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존 프랑켄하이머 John Frankenheimer

주연
프랭크 시내트라....베넷 마코
Frank Sinatra....Bennett Marco
로렌스 하비....레이몬드 쇼
Laurence Harvey....Raymond Shaw
자넷 리....로지
Janet Leigh....Rosie
안젤라 랜즈버리....아이슬린 부인
Angela Lansbury....Mrs. Iselin
헨리 실바....준진
Henry Silva....Chunjin
제임스 그레고리....존 아이슬린 상원의원
James Gregory....Senator John Iselin
레슬리 패리시....조시 조던
Leslie Parrish....Jocie Jordon
존 맥가이버....토머스 조던 상원의원
John McGiver....Senator Thomas Jordon

1.

마코의 악몽

한국전에 참전한 일단의 병사들이 전쟁 영웅이 되어 귀국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모두 러시아인들에 의해 납치 세뇌당했고 그들 중 훈장까지 받은 레이몬드 쇼는 무의식적인 암살자로 교육 받았습니다. 쇼와 같이 납치되었던 마코 소령은 이상한 악몽을 몇 달간 계속 꾼 뒤, 자신과 동료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짐작하게 됩니다. 그는 쇼에 접근하고 쇼 역시 무의식적으로 암살 계획에 말려듭니다.

2.

존 프랑켄하이머의 [The Manchurian Candidate]를 단순한 냉전 드릴러로 보는 데에는 약간의 문제점이 있습니다. 전형적인 냉전 영화의 스토리와 플롯을 가지고 있지만 그 모든 것들이 비틀려져 있으니까요. 영화는 살짝 위로 떠올라 냉전 당시의 정치적 광기에 빠진 사람들을 무덤덤하게 내려다 봅니다. 많은 요소들이 스토리와 독립되어 전개되기 때문에 거의 모든 내용들이 이중의 의미를 띠고 영화 자체가 악몽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3.

영화는 2시간 9분으로, 내용에 비하면 좀 긴 편입니다. 내용 전개만 따진다면 1시간 40분 정도로 줄일 수도 있을 것 같아요. 하지만 과연 그런 식으로 잘려나갈 장면들이 불필요하냐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마코가 로지 채니를 처음 만나는 장면을 봅시다. 그녀는 전형적인 할리우드식 러브 인터레스트용 삽입 도구로, 사실 영화 스토리 전개엔 별 쓸모가 없어 보입니다. 그런데 마코와 그 사람이 만나는 장면은 두 남녀가 사랑에 빠지는 장면치곤 기괴하기 짝이 없습니다. 로지는 마치 암기법 수업이라도 하는 것처럼 자신의 이름을 상대방에게 각인시키고 다음에는 자신의 전화번호와 주소를 암기하게 만드는데, 이 장면에서 마코의 얼굴을 보면 세뇌당하는 사람의 표정이 어떤 건지 알 수 있습니다. 실제로 그는 쇼의 한국인 하인 준진과 한바탕한 뒤 경찰서로 끌려오자 기계적으로 로지에게 전화를 겁니다. 그렇다면 뭡니까? 그녀는 실제로 우리가 알고 있는 것 이상의 인물일까요? 과연 러시아인들은 미국인 관리자가 믿고 있던 그 목표를 위해 쇼를 세뇌했을까요? '자유세계와 독립적인 영혼의 승리'로 보이는 영화의 결말이 원래부터 러시아인들이 의도했던 것은 아니었을까요? 아니면 그건 단지 '구운 청어'에 불과한 것일까요?

4.

마코의 꿈 장면은 이 영화에서 가장 흥미진진한 부분입니다. 일단 이 장면이 악몽 표현의 할리우드 식 전형성에서 완전히 벗어나 있다는 점은 주목할 만합니다. 납치된 병사들은 한 호텔에서 어느 원예협회의 연사가 하는 수국과 공해의 관련성에 대한 지루한 강연을 한가롭게 듣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그들이 믿고 있는 가짜 현실입니다. (같은 악몽을 꾸는 흑인 병사 멜빈의 버전에서 그 원예협회 사람들은 모두 흑인입니다.) 실제로는 그들은 러시아 어딘가의 원형 강당에 있으며 연사는 동양인 심리학자인 옌 루입니다. 프랑켄하이머는 원예협회와 호텔의 가짜 현실과 원형 강당에서 일어나는 아마도 진짜인 것 같은 현실 사이를 360도 팬으로 재치있게 연결시키고 있지요.

이 악몽 표현에서 재미있는 점은 그 무덤덤함과 유머입니다. 일단 원예 협회와 세뇌라는 엉뚱한 연결성도 희극적이고 (희극적일 뿐만 아니라 상당히 정교한 복선이기도 합니다) 일어나는 사건의 끔찍함(쇼는 옌 루의 명령을 받고 관중들 앞에서 동료 둘을 죽입니다)에도 불구하고 모든 행위들은 예절바르고 정중하게, 그리고 매우 학구적으로 진행됩니다. 사실 이 무덤덤한 톤은 영화 전체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그 진지한(?) 내용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가 의도적인 블랙 코미디로 보이는 것이겠지요.

5.

이 영화는 한국에서 시작하고 한국인 캐릭터가 한 명 나오는데, 우리가 보기엔 그다지 유쾌하지는 않습니다. 일단 준진이라는 이 인물의 설정이 전혀 한국인 같아 보이지 않고 또 그는 비굴하고 시시한 이급 악당입니다. 더 나쁜 건 그 역을 연기한 배우가 헨리 실바라는 점입니다. 헨리 실바는 그 어정쩡하고 험악한 용모 때문에 당시 유색인종 악당 역을 도맡아 했던 배우인데, [녹색의 장원]의 그가 아마존 원주민으로 보이지 않는 것처럼 이 영화에서도 전혀 한국인같지 않습니다. 심지어 동양인처럼 보이지도 않습니다!

아무리 비틀려져 있다고 해도, 우리에겐 이 영화가 결국 냉전 영화로밖에 보일 수 없다는 점 역시 즐겁지 않는 요소입니다. 게다가 구식 황화론까지 첨가된 거 같아요.

6.

이 영화의 진짜 주인공은 마코 소령이 아니라 레이몬드 쇼입니다. 적어도 그는 주인공에게 어울리는 끔찍한 갈등을 겪는 사람입니다.

쇼의 비극은 그의 전 일생이 그의 의도와 무관하게 흘러갔다는 데에 있습니다. 심지어 세뇌 이전에도 말입니다. 우리는 건조하고 매력없으며 인간적으로도 그다지 믿을 수 없는 인물로 쇼를 소개받고 저런 인간은 당해도 싸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쇼에 대해 점점 더 알게 되면서 우리는 억압당하고 깔려지내는 동안 영혼의 절반을 날려버린 한 남자를 보게 됩니다. 그 때부터 그는 영화의 중심에 섭니다. 그가 필사적으로 자신의 의지를 되찾으려고 기를 쓰는 후반부에는 정말로 감동적인 어떤 면이 있습니다.

이 영화에서 가장 흥미진진하게 묘사된 인물은 아이슬린 부부입니다. 늘 국방부에 공산당원이 몇 명이나 있다고 떠들어대는 아이슬린 상원 의원은 배꼽잡게 재미있는 캐릭터입니다. 그리고 안젤라 랜즈버리가 연기한 무시무시한 아이슬린 부인은 단연 이 영화의 핵심입니다.

7.

대통령 후보 암살 기도 장면은 [너무 많은 것을 아는 남자]보다는 후에 나온 [재칼의 날]을 연상시킵니다. 하지만 다소 맥빠지는 [재칼의 날]의 결말에 비해 이 영화의 결말은 극적이고 힘찬데, 그것은 나름대로 저격자의 의도가 성공적으로 마무리 지어졌기 때문입니다. [스피드]에서 데니스 호퍼가 말했지요. 폭탄은 터져야 한다고요. 마찬가지로 극적인 요구에 따라 저격자는 누군가를 쏘아야 합니다. 쇼는 그 일을 했습니다.

8.

프랑켄하이머는 자기 스타일이 없는 사람이라는 말을 많이 듣지만 50-60년대에 그의 영화에서 찾아볼 수 있는 차분한 무개성은 나름대로 그의 향취를 품고 있는 것 같습니다. 최근들어 그가 만들고 있는 영화들을 생각해보면 좀 서글퍼지는군요. (97/06/25)

D&P

기타등등

[그림자 없는 저격자]는 DCN 방영제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