여전히 기억상실증 이야기가 흥미진진하다고 생각합니다. 슬프게도 블랙이 건성으로 쓴 각본보다 훨씬 영리한 구조를 필요로 하지만요.

2. 기억상실증

너무 많이 써먹어서 지겹다고 하는 사람도 많지만 저희는 아직도 이런 이야기들을 좋아합니다. 가상현실과 기억삽입같은 SF 가제트없이도 '미지의 나'와 직접 마주친다는 설정은 좋지 않나요? 물론 가제트들을 잔뜩 쓴 [토탈 리콜]같은 영화도 이 장르에 포함되겠지만, 하여간요.

[롱키스 굿나잇]에도 쓸만한 장면들은 있습니다. 블랙은 이 영화에 [토탈 리콜]에서처럼 이중인격의 개념을 도입했습니다. 사만다는 단순히 기억을 잃은 찰리가 아니라 독립적인 인물입니다. 사만다와 찰리가 거울 속에서 대면하는 초반의 꿈장면들은 꽤 그럴싸합니다. 기억이 완전히 돌아왔을 때 그녀는 찰리로 돌아온 것이 아니라 찰리가 사만다를 누르고 전면에 나온 것이죠. 만약 이 과정을 조금 더 영리하게 쫓아갔다면 흥미진진했을 겁니다. 그러나 블랙은 어떻게 자동차들을 더 요란하게 박살낼까에 정신이 팔려서 이들의 대립관계를 그냥 대충 처리해버렸습니다.

3. 팝콘 무비

사실, 저희들은 생각없이 닥치는 대로 부수는 영화들을 비난할 생각이 별로 없습니다. 생각없이 보아도 되는 영화라고 가치를 무시할 수는 없지요. 사실 그런 영화들이 머리를 싸매고 봐야 하는 영화보다 더 양적 가치가 있는지도 모릅니다. 블랙이 저희들 취향에 맞게 더 복잡한 이야기를 만들지 않았다고 비난하는 것도 억지일 지 모르지요. 어차피 그 사람은 두들겨 부수는 이야기를 쓰려 했을테니까.

다행히도 그는 만화 같은 이야기를 만화처럼 쓰는 방법을 알고 있습니다. 그가 이 이야기를 진지하게 생각했다면 더 웃겼겠죠. 그러나 그는 별 생각없이 순전히 시각적 폭발력만 고려해 황당무계한 설정들을 꾸며내어 연달아 이어 붙이는 것으로 만족했습니다. 그래서 [롱키스 굿나잇]은 무식하게 바보같은 영화로 떨어지는 위험에서 아슬아슬하게 벗어나 황당하고 요란한 팝콘 무비의 모범과도 같은 영화로 안착했습니다. 만약에 그 상황들이 더 독창적이었고 이야기가 더 잘 꾸며져 있었더라면 저희들이 점수를 더 줄 수도 있었는데요... 슬프게도 이 영화의 대부분은 다 어디서 본 것 같고 많은 부분이 앞뒤가 맞지 않습니다.

4. 여성전사

80년대 중반 이후부터 총을 든 여성전사들의 이미지가 본격적으로 대중화되기 시작했죠. 제임스 카메론의 공이 큽니다. 사실은 별로 폭력적이지도 않고 액션 영화도 아니었던 [델마와 루이즈]도 그런 불을 당기는 데 한 몫을 했고요.

여기에는 페미니즘의 요소가 있습니다. 그러나 여주인공들에게 총을 들리는 것이 꼭 페미니즘 유행 때문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언젠가 [라스트 시덕션]의 감독 존 달이 미국판 보그 지와 인터뷰한 것을 읽은 적이 있는데 그게 아직도 기억이 남네요. 기억을 대충 더듬어보면 '나는 강한 여성들에 대한 판타지를 가지고 있다. 그것은 페미니즘적인 것은 아니고 틴에이저 남학생들의 판타지에 보다 가까운 것이다.'라던가 하여간 그와 비슷한 말을 했지요.

셰인 블랙이 만들어낸 첫번째 여주인공 찰리 볼티모어에도 같은 말을 할 수 있습니다. 찰리는 물론 '강한 여성'입니다. 그러나 그녀는 여전히 성적인 판타지의 대상이기도 합니다. 만화책에 나오는 수퍼 헤로인들이 성적 판타지와 완전히 무관하다고 할 수 있어요? 게다가 이런 액션물의 여주인공들은 또다른 페티시즘을 자극하는 기회를 제공해주기도 하죠. 왜 원더우먼, 찰리의 천사들 (우리나라에서는 [미녀 삼총사]), 소머즈 기타 등등의 여주인공들이 그들의 능력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악당들에게 마취되고 유괴되어서 쇠사슬에 묶이는 신세가 될까요? 단순히 긴장감을 조성하기 위해서는 아니겠죠? 마찬가지로 악당들이 사만다/찰리를 기절시키고 옷을 벗겨서 물레방아에 매달아 찬물에 집어넣는 자칭 고문을 해대는 이유도 솔직히 말해 본디지 페티시를 자극하고 물에 젖은 속옷이 착 달라붙은 사만다/찰리의 몸매를 감상하게 하기 위해서가 아니겠어요? :-P

그러나 이런 불순한 의도에도 불구하고, 저희들은 이런 추세를 반갑게 여깁니다. 더 나아질 수도 있었지만 그래도 찰리는 능동적인 인물이고 행동의 선두에 서 있으니까요. '뽀빠이 살려줘요!'보다야 백 배 낫죠. 모든 게 완전무결하게 깨끗할 수는 없는 거 아니겠어요. 그런 걸 바라는 것 자체가 무리고요.

5. 레니 할린

이 사람 역시 과대평가된 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의 작품들 중 1억 달러 이상을 벌어들인 영화가 단 한 편밖에 없다는 거 아세요? 그것도 전작의 명성을 뒤에 업은 속편 [다이하드 2]였죠. [다이하드 2]는 괜찮은 상업 영화였고 돈도 많이 벌었지만 과연 그걸 위해 할린이 한 일이 뭐였던가 생각해볼 수도 있습니다.

물론 그의 개성을 영화 속에서 찾아볼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저희들에게 그건 대단찮게 여겨집니다. 할린이 빠져도 [다이 하드 2]는 여전히 그럴싸한 영화가 되었을 겁니다. 그의 개성은 단순히 지문을 찍는 정도였지 영화의 성격을 완전히 규정하는 것은 아니니까요. 적어도 헐리웃은 할린 없이도 충분히 잘 살 수 있을 겁니다.

6. 배우들

가장 좋은 배우는 사무엘 L. 잭슨입니다. 그의 껄렁한 싸구려 사립 탐정의 연기는 일품이며 또 재미도 있습니다. 맹한 사만다와 킬러 찰리를 오가는 지나 데이비스도 저희들이 보기엔 괜찮았습니다. 사실 찰리보다 사만다가 더 어울렸지만 말입니다. 나머지 배우들은 별로 기억에 안남고 또 그게 당연한 것 같군요. (96/12/15)

D&P

기타등등

딱 한가지. 왜 레니 할린은 악당들의 눈을 찌르는 걸 그렇게 좋아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