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월터 살레스 Walter Salles

주연
가엘 가르시아 베르날....에르네스토 게바라
Gael García Bernal....Ernesto Guevara
로드리고 드 라 세르나....알베르토 그라나도
Rodrigo De la Serna....Alberto Granado
미아 마에스트로....치치나 페레이라
Mía Maestro....Chichina Ferreyra
이고르 칼보....수자 박사
Igor Calvo....Dr. Souza
호르헤 치아렐라....브레치아니 박사
Jorge Chiarella....Dr. Bresciani
카롤리나 인판테....마르가리타 수녀
Carolina Infante....Sister Margarita

알베르토와 에르네스토

사람들이 체 게바라를 기억하는 방식은 노인네들이 젊은 날을 기억하는 방식과 많이 닮아있습니다. 삶의 풍랑을 모두 거치고 꼬들거리는 현실을 간신히 움켜진 노인네들에게 젊은 시절 그들이 품었던 삶에 대한 낙천주의와 희망, 이상주의가 그처럼 그립고 아름다워 보이는 것처럼, 20세기의 험악하고 피곤한 시대를 거친 우리들은 볼리비아 정글에서 살해당한 이 혁명가의 이미지에서 향수와 희망을 재발견합니다.

당연히 여기엔 미화와 개조의 과정이 개입됩니다. 우린 그를 우리의 욕망에 따라 재발명하고 개조하고 아이콘화합니다. 결국 끝에 가서는 그의 얼굴을 티셔츠에 로고로 박아 패션 상품으로 팔아먹게 되는 거죠. 냉소적으로 받아들일 필요는 없습니다. 수요가 있는 곳에 공급이 따라오는 건 자연 현상이니까요. 그런 장사꾼들이 없다면 우리가 어떻게 체 게바라 티셔츠를 구하겠어요?

월터 살레스는 [모터싸이클 다이어리]를 통해 우리에게 익숙해진 티셔츠 로고에 인격을 부여하려 시도합니다. 그는 유명한 혁명가 체 게바라의 전성기 대신 그 혁명가가 아직 넉넉한 집안에서 태어난 풋풋한 의대생 에르네스토 게바라였던 젊은 시절에 친구 알베르토 그라나도와 함께 떠났던 남미 대륙 종단 여행을 영화의 소재로 삼습니다.

[모터싸이클 다이어리]는 한 청년의 정치적 각성에 대한 영화입니다. 이런 이야기를 우린 꽤 많이 접했습니다. 남부러울 것 없이 살아온 젊은이가 여행을 통해 세계를 접하고 그 경험을 통해 삶의 방향을 정한다는 거죠. 게바라의 이 이야기는 '젊어서 고생은 사서 한다'는 식의 속담들이 아주 헛소리는 아니라는 여러 증거 중 하나입니다.

이 이야기는 정말 괜찮은 영화의 소재가 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정작 완성된 영화는 그 당연한 기대 수준까지 도달한 것 같지는 않아요.

이 영화의 가장 큰 문제점은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이 주인공 에르네스토 게바라를 지나치게 존경한다는 것입니다. 네, 그들은 어떻게든 그를 결점도 있고 단점도 있는 한 젊은이로 그리려 합니다. 그게 영화의 목표라는 걸 잊고 있지는 않은 것 같아요. 그러나 영화는 여전히 이 젊은이를 묘사하는 데 지나치게 신중합니다. 그 결과 이 영화가 묘사하는 에르네스토 게바라는 조금 재미없는 인물이 되어버리죠. 그는 정직하고 동정심이 넘치며 세상을 바꾸고 싶어하는 호감가는 젊은이로 영화가 끝날 때까지 모범적인 일만 골라서 합니다. 과연 영화가 분명한 정치적 각성 과정을 그리긴 했는지 모르겠어요. 전 제대로 보지 못했습니다. 그런 게 분명하게 드러나기엔 처음부터 너무 잘난 친구였거든요. 오히려 그의 옆에서 산초 판자처럼 따라다니는 알베르토 그라나도가 더 따라가기 편한 사람입니다.

그 결과 영화는 그들이 탈출하고 싶어했던 영웅 숭배에 갇혀버립니다. [모터싸이클 다이어리]는 어딘지 모르게 [스몰빌]이나 [스타 워즈] 프리퀄의 분위기를 풍깁니다. 영화는 이 이야기가 진행되는 동안에도 끊임없이 관객들에게 속삭입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위대한 체 게바라는 이러이러한 과정을 통해 성장했던 거야." 마치 [스몰빌]이 빙글빙글 웃으며 "이렇게 해서 클라크 켄트는 렉스 루터와 만났던 거야"라고 말하는 것처럼요. 생각해보면 당연한 일일지도 몰라요. '위대한 아무개'의 인간적인 면모를 보여준다는 기획은 대부분 시작부터 정치적인 의도를 깔고 있어서 진짜 용기있는 예술적 선택을 하지 않으면 굉장히 위선적인 작품으로 떨어지기 마련이거든요. 이런 기획은 차라리 대상이 되는 주인공이 감독이나 작가의 정적일 때 더 잘 먹힙니다. 올리버 스톤의 [닉슨]이 그랬지요.

[모터싸이클 다이어리]는 진지하고 건실하며 잘 만든 영화입니다. 하지만 전 이 영화가 의도했던 예술적 진실에 도달한 작품이라고 하지는 못하겠어요. 영화는 그럴만한 대담함을 갖추고 있지 못합니다. 그 결과 진짜 그럴싸한 전기물이 될 수 있었던 이 작품은 중간부터 노골적인 위인전 냄새를 풍기게 됩니다. 그 때문에 이들이 모델로 한 실제 에르네스토 게바라는 그보다 훨씬 재미있는 인물이었을 거라는 생각이 안 들 수가 없는 거예요. (04/11/01)

DJUNA

기타등등

끝에 아직도 살아있는 알베르토 그라나도가 직접 등장합니다.